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낙하산 사장이 잇달아 들어선 공영방송 KBS는 12‧3 내란 사태 이후에도 방송장악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이 가운데 양승동 전 KBS 사장이 지난 12월 <스튜디오와 광장 사이에서>를 출간했다. 양 전 사장은 ‘공영방송 KBS 민주화 30년’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을 통해 KBS 구성원들의 ‘공영방송 구하기’ 분투의 역사를 돌아보고 KBS가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고찰한다.
1989년 KBS에 입사한 양 전 사장은 30년간 방송 PD로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 후 3년 8개월 동안 사장으로 일했다. 이 책은 그가 PD로서 스튜디오와 광장을 오가며 경험한 KBS 민주화 역사의 생생한 기록이다. <스튜디오와 광장 사이에서> 집필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지난 8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내의 한국PD연합회에서 양승동 전 KBS 사장을 만났다. 다음은 양 전 사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먼저 <스튜디오와 광장 사이에서> 출간 소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랫동안 글 쓰는 일에 매여 있다 보니 힘들었는데 이제 홀가분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무거운 마음이 있습니다. KBS가 정상화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어떨지 몰라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87년 민주화 이후 2018년까지 KBS의 투쟁기를 담으셨어요. 책은 어떻게 쓰게 되셨나요?
“KBS 사장 재임 기간이 3년 8개월이었는데, 당시 경험이나 시행착오를 기록으로 남기면 후배들 그리고 외부에서 KBS를 이해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얼마 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역사가 다시 퇴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제를 바꾸게 됐습니다. 원론적이고 본질적인 주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거죠. ‘KBS 민주화 30년’이라는 기간이 제가 사장 되기 전 PD 시절 30년과 시기적으로 겹치기 때문에 두 가지를 엮으면 독자들이 책을 읽는 데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제목이 <스튜디오와 광장 사이에서>인데 의미는?
“저는 원래 프로그램 잘 만드는 전문 연출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KBS PD가 됐는데, 프로그램 제작에만 몰입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제목에서 ‘스튜디오’는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공간이고, ‘광장’은 동료들과 함께 방송장악 그리고 낙하산 사장에 대해 저항하고 투쟁했던 공간입니다. 이 두 공간 사이에서 수없이 고민하고 그러면서도 동료들과 끝까지 함께한 이야기를 이 책에 담은 거죠.”
![〈스튜디오와 광장 사이에서〉 책 표지 이미지 [나남 제공]](https://cdn.mediaus.co.kr/news/photo/202501/311408_218155_5318.jpg)
책을 관통하는 단어가 ‘KBS의 DNA’인 것 같은데 사장님이 생각하는 KBS의 DNA는 뭘까요?
“‘부당한 억압에 저항한다’라는 게 KBS의 DNA라고 생각합니다. KBS 구성원들은 취재와 제작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상황에 대해 계속 저항해왔어요. 사실 방송 언론인으로서 당연한 태도인데 KBS의 경우 1987년이 분기점이었어요.
그전에는 KBS가 완전히 정권의 나팔수, ‘땡전 뉴스’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었거든요. 87년 6월 민주항쟁을 계기로 KBS 사원들이 마음속에 응어리진 부끄러움을 떨치고 일어나 행동하기 시작했어요. 책에서 ‘공영방송 구하기’ 투쟁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KBS 민주화 30년 여정에서 다섯 번 정도 있었습니다.”
언론노조 KBS본부가 과거에 비해 투쟁력이 약하다는 평가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윤석열 정권 들어와서 특히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87년 6월 민주항쟁 직후 MBC 노조가 탄생하고 다음 해에 KBS 노조가 출범했어요. 그때는 제가 입사하기 전이었는데, 당시 <노보>를 보니 KBS 노조가 만들어지기까지 꽤 어려움이 있었더군요. KBS는 정부출자기관이었기 때문에 관료적이었어요. 그래서 KBS에 대한 통제가 더 심했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KBS 사원들이 집단으로 자각하고 일단 노조를 만들자 달라졌습니다. 노조 출범 2년이 채 안 된 1990년에 ‘KBS 4월 투쟁’이 있었어요. 당시 노태우 정권이 민주적으로 선임된 서영훈 사장을 해임하고 청와대 대변인 출신 서기원 사장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자, KBS 전 조합원들이 떨치고 일어나서 36일 동안 제작을 거부하며 투쟁했어요.”

현재 양대 공영방송 노조에 대한 평가가 달리 나오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KBS의 가장 중요한 재원이 수신료이기 때문입니다. 진보보수, 남녀노소, 청장년층 모두에게 수신료를 받잖아요. 그래서 KBS는 어느 한쪽으로 쏠려서는 안 되고, 분열보다는 통합의 관점을 계속 가져가야 합니다. KBS 구성원들은 이런 관점을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면 KBS가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노조가 분열됐기 때문이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 KBS 노조가 변질됐습니다. 그 당시 노조 집행부가 이명박 정권의 KBS 장악과 정연주 사장 해임에 대해서 묵인 내지 방조했어요. 그래서 기자와 PD들을 중심으로 노조에 대한 불신이 생겼고 결국 새로운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새노조’였죠. 다시 초심을 회복한 것이었습니다만, 큰 틀에서 보면 노조가 분열된 것이었죠.
