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취재하고 계신 분들, 마음 놓고 기사 쓰실 수 있겠습니까?"

윤석열 정부에서 해임된 방송 유관 기관장 4인이 정부정책에 의해 언론 자유와 독립성을 흔들리고 있다며 언론인의 역할을 주문했다. 여권에서 언론을 향해 '사형' '국가반역죄' 등의 극언을 쏟아내고 있으며 '폐간'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등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11일 국회에서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 정연주 전 방통심의위원장 등이 야 4당이 주최한 윤석열 정부 '해직 방송 기관장' 긴급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1일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남영진 전 KBS 이사장,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하 방문진) 이사장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언론정책을 '전두환식 언론 쿠데타'에 빗댔다. 

이들은 "한상혁 방통위원장 해임 이후 3개월 사이 윤석열 정권이 공영방송을 비롯한 비판언론에 자행한 폭거는 가히 쿠데타적 수준"이라며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방통심의위원장·공영방송 이사 해임 ▲'MB정부 언론장악' 이동관 방통위원장 임명 ▲뉴스타파 '신학림-김만배 대화' 보도 수사·겁박 등을 거론했다. 

이들은 "정권의 진정한 목표는 '보도지침'과 '언론통폐합'으로 상징되는 전두환 시대의 언론환경으로까지 퇴행하는 데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지난 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와 관련해 '언론탄압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는 질문에 "언론탄압이라는 프레임에 너무 위축이 돼서 제대로 할 역할을 못한 부분이 있지 않나. 당당하게 대응하겠다"고 답했다. 

이들은 "이 '언론 쿠데타'가 끝끝내 성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이자 근간임을 알고 계신 국민들께서 이를 결코 묵과하지 않으리라 믿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현 정권의 언론정책의 문제점을 제대로 알리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중략)무엇보다 현직 언론인을 포함한 언론계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철저히 인식하고 행동해줄 것을 촉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일부 보수언론이나 그 소속원들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나 가짜뉴스 처벌 등의 조처가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처럼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떠한 비판도 불허하면서 굴종만을 요구하는 권력이 그들에게만 숨 쉴 공간을 허용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 안이하고 편의적인 생각"이라며 "스스로 언론임을 자임하고, 언론인임을 자임한다면, 모두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언론에 대한 무도한 조처에 맞서 언론의 자유와 방송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할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이들은 기자회견 후 이어진 야4당과의 간담회에서 현직 언론인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은 "이 같은 현실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때가 되어서 '이러지 말라' 성명서 하나 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며 "저희뿐 아니라 취재하고 계신 분들도 '내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후에 마음놓고 기사 쓰시겠나"라고 반문했다. 

한 전 위원장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와 법률적 제도가 형해화되고 있다. 언론보도의 내용을 국가 공권력이 직접 문제제기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세상"이라며 "그걸 넘어 서서 보도·제작 시스템을 이런저런 사유로 손보겠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내놓고 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언론의 자유는 형식조차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법원 결정으로 해임처분이 정지돼 복귀하는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은 "우리 언론인들 한 분 한 분이 그 자리에서 언론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지 자문자답해봐야 한다"며 "지금 여기 앉아서 기사를 쓰는 분들이 '내가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이어야 하는가' 생각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권 이사장은 "과거 유대인 대학살에 참여한 아이히만에 대해서 역사적 교훈을 얘기한다. 매 순간 우리는 그런 것들이 요구되는 현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언론인, 정치인, 공무원, 사법부가 각자에게 부여된 공적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역사적 퇴행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부제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이다. 유대인 학살의 주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은 그저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권 이사장은 "방통위 공무원들이 방통위설치법이 왜 생겼는지 정확하게 알고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책무를 다할 때 사회가 퇴행하지 않는 것"이라며 "저는 방문진 이사장으로 다시 복귀해 방문진법에서 하라고 한 MBC의 독립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11일 국회에서 (왼쪽부터)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남영진 전 KBS 이사장 등이  '해직 방송 기관장'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1일 국회에서 (왼쪽부터)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남영진 전 KBS 이사장 등이  '해직 방송 기관장'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연주 전 방통심의위원장은 "저희 4명이 해임되는 과정뿐 아니라 공영방송 전반과 비판언론에 대해 진행되어 온 일들을 보면서 먼저 든 생각은 '문명사회의 바탕인 합리, 상식, 이성이 다 사라져버렸구나'하는 것"이라며 "그 자리에는 대신 폭압적 힘의 논리, 거짓과 몰염치, 절차의 정당성을 철저하게 무시한 군사작전 같은 속도전이 들어섰다. 한 마디로 '야만의 시대'에나 있음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집권세력의 언어들은 '사형' '1급 살인죄' '폐간' '원스트라이크 아웃'으로, 이런 표현들은 검열국가·전체주의 체제에서나 있을 법한 그런 표현들"이라며 "국민을 만만하게 보는 오만이고, 어쩌면 60% 이상의 국민이 대통령을 거부하는 민심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비명인지도 모르겠다. 언론은 언론대로, 정치권을 정치권대로, 시민사회는 각 분야에서 제 몫의 일을 다 해내면서 참여와 연대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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