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여권 성향 KBS 이사들이 이사회와 논의 없이 경영진이 '수신료 인상 추진'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이사회 패싱이라 해도 할 말 없다" "엉뚱하다"라고 비판했다. 반면 야권 성향 이사는 "계획을 밝히는 것은 집행기관의 책무"라고 거들었다.  

KBS 경영진은 25일 열린 KBS 이사회에서 “수신료 현실화 작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집행부 대표로 출석한 김우성 부사장은 전날 열린 <시청자위원회 전국대회>를 거론하며 “시청자위원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앞으로 수신료 현실화 작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장범 사장은 광고주 관련 행사 참석을 이유로 이날 이사회에 불출석했다. 전날 전국시청자위는 “KBS의 공적 책무 수행을 위해 적정수준의 안정적인 수신료 조달과 함께 적극적인 재원 안정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KBS 이사회 (사진=KBS)
KBS 이사회 (사진=KBS)

김 부사장은 “일부 언론 보도에서 수신료 인상안이 확정된 것처럼 보도하고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수신료 인상 확정은 이사회 상정과 의결 사항임을 잘 알고 있다”면서 “철저한 준비를 통해 수신료 인상안이 마련되면 이사회에 보고하고 의결을 요청드리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부사장은 ‘구체적인 인상안이 나온 것이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라며 “경영수지 점검 회의에서 박 사장이 ‘이 재정 상태로 가면 공영방송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재정 상황을 미리 대비하기 위해 수신료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 집행부 관계자는 “회의 석상에서 '3·4·5(슬로건)' 얘기가 나왔는데 공식화된 게 아니다”라며 “500원 인상 내용이 보도자료에 포함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여권 성향 이사들은 집행부가 이사회와 사전 논의 없이 ‘수신료 인상 추진’ 입장을 밝혀 유감이라고 성토했다. 정재권 이사는 “수신료 현실화 취재 전화들을 받고 부끄러움을 느꼈다”면서 “이사회에서 수신료 현실화 문제가 한 번도 논의된 바가 없기 때문에 보기에 따라 ‘경영진이 이사회를 패싱했다’고 표현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 이사는 “수신료 현실화 안을 만드는 주체가 누구인지 고민해봐야 한다”면서 “수신료 현실화 과정을 누가 주도하냐의 문제는 정당성과 책임성에 있어서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회 논의 과정 없이 경영진이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24일 KBS  전국시청자위원회가 공동선언문을 박장범 사장에게 전달하고 있다.(사진=미디어스)
24일 KBS 전국시청자위원회가 공동선언문을 박장범 사장에게 전달하고 있다.(사진=미디어스)

정 이사는 차기 이사회에 박장범 사장이 출석해 ‘수신료 현실화 추진' 배경에 대해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또 정 이사는 “수신료 현실화는 보도·시사 프로그램 경쟁력 강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면서 “박장범 사장 체제가 6개월이 지났기도 했고, 이사회에서 보도·시사에 대한 점검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상요 이사는 "언론 보도에 '3·4·5' 슬로건까지 나왔는데 타이밍도 그렇고 절차적으로도 그렇고 내용도 너무나 엉뚱하다"면서 "박 사장이 급박한 광고 행사 때문에 이사회에 불출석했다고 하는데, 전례 없는 일 아닌가. 수신료 인상 논란 때문에 오늘 이사회를 회피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반면 야권 성향 이사는 경영진의 ‘수신료 인상 추진 계획’은 이사회 보고 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권순범 이사는 “시청자위가 (수신료 인상 필요성에 대해) 선언을 했고, KBS 경영을 책임지는 집행기관이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추진하겠다는 것도 이사회 의결이 필요하냐”면서 “그건 집행 기관의 권한이고, 책임이자 의무”라고 말했다. 

KBS 사옥과 전기료 고지서  (연합뉴스 자료사진)
KBS 사옥과 전기료 고지서  (연합뉴스 자료사진)

권 이사는 “이사회가 가타부타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집행부의) 말을 들어보면 이제 공식적으로 (수신료 인상을) 추진해보겠다는 것 같은데, 검토를 해보고 적절한 시기에 절차적 완결성을 기하기 위해 이사회에 보고하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기석 이사장은 “수신료 인상안 결정은 이사회 의결 사항이니, 집행부에서 안이 마련되면 이사회에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도록 보고해달라”고 말했다.  

수신료 인상을 위해서는 심의·의결과 방송통신위원회 의결을 거쳐 국회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지난 2007년 이후 KBS는 총 네 차례의 수신료 인상을 추진했으나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2021년 월 3840원 수신료 인상을 추진한 KBS는 국민참여 공론조사 결과, 수신료 수입에 따른 경영수지 변화, 공적책무 수행과 예산집행안 등을 제시하고 국민과 정치권 설득에 나섰으나 국회에서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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