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한 KBS 기자가 "우리의 지난 4개월은 무엇이었나"라며 12·3 비상계엄 사태, 대통령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의 KBS 취재·보도를 비판했다.
해당 기자는 계엄·탄핵 정국에서 정권 비판적인 발제와 표현이 무산됐다며 보도국 수뇌부에게 답변을 요구했다. '위헌적 포고령' '국민변호인단 여론전' '윤석열 대통령 헌법재판소 결정 승복 메시지 안 내' 등이 뉴스에 담길 수 없었다고 한다.

KBS 사회부 A 기자는 7일 KBS 보도정보 게시판에 <의미없는 칭찬을 거부합니다. 대신 묻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A 기자는 "지난해 12월 3일 계엄의 밤부터 지난 4월 4일까지 어떻게 흘러갔는지조차 모르게 4개월이 갔다"며 "몇 시간 뒤 보도 게시판에 '탄핵 선고 생방송부터 특보, 당일 9시까지 큰 사고 없이 잘 나갔다' '모두 현장에서 고생해 준 후배들 덕분이다' 자화자찬 섞인 격려가 올라오기 전에 그간 생각만 해 왔던 글을 쓴다"고 말문을 열었다.
A 기자는 "지금 기자들에게 필요한 건 와닿지 않는 격려나 빠른 퇴근, 짧은 근무시간이 아니다. 대기든 야근이든 이미 짐 싸서 퇴근했든 간에, 그날 해야 할 보도를 제대로 하고 부끄럽지 않은 기분으로 떳떳하게 노트북을 덮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을 거라는 얘기"라며 "초유의 계엄과 탄핵 정국이라는 다시 오지 않을 날들을 겪으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언론인으로서 제 몫을 다했는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자긍심을 느끼고 싶었다. 아쉽게도 그런 날은 끝내 오지 않았다"고 했다.
A 기자는 자신과 후배 기자들이 지난 3개월 동안 겪은 취재·보도자율성 침해 사례를 거론했다. A 기자는 "어렵게 물어 온 단독 하나 내보내는 것도 온갖 용을 써야 가능했고, 상식적인 발제는 번번이 무산되었으며 기사 안에서도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표현은 나노 단위 수준으로 들어내지는 날들이었다"고 회상했다.
A 기자는 지난 1월 20일 '국회·정당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계엄사령부 포고령 내용에 대해 '위헌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 1월 23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탄핵심판 첫 번째 증인으로 재판정에 자리해 윤 대통령과 짜놓은 듯한 답변을 주고 받았을 때에는 리포트 초고 전체가 삭제됐고 2월 1일에는 윤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가 일반 시민과 청년을 중심으로 '국민변호인단'을 모집한다고 한 데 대해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는 문구를 쓰지 못했다고 했다.
A 기자는 "대통령이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메시지를 여전히 내놓지 않고 있다는 드라이한 문장마저 연락도 없이 사전 제작 리포트에서 도려내지는 (3/23)건 일도 아니었다"고 했다. A 기자는 "혼자서만 경고성 계엄이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의원 아닌 인원을 끌어내라 한 거라 외치던 윤 전 대통령 발언이 주요 내란 혐의자들의 진술조서에 담긴 내용과는 무엇이 다른지 조목조목 견주어보자는 상식적 아이템은 온갖 이유로 밀리다 결국 '사인난 지 너무 오래돼서 애매하다'(4/1)는 말을 듣기도 했다"며 "스스로 시의성을 말려 없애놓고 시의성이 없어 애매하다니, 재밌지 않나. 대충 기억나는 것만 이 정도"라고 했다.

A 기자는 KBS가 계엄·탄핵 정국 아이템 개수를 줄이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사안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이게 대형 사건을 취재하는 언론사의 기본 태도가 맞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A 기자는 "헌정사상 두 번째로, 그것도 계엄을 저질러 대통령이 탄핵당한 어마어마한 일을 겪고도 선고 다음날(4/5) 우리 9시 뉴스에 꽂힌 사회부 아이템은 셋,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4/6)은 두 개"라며 "당연히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게 전국 사건·사고 종합"이라고 꼬집었다.
A 기자는 "부끄러움은 언제나 지난 몇 달간 현장에서 양측 시위대 모두로부터 고성과 폭력, 모욕을 견뎌내야 했던 일선 기자들만의 몫이었다. 그러니 저는 별 의미 없는 칭찬을 거부한다"며 "더 나은 보도를 위해 더 빨리 더 크게 목소리를 내지 못한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련다"고 했다.
A 기자는 보도국 수뇌부들에게 "우리의 지난 4개월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에 답변할 것을 요구했다. A 기자는 "계엄과 탄핵 정국을 무력하게 보낸 KBS가 앞으로 열릴 새로운 사회에서 국민의 신뢰를 찾아오기 위해 보여줘야 할 모습은 어떤 것인지 보도국 수뇌부들도 깊은 고민과 반성을 하고 계셨으면 좋겠다"며 "탄핵은 끝이 아니고 우리는 오늘도 뉴스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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