[미디어스=고성욱 기자] 윤석열 정권이 임명한 KBS 박민-박장범 사장 체제는 수많은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을 일으켰으며 결과는 신뢰도-영향력 하락으로 대표된다. 박상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은 29일 미디어스에 "역사적으로 KBS의 신뢰도와 공정성, 영향력이 올라갔던 시기에 제작 자율성이 광범위하게 지켜졌다"고 말했다. 

박민 전 KBS 사장, 박장범 KBS 사장 (사진=연합뉴스, KBS)
박민 전 KBS 사장, 박장범 KBS 사장 (사진=연합뉴스, KBS)

KBS는 시사인이 지난해 9월 발표한 <2024년 대한민국 신뢰도 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 매체 조사에서 지난 조사 대비 5.7%p 하락한 9.5%로 2위를 기록했다. MBC는 2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또 KBS는 한국기자협회가 지난해 8월 현직 기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언론사별 신뢰도’(본인 소속 제외) 조사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반면 MBC는 14.8%의 신뢰도로 1위에 올라섰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발표한 '디지털뉴스리포트 2024'에 따르면 2023년 한국 매체별 신뢰도 조사에서 2위였던 KBS는 5위로 떨어졌다.

디지털 뉴스의 경우, 유튜브 통계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2024년 한해 KBS 뉴스 유튜브 채널 조회수는 약 19억뷰로 30위를 나타냈다. MBC 뉴스 유튜브 채널 조회수는 약 70억뷰로 3위를, JTBC 뉴스 채널은 40억뷰로 10위, SBS뉴스 채널은 39억뷰로 11위를 기록했다.

박상현 KBS본부장은 "박민-박장범 체제에서 제작 자율성이 침해받았으며 그 결과가 각종 평가에서 신뢰도 영향력이 하락한 수치로 드러났다"며 "경영진이 해야 할 것은 스스로 나서서 제작 자율성을 관리감독하겠다고 나설 것이 아니라 외풍으로부터 제작진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외풍을 막을 수 있는 근간인 임명동의제는 중단됐으며 시사프로그램 결방 논란이 꼬리에 꼬리는 무는 상황이다. 최근  <시사기획 창> 제작진도 몰랐던 방송 연기 소식이 보수 언론단체 성명서를 통해 알려는 일이 벌어졌다. 

대선 보도는 내부 구성원들로부터 ▲한덕수 대통령 띄워주기 ▲윤석열 형사 재판 무검증 ▲윤석열 부부 공천개입 의혹 부실 검증 ▲건진법사 의혹 부실 보도 등의 지적을 받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28일 성명에서 이 같은 대선 보도 모니터 결과를 소개하고 “부끄러운 수준”이라며 “보도시사본부 수뇌부에게 요구한다. 시청자들에게 이번 대선과 관련해 다양하고,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촉구했다.

