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노하연 기자] 공영방송 KBS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최후진술을 10분 넘게 송출해 ‘내란 세력 스피커’를 자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언론이 내란 옹호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면 안 된다는 언론·시민사회, 학계의 목소리가 무색한 상황이다.
26일 KBS 아침뉴스 <뉴스광장>은 전날 윤 대통령 최후진술을 두 차례에 걸쳐 내보냈다. 이 중 두번째 꼭지 <윤석열 대통령 최후진술>은 “주요 내용을 들어보겠다”면서 윤 대통령의 진술을 10분 이상 방송했다.

첫 번째 꼭지 <“국민 호소용 계엄… 복귀하면 개헌 추진”>은 “계엄의 배경으론 야당을 지목했다” “국회의원을 체포하거나 끌어내라고 한 적도 없다고 했다” “일반 시민 피해도 전혀 없었다고 했다” 등 윤 대통령 측의 진술을 검증하거나 비판하는 대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청래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의 최후진술을 다룬 세 번째 꼭지 “헌법·민주 말살하려…파면이 마땅”>은 “절차적 정당성조차 갖추지 못했다” “포고령 발표부터 국회 봉쇄와 선관위 침탈, 정치인 등 체포 시도까지 모두 내란죄에 해당한다” 등의 발언을 간추렸다. 뉴스광장은 <정청래 탄핵소추위원 최후진술>을 네 번째 꼭지에 배치해 주요 발언을 10분 넘게 내보냈다.
SBS <모닝와이드>와 MBC <뉴스투데이> 등 타사 아침뉴스는 윤 대통령 주장을 단순 인용하지 않고 국민에 대한 사과의 표현이 없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MBC는 첫 번째 꼭지 <반성은 없었다‥.끝까지 야당 탓·시민 탓>에서 “1시간 넘는 발언 중 국민께 죄송하다는 말은 두 번뿐이었다”면서 “이마저도 한 번은 자신을 믿어주는 국민들에게 하는 사과로 읽혔다”고 했다. MBC는 비상계엄이 정당했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면서도 “국회 봉쇄, 계엄 해제 의결 방해와 정치인 체포 시도 등 국회 무력화의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경고성 계엄이었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고 설명했다. 또 “안건 설명도, 회의록도, 행정서명도 없이 계엄 직전 열린 5분짜리 회의도 국무회의가 맞다고 주장했다”며 비상계엄의 위법성을 강조했다.
SBS는 첫 번째 꼭지 <윤 “잔여 임기 연연 않겠다…복귀하면 조속히 개헌 추진”>에서 “대국민 사과에는 인색했다”며 “윤 대통령의 최후진술에서 국민 59번, 탄핵 50번, 간첩을 23번 언급했지만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표현은 단 한 문장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KBS는 최후진술에 등장한 표현을 거론했지만 윤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하는 수준에 그쳤다. KBS는 “'거대 야당'을 44차례, '간첩'을 25차례 언급했고, '죄송'과 '송구'를 각각 2차례, 1차례 언급했다”며 “윤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계엄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혼란과 불편을 끼친 점은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언론시민사회와 학계는 언론이 내란 선동 세력의 스피커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현업단체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의 기자회견 취재에 응해서는 안 된다며 ‘어떤 언론도 내란범의 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냈다. 자유언론실천재단,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등 원로언론인단체는 공동 성명을 내어 ‘민주주의를 지키는 파수꾼이자 최후의 보루로서 언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정치적 중립 운운으로 내란을 방조하지 말라’고 했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장)는 내란사태와 같은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기계적 중립’을 추구하는 보도는 저널리즘 원칙을 수행할 의지가 없는 보도라고 비판했다. 채 교수는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KBS의 이러한 보도는 균형을 단순하게 맞춤으로써 객관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라면서 “내란과 위기상황에서 택하는 이런 균형은 어떠한 의도와 의지를 가진 균형이지 진실을 밝히기 위한 균형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채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 즉 피청구인 측 의도를 더 전달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청구인 측 주장을 덧붙였을 가능성이 높다”며 “가장 중요한 최후진술에서 새롭게 쟁점이 생기는 주장이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이번 변론에서는 새롭게 제기된 사실도 없다. 오히려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한 것인데 그것을 10분이라는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저널리즘 원칙을 지키려는 보도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채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기계적 중립이란 말을 쓰는데, 미국에선 2021년 국회의사당 침탈사건을 통해 극우나 극단주의 주장도 함께 보도해야 한다는 양측주의 (Bothsidesism)에 대한 비판이 많이 있었다”며 “지금은 그런 균형이나 양측주의를 객관적, 중립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채 교수는 “많은 학자들, 언론인들도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나. 이제 KBS 내부에서도 자체적으로, 이런 허위 균형(False Balance)에 대한 문제를 자체적으로 제기해야 한다”며 “이러한 문제 제기가 중요한 이유는 향후 더 중요한 결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결정, 그 후의 정치적 일정, 그로 인해 여러 갈등이 나올 텐데 그때도 똑같이 기계적으로 균형을 주장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채 교수는 지난 3일 민주언론시민연합 특별칼럼을 통해 <내란 극복을 위한 저널리즘 10원칙>을 제안했다. 채 교수는 “모든 주장에 같은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기계적 중립성의 저널리즘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며 “소위 ‘따옴표 저널리즘’은 내란 시기 내란 방조 또는 내란 공모의 효과를 자극한다. 필요한 경우에라도 그 의미와 가시성은 최소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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