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김민하 칼럼] 이 정권의 ‘황태자’라고 할 수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사표를 내고 여당 비대위원장을 맡는 일을 공식화했다. 평가는 엇갈린다. 보수적 유권자층에선 그동안의 ‘영남당’ 티를 벗고 수도권 중심의 젊은 정당이라는 이미지로 여당이 거듭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반대편에선 결국 한동훈 전 장관이 ‘윤석열 아바타’의 입장에서 용산 직할체제를 강화할 거라는 점에서 또다른 퇴행일 뿐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대다수 언론은 비대위원장으로서 한동훈 전 장관이 맞닥뜨릴 첫 번째 시험대는 김건희 특검법 관련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내느냐라고 본다. 한동훈 전 장관은 이미 김건희 특검법을 ‘악법’으로 규정한 바 있다. 특검 추천권이나 시점의 문제를 들어 야당이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 좋은 일이라고 한 거다. 이 발언의 직후에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하다는 취지로 이해됐지만, 조선일보 등이 적극적 해석을 덧붙인 이후에는 악법으로 규정한 근거가 된 대목이 수정되면 대통령에게 특검 수용을 사실상 촉구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건희 특검 수정안’ 시나리오가 실제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은 다소 분분하다. 일부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대통령실과 여당 일부에서는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중앙일보는 21일 지면 기사에서 “이에 대해 여권 핵심부는 불쾌해하는 분위기”라며 “총선 후 특검은 특검 자체를 인정하겠다는 것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여권 고위관계자 발언을 인용했다. 동아일보 22일자 이기홍 기자의 칼럼을 봐도 “필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한 장관 발언에 상당히 불쾌해하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이미 다 문제없는 걸로 판명난 일인데 왜 특검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여지를 두느냐는 것”이라고 돼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대통령의 의중이다. 주목할 것은 종편 방송사들이 ‘윤석열 아바타’라는 일각의 비판을 의식해 한동훈 전 장관과의 관계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걸로 알려진 발언을 보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21일 채널A는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참모들과의 자리에서 “검사 시절부터 한동훈의 상사로서 지시해 본 적 없고 늘 의견을 구해왔다”, “있는 그대로를 나에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발언한 걸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TV조선도 비슷한 보도를 한 바 있는데, 최근 인터넷 사이트 등에선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는 한동훈 전 장관이 “누구에게도 맹종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한 바와 대구(對句)를 이루는 것이다. 이런 기류라면 한동훈 전 장관이 김건희 특검법과 관련한 뭔가를 제안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그걸 전격적으로 수용하면서 보수언론이 그걸 엄청난 결단으로 칭송하는 그림이 나올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수사 시점을 총선 이후로 늦추고 특검 추천 권한을 바꾸는 등의 ‘김건희 특검 수정안’ 시나리오는 야당이 동의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크다고 보기 어렵다. 이 경우 ‘김건희 특검 수정안’ 시나리오는 오히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명분만 키우는 걸로 귀결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총대를 메고 설득에 나서고 대통령도 큰 결단을 했지만 선거에 혈안이 된 야당이 이를 거부해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는 식이 되는 거다.

결국 ‘할 말은 하는 관계’라는 이미지만 챙기겠다는 게 될 수 있는데, 이렇게 된다면 결국 ‘꼼수’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거라고 본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이 대통령실과 여당이 주장하는 대로 전 정권에서 탈탈 털어 아무 문제가 없는 사건이라면 진작 특검을 수용했어야 할 일이다. 그랬으면 선거 앞두고 특검을 하니 마니 할 일 자체가 없었다. 침대 축구로 일관하다 이제와서 이러는 건 똑같은 정치적 접근이거나 최소한 무능이다.

김건희 특검 문제와 더불어 한동훈 비대위가 용산과 관계 설정의 중요 고비가 될 지점은 공천 관련 대목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대규모의 물갈이와 친윤 기득권과의 결별을 촉구하고 있는데, 여기서 미묘한 갈등선이 감지된다.

가령 종편을 포함한 일부 보수언론은 ‘실세’로 거론되는 이철규 의원과 박성민 의원을 겨냥하고 있다. 대통령 혹은 영부인과 가깝다고 알려진 두 사람이 총선판을 짜고 있는데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유지돼서는 필패일 테니, 이 두 사람의 거취부터 파격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거다. 특히 박성민 의원의 경우 김기현 대표 체제의 마지막을 장식한 초선 의원 난동 사건의 배후라는 설도 있어 더욱 문제라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그런데 당 내외에서는 김기현 지도부에 참여했던 일부 최고위원들과 함께 이들 친윤 실세들이 ‘한동훈 비대위원장’ 카드를 당내에서 강하게 주장해 관철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그렇잖아도 정당 경험이 없는 한동훈 전 장관이 이끄는 비대위가 들어서면 이들이 ‘한핵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것인데, 이 때문에 당 내에선 벌써부터 자칭 ‘한핵관’들을 멀리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즉, 한동훈 전 장관으로서는 비대위원장으로서 친윤 기득권과 함께할 것인가, 아니면 이들을 공천 과정에서 날려버릴 것인가를 결단해야 하는 문제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유상범, 강민국, 이철규, 박성민 의원 등과 10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유상범, 강민국, 이철규, 박성민 의원 등과 10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그런데 짚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김기현 대표가 들어설 때도 그랬고 인요한 혁신위 때도 똑같았지만, 공천을 파격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 뒤에는 빈자리에 누가 오느냐에 대한 우려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용핵관’, ‘검핵관’이 빈 자리를 채우는 게 아니냐는 게 대체적인 우려였다. 그런데 최근 보수언론 등은 그렇게 되면 용산과의 관계설정은 실패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친윤 기득권들은 앞장서서 ‘용핵관’, ‘검핵관’을 꽂는 역할을 자임할 것으로 여겨져왔다. 한동훈 전 장관이 ‘윤석열 아바타’라면 친윤 기득권을 날려버리더라도 역시 ‘용핵관’ ‘검핵관’을 꽂는 역할을 자임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보수언론이 기대하는 대로 뭔가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킬 공천을 주도할 것이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라면 윤석열 대통령은 그걸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수 있는 것일까? 검사 시절에는 성과를 내는 걸로 자기 자신을 증명할 수 있었으니 능력으로 알아주는 관계가 될 수 있었고 따라서 얼마든지 상대를 존중해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의 세계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한동훈 전 장관은 차기 대권주자이자 잠룡이다. 한국 정치에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은 어떤 측면에선 상시적인 제로섬 게임을 벌이게 되는 게 현실이다. 더군다나 임기 초반에, 미래권력이 여당에 용산의 통제에서 벗어난 자기 세력을 독자적으로 구축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립’에 집착하기로 유명한 윤석열 대통령이 용인할까? 대단히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한동훈 비대위의 미래를 보수언론의 이상적 기대로 바라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물론 이 어려운 ‘킬러문항’을 만약 성공적으로 풀어낸다면, 한동훈 전 장관은 대권으로 그야말로 직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개인으로서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일지 모르겠지만, 집권세력의 책임 있는 정치라고 보긴 어렵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스스로 생각할 시간도 없이 다들 총선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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