그럼에도 소수노조로 출발한 새노조가 결국 과반의 대표노조가 되었습니다. 윤석열 정권이 수신료 분리징수를 추진하면서 내부적으로 혼란이 일기도 했지만, 본부노조가 여전히 2천 조합원 이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앞서 다섯 차례 ‘공영방송 구하기’ 투쟁의 역사를 얘기했는데, 저는 지금 본부노조가 다시 ‘공영방송 구하기’ 투쟁을 시작했다고 보고 있어요. 외부에서 볼 때 MBC에 비해 답답해 보이기도 할 텐데 KBS라는 특수성도 있는 만큼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연주 사장 때 정 사장이 개혁적이라서 KBS 노조가 변질되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그 당시 정연주 사장이 급진적인 개혁을 했어요. 책에도 썼지만 하나는 팀제를 실시한 거였어요. 그 당시에 KBS 보직 간부 숫자가 팀장부터 국장까지 1천 명이 넘었는데, 보직 간부를 200명 이하로 줄여버린 거예요. 많은 숫자의 보직자들이 평직원으로 내려오면서 불만이 컸겠지요. 당시 노동조합이 이러한 불만을 흡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기자와 PD들은 제작 자율성이 보장된 시기에 조합 활동보다 프로그램 제작 활동에 더 몰입하게 돼요. 그러다 보니 노동조합이 변질되는 상황에 빨리 대응을 못한 측면이 있었어요.”

당시 언론노조 소속 본부노조였는데?
“2004년 말에 노조 집행부 선거를 했는데 ‘反정연주’ 기치를 내건 후보가 당선이 된 거예요. 그리고 2년 후에 다시 ‘코드 박살 복지 대박’ 구호를 내건 후보가 위원장이 됐어요. KBS 노조가 처음 출범할 때부터 내세운 가장 중요했던 역할, 제1의 가치가 내부 제작 자율성을 지키는 일이었는데 그게 무너진 거예요.
당시 언론노조도 위기가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언론노조의 정체성을 지켰습니다. 그러다 보니 KBS 노동조합 집행부는 상급단체인 언론노조의 집행부와 충돌하게 됩니다. 결국 언론노조가 KBS 노조 집행부를 징계하는 사태가 일어났었죠.”
KBS PD협회장 재임 시기가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것 같은데 지금 돌아보면 어때요?
“2006년 후반 PD협회장 맡기 직전까지만 해도 저는 프로그램을 계속하고 싶었습니다. 2003년 정연주 사장 시기가 됐을 때 제작 자율성을 충분하게 보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이후 분위기가 바뀌더라고요. 앞서 얘기한 것처럼 노동조합도 정권의 KBS 장악을 방관하며 제작 자율성을 지켜주기 위해 앞장서지 않았고요.
그러다 보니 제작 현장보다 PD협회장으로서 투쟁의 현장에 더 많이 가게 됐습니다. 그런 계기가 없었으면 아마도 저는 프로그램을 계속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전문성을 발휘하려면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PD로서 역량을 계속 쌓아갈 수 있는 여건이었다면 지금의 저와 다른 제가 되었겠지요.”
PD협회장 맡았기 때문에 사원행동 대표도 맡았고 나중에는 파면까지 됐는데 재심으로 징계가 낮춰졌죠. PD협회장 맡은 일을 후회한 적 없나요?
“후회하지는 않았어요. 당시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계속 낙하산 사장 내려보내는 상황에서 제가 프로그램을 열심히 하려고 해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노조를 대신해 싸우기 위해 ‘사원행동’을 결성해 저항한 일로 회사로부터 징계도 받게 됐죠. 나중에 제작 현장에 복귀해 제작에 몰입하려고도 했었습니다만, 제작 자율성 억압이라는 큰 흐름이 이어졌고 그러다 보니 결국 다른 길로 가게 됐어요. 시대적 상황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이끈 것 같아요.”

2013년 <진품명품>과 2024년 <역사저널 그날> 사태가 비슷한 것 같던데.
“맞아요. 두 프로그램 모두 ‘낙하산 MC’ 문제로 파행을 겪은 거죠. <진품명품> 사태 때는 PD들이 저항하자 담당 PD 전체 그리고 부장, 국장, 본부장까지 다 날려 버렸어요.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죠. 나중에 사장이 물러나게 됐어요. 사장이 쫓겨난 직접적 원인은 세월호 참사 와중에서 나온 보도국장의 폭로였지만 그 이면에는 <진품명품> 사태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저널 그날>의 경우 제작진이 MC를 섭외하고 국장까지 동의한 사안이었는데, 제작본부장이 용산 대통령실 관련 인사를 MC로 내려보내려고 무리수를 두었어요. 그래서 제작진과 본부노조가 강하게 반발하자 사측이 편성을 무기한 연기했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역시 반년 정도 후에 사장이 물러나게 됐어요.