KBS 1TV '시사기획 창-대통령과 우두머리 혐의' 방송화면 갈무리
KBS 1TV '시사기획 창-대통령과 우두머리 혐의' 방송화면 갈무리

최근 KBS <시사기획 창> ‘군: 항명과 복종’ 편의 외부 유출 의혹이 불거졌다. 해당 편은 당초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인 8일 방송될 예정이었지만, 연기돼 지난 22일에서야 방송됐다. 더구나 제작진도 몰랐던 방송 연기 사실이 보수 언론단체 성명서를 통해 미리 알려졌다. 제작진은 보수 언론단체의 성명서 발표 이후 이재환 보도본부장과 김철우 시사제작국장의 결정으로 연기됐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KBS본부는 “이재환 본부장과 김철우 국장은 본인들이 해당 단체에 정보를 흘린 게 아니라면 해당 정보 유출자를 책임지고 명명백백히 밝혀내 징계하라”고 촉구했지만, 현재까지 사측은 ‘외부 유출’에 대한 경위 파악에 나서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14일 <시사기획 창> '대통령과 우두머리 혐의' 편은 ‘난도질됐다'는 내부 비판 속에 방송됐다. <시사기획 창> 제작진은 이재환 본부장이 ▲‘파우치’ 내용 편집 지시 ▲팀장·부장·국장관의 논의를 거쳐 완성된 원고에 대한 여러 차례 수정 지시 ▲야당의 ‘줄탄핵’ 내용 추가 요구 ▲내레이션 ‘체포 거부하는 대통령’ 삭제 요구 ▲‘대통령과 우두머리’ 제목에 ‘혐의’ 추가 지시 등을 했다면서 “명백한 편성 규약 위반”이라고 반발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추적하고 ‘모두 다 나에게 속았다’는 일명 캡틴코리아와 단독 인터뷰를 한 <추적 60분> ‘극단주의와 그 추종자들’ 편은 극우 세력 위협 등을 이유로 불방 사태를 겪을 뻔했다. 해당 방송은 2월 28일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전날 오후 돌연 편성에서 삭제됐다.

제작진은 경영진으로부터 ▲3.1절 특집 다큐가 너무 잘 만들어져 하루 앞당겨 편성하고 싶다 ▲집회 세력을 자극해 KBS가 서울서부지법과 같은 물리적 위협을 받을 수 있다 등의 편성 삭제 사유를 전달받았다. 

제작진과 PD협회, KBS본부 등이 피켓팅을 진행하는 등의 거센 반발 끝에 해당 <추적 60분>은 3월 7일 방송됐다. KBS본부는 ‘제작 자율성 침해 사안’이라며 공정방송위원회 개최를 요구했으나 사측은 ‘편성권’을 내세워 거부했다.

지난달 19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열린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규탄 및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지난달 19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열린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규탄 및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윤석열 정권은 TV수신료 분리징수 등 공영방송의 재원을 흔드는 전례 없는 방식으로 공영방송 장악에 나섰으며 ‘윤석열 술친구’로 알려진 박민 전 사장을 임명하면서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민 사장 취임 당일부터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KBS 인기 시사프로그램 <더 라이브>가 편성 삭제됐고 이후 폐지됐다. <주진우 라이브>, <최강시사> 진행자들도 하차 통보를 받았다. 박 사장 취임 전후로 <뉴스 9> <뉴스광장> <사사건건> 등 주요 뉴스 앵커들이 무더기로 교체됐다. 이후 KBS는 ‘화제성’을 이유로 보수 유튜버 고성국 씨를 <최강시사> 후속 프로그램 <전격시사> 진행자로 발탁해 구성원들의 반발을 샀다. 고성국 씨는 12.3 내란사태 이후 자리에서 내려왔다.

박민 사장은 취임 이튿날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훈 일가 땅 검증 ▲검언유착 ▲윤지오 씨 인터뷰 ▲윤석열 수사무마 의혹 인용 등을 불공정 보도 사례로 꼽고 대국민 사과했다. 같은 날 <뉴스 9>에서 새 진행자 박장범 앵커가 이들 보도를 거론하며 사과 리포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어 박민 사장은 단체협약 상항인 임명동의제를 무력화하고 주요 국장 인사를 강행했다. 

박민 사장 취임 이후 KBS 뉴스는 윤 대통령과 북한 소식이 주로 등장하는 ‘땡윤 뉴스’ 비판에 직면했다. KBS <시사기획 창> ‘원팀 대한민국, 세계를 품다’는 윤석열 정부 세일즈 외교를 무비판적으로 담았으며 인터뷰이로 가장 많이 등장한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방송 이후 대통령실 정책실장으로 임명됐다.

세월호 10주기에 맞춰 방송될 예정이던 <다큐 인사이트>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도 결국 원안대로 방송되지 못했다. ‘총선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불방 지시가 내려왔으며 이후  제작진 의도와 달리 참사 생존자 PTSD 극복기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내용으로 방영됐다.

