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보수언론의 심경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미치고 펄쩍 뛰겠다”에 가까울 것이다. 표정을 보니 그렇다. 총선 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대통령이 변할 기미는 없고 여당의 혁신위는 빈손으로 활동을 종료하기로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가장 매서운 것은 역시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8일자 지면에 국민의힘 총선 전망이 매우 어둡다는 취지의 기사들을 상당히 힘을 주어 실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권심판론 대 안정론 구도가 2020년 총선 당시와 여야의 자리를 바꿔 완전히 유사한 상황인데, 국민의힘 내부 분석에 따르면 서울에서 확실한 우세로 분류되는 지역구는 강남 일대의 단 6곳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충격의 대패를 했던 당시 총선 결과와 유사한 성적표를 여당이 받아들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는 거다.

이러한 분석은 인요한 혁신위가 사실상 활동 조기 종료를 공식화한 바로 다음 날 실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분위기가 이렇게 좋지 않은데 어떻게 혁신을 거부하고 지금 상황에 안주할 수 있느냐는 취지인 것이다. 조선일보의 이런 논조는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 패배 직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죽 이어지고 있다. 그 정도로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는 것일 테다.

그런데, 이미 수차례 지적한 일이지만 여당이나 혁신위를 얘기해 봐야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다 소용이 없는 일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이야 혁신위가 뭐라도 성과를 내면 그것을 ‘대통령의 변화’로 윤색해 낼 자신이 어느 정도 있어 기대를 거는 것이겠으나, 그 내막을 알아보지 못할 유권자들이 아니다. 대통령이 변하지 않는 가운데 여당이 용산이 그어 놓은 선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독]
[단독] "김건희 여사, 명품백 받았다" 주장…해당 목사 "서울의 소리 측에서 준비해줬다" (11월 28일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는 최근의 현안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영부인 문제다. 조선일보는 7일자 ‘양상훈 칼럼’을 통해 김건희 여사의 소위 ‘명품백 논란’에 대해 비판했다. 관련 보도 자체에 윤리적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김건희 여사가 지나치게 가벼운 처신으로 일관하고 있어 정권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라는 취지다. 8일 동아일보는 <이 나라 보수는 ‘김건희 리스크’를 더 이상 안고 갈 수 없다>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여기에는 김건희 여사가 대국민 사과를 하고 관저를 떠나야 한다는 주장이 포함돼 있다. 윤석열 정권 비판을 한 마디 하려면 우선 민주당 비난을 열 마디 이상 하는 식으로 해온 논자의 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평정심을 잃었다는 느낌이다.

두 글 모두 신문사 내부 주요 인사의 기명 칼럼이다. 유튜브의 의혹 제기에까지 답하지는 않는다든지, 공작에는 대응하지 않겠다는 식의 용산 대통령실 및 여당의 반응이 이들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여기서도 드러나는 거다.

이 글들은 공통적으로 김건희 여사 논란의 원인이 이번 사건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많은 지적과 제안이 있었는가? 제2부속실을 만들라고도 했고 특별감찰관을 임명해야 한다고도 했다. 받아들여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설명도 없다. 대통령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이에겐 ‘내부 총질’이니 뭐니 하며 엄하게 굴면서 자기 주변 사람에겐 한없이 관대한 거 아니냐는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해도 좋고 ‘내로남불’이라 해도 좋다. 어찌됐건 한국 정치에선 이미 죽을죄가 되어있는 죄목이다. 이제 특검을 하네 마네 하는 와중에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특단의 대응이 없으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라는 인식이 커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대통령이 가까운 사람만 챙긴다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또 하나의 소재는 검사 출신 인사들의 요직 진출과 거기에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용산 대통령실의 태도이다. 이 역시 보수언론이 경계심을 갖고 비판하는 주제 중 하나인데, 특수부 검사 출신인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이 새로운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되면서 또 하나의 사례가 추가된 셈이 되었다.

이에 대해선 조선일보 역시 7일 사설에서 비판했는데 <방통위원장까지 검사 출신, 꼭 이렇게 해야 하나>란 제목이 달려있다. 동아일보도 8일 유사한 비판을 했는데 <방통위원장, 왜 대통령 선배 검사인지 설명이라도 해야>란 제목의 사설에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절차와 내용 모든 면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라는 취지다.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보수언론이 협조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겠는가. 김홍일 후보자에 대해 대통령실이 내놓은 ‘소년 가장’ 등의 미담이나 ‘섞박지’ 일화 같은 얘기를 열심히 쓴 걸 보면 열심히 해볼 마음이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입지전적인 이력이나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인물이라는 사실 등이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로서의 적격성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식당에서 내온 반찬을 보고 떠올릴 정도라면 도대체 얼마나 가까운 사이라는 얘긴가? 그렇게 가까운 사이의 인물을 ‘방송장악’ 논란의 대상이 되는 자리에 꽂아 넣는다는 걸 좋게 볼 유권자가 어디에 있을까? 정치적으로 역효과가 클 수밖에 없는 일을 제대로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도 제공하지 않은 채 밀어붙이니, 보수언론도 끝내 비판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거다.

할 수 있는 게 사실상 없는 상태에서 여당 일각에선 대통령이 아닌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을 간판으로 총선을 치러 미래권력 간의 대결 구도를 만들고 정권심판론을 희석시키는 전략을 써보자는 제안도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가령 한동훈 장관이라고 하면, 대통령이 감싸고 도는 ‘자기 사람’의 대표격인 인물이 아닌가? 캐릭터만 바꿀 뿐 정권심판론의 원인이 되는 구조는 그대로 두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게 무슨 큰 효과가 있겠는가?

여당이 정치적 목숨을 걸고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고언하고 그것을 혁신의 동력으로 삼는 모습이 연출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민의힘은 기득권을 내려놓자면서도 거기에 ‘윤심이 실렸느니 아니니’만 주요 논거로 삼아 얘기를 했다. 윤심이니까 해야 한다고 하지 않으면 안 통하는 생태계인데, 이제 그것도 반쯤은 잘 안 먹히게 되는 게 아닌가 의심받는 시점이 되었다. 이러니 보수언론이 평정심을 찾을 수 있겠는가. 윤석열 대통령은 또 해외 출국을 한다는데, 지금 이 상황에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과 점검을 좀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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