두 사건 모두 사장이 쫓겨나게 된 공통점이 있지요.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진품명품>은 프로그램은 계속 방송됐는데 <역사저널 그날>은 실질적으로 폐지됐단 점입니다. 더 무책임하고 악질적이었던 것이죠.”
프롤로그에 2017년 파업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장님이 적폐로 몰리셨다던데 어떻게 된 건가요?
“책에 자세한 경위를 써 놨는데 간단히 얘기하면 이렇습니다. 파업 기간에는 수시로 각 실·국별로 총회를 해요. PD들도 PD 총회를 했는데 파업이 100일을 넘어가는 시점이었어요. 아무래도 젊은 후배 PD들 중심으로 강경한 태도였죠. 그렇지만 저를 포함한 일부는 조합집행부에 맡기고 조합원들은 제작 현장으로 복귀해도 되지 않겠는가 이런 소수의견을 낸 거예요.
그런데 다음 날 전체 조합원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민주광장으로 갔는데 다른 직종의 동료가 ‘양 선배도 적폐 소리를 들었다면서요?’하는 거예요. 이 에피소드가 KBS 조합원들이 어떻게 집단으로 의사결정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여서 프롤로그로 썼던 겁니다. 보수진영에서는 MBC나 KBS를 노조가 권력이 돼서 마음대로 좌지우지한다고 ‘노영 방송’ 프레임으로 비난하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당시 조합원들이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의사결정을 하고 그렇게 해서 집단적인 의지를 만들어내면서 민주화 30년의 역사를 써 온 것입니다.”

박민 사장 취임 이후 14개월 정도 지나는 사이 KBS 신뢰도가 폭락했는데 아쉬움이 클 것 같아요.
“참담하죠. 책에도 에필로그에서 그 부분을 적었는데요. KBS 뉴스를 포함한 KBS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하게 추락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충격적인 일도 일어났어요. <KBS 뉴스9> 시청률이 <MBC 뉴스데스크>보다 항상 높았는데 이게 무너졌어요. 몇 달 전부터 수도권 시청자 수가 역전되더니 이번 계엄·내란 국면에서 전체 시청자 숫자도 역전돼 버렸어요. KBS 역사상 가장 큰 충격적인 일일 겁니다. 1990년대 중후반 이후에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30년을 정리하면서 낙하산으로 임명된 사장 시기와 청와대가 관여하지 않고 사장이 민주적 절차로 선임된 시기를 비교해 보니 KBS에 대한 신뢰도 차이가 있더군요. 낙하산 사장 시기에는 신뢰도가 추락했다가 민주적으로 선임된 사장 시기에는 신뢰도가 올라갔습니다. 이게 정점을 찍은 게 정연주 사장 때였어요. 2007년에 KBS가 전 매체를 통틀어서 신뢰도 1위를 했다가, 그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사장 시기에 쭉 내려갔고 마지막 고대영 사장 시기에 8위권 밖(2016년, 미디어미래연구소 신뢰도 조사)으로 추락했습니다.
2018년에 KBS가 정상화되면서 다시 신뢰도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1월부터는 대부분의 조사에서 KBS가 신뢰도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현상이 김의철 사장 때까지 계속 이어지다가 2022년 말부터 역전되기 시작했어요. MBC가 치고 올라갔어요. 바로 바이든-날리면 사태 보도가 그 계기였어요.”
KBS 신뢰도 복구, 가능할까요?
“지금 박민 사장 이후 박장범 사장으로 또 낙하산 사장이 들어왔잖아요. 시청자들은 낙하산 사장이 통제한다고 여겨지는 뉴스를 신뢰하지 않을 겁니다. 답답합니다. 다만 그래도 실마리가 있다면 사장이 ‘국장 임명동의제’를 부활시키는 거라고 생각해요. 기자들 절반의 동의도 얻을 수 없는 사람을 보도국장으로 임명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요. 그렇게 해서는 뉴스 경쟁력이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박장범 사장 체제에서 국장 임명동의제 시행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가면 결국 현 사장도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스튜디오와 광장 사이에서>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뭘까요?
“먼저 공영방송 KBS에서 낙하산 사장은 더 이상 안 된다는 것입니다. 책에서 다섯 차례의 ‘공영방송 구하기’ 투쟁에 관해 상세하게 쓴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취재 및 제작의 자율성 보장은 KBS 기자나 PD들에게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낙하산 사장은 이런 자율성을 보장할 수가 없죠. 그래서 사장 선임 관련해서 방송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니면 이사회에서라도 2018년처럼 사장 선임 과정에 시민참여를 제도화해야 합니다.
또 하나, KBS가 다시 일어설 것으로 저는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KBS의 뿌리가 건강하고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민주화 30년의 역사가 그 뿌리입니다. 다만 전제조건이 있죠. KBS 구성원들이 지난 역사를 치열하게 성찰하고 다시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KBS 후배들이 다시 역사의 필연을 만들어 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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