제작진이 ‘낙하산 진행자’를 거부하자 프로그램이 엎어진 사례도 있다. <역사저널 그날>은 지난해 5월 개편 후 첫 방송을 내놓을 예정이었다. 제작진은 유명 연예인을 진행자로 섭외하고 첫 녹화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첫 녹화를 3일 앞두고, 당시 이제원 KBS제작1본부장은 조수빈 씨를 MC로 앉힐 것을 최종 통보했고 제작진이 이를 거부하자 프로그램을 무기한 보류를 결정했다. <역사저널 그날>은 현재까지 방영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2월 7일 방송된 윤 대통령과의 대담에서 당시 박장범 앵커는 ‘김건희 명품백 수수’ 논란을 두고 ‘조그마한 파우치’라고 표현해 논란이 일었다. 또 KBS는 90여 분간 진행된 대담에서 20분가량을 윤 대통령의 대통령실 안내 장면으로 채웠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이를 “공영방송이 ‘국영방송’으로, ‘땡윤방송’으로 전락하는 치욕적인 순간이었다”고 규탄했고 당시 박장범 앵커에게 ‘파우치’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지난해 2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의 박장범 KBS 앵커와 함께 자리한 모습. 박장범 앵커는 지난해 12월 KBS 사장 자리에 올랐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지난해 2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의 박장범 KBS 앵커와 함께 자리한 모습. 박장범 앵커는 지난해 12월 KBS 사장 자리에 올랐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KBS 논란은 광복절 당일 ‘기미가요’ 사태와 더불어 ‘이승만 미화 다큐’ 등으로 정점을 찍었다. KBS는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 당일 ‘기미가요’와 ‘기모노’가 등장하는 일본 오페라 <나비부인>을 방영하고, 오전 일기예보에서 태극기를 거꾸로 든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또 구성원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발 속에 ‘제주 4.3, 3.15부정선거, 4.19 혁명’ 왜곡 이승만과 기독교 미화 등의 내용이 담긴 <기적의 시작> 방영을 강행했다. 같은 날 <뉴스 9>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부연하고 경제·문화 성장을 강조하는 리포트가 대거 배치됐다. 지난해 6월 KBS는 ‘야당 단독만의 청문회’라는 이유로 주요 방송사 유튜브 채널 중 유일하게 ‘채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를 생중계하지 않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민 사장 체제의 KBS는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에 따른 경영위기를 이유로 두 차례의 특별명예퇴직과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이광용 아나운서, 황정민 아나운서, 정세진 아나운서, 김윤지 아나운서, 김원장 기자, 박종훈 기자, 임장원 기자 등 120명가량이 회사를 떠났다. 

박민 사장 체제에서 KBS 구성원들은 파업, 연차투쟁 등의 쟁의행위를 벌였다. 박민 사장은 구성원들 대다수가 반대하는 시사교양국 폐지, 기술본부 통합을 골자로 하는 조직개편안을 강행 처리했으며 KBS본부와의 단협에서 임명동의제와 총국장 중간평가제 삭제를 고수했다. 이에 KBS본부는 중앙노동위원회가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자 쟁의행위에 나섰다.

박민 사장은 연임을 노렸으나 박장범 사장에 밀려 낙마했다. 이를 두고 ‘대통령의 술친구'를 밀어낸 '파우치' 박장범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박장범 사장 선임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KBS 사장 선임 개입’ 의혹이 불거졌으며 KBS 내부에서는 '박장범 반대' 목소리가 들끓었다. 

33년차 18기부터 막내인 50기까지 총 30개 기수, 495명의 기자들이 '박장범 반대' 기명 성명을 발표했으며 KBS 본부노조, 같이노조, 직능단체들이 '박장범 사장 임명'을 반대했다. 구성원들의 반발 속에 취임한 박장범 사장은 취임 첫날, 임명동의제를 무력화한 인사를 강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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