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한동훈 비대위원장 등장 이후 국민의힘을 보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기보다는, “역시나 했는데 다시 한 번 역시나” 하는 기분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국민의 신뢰를 어떻게 되찾겠다는 것인지 상당한 의문이 든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수락 연설만 봐도 그렇다. 대부분의 언론은 반성과 쇄신 의지를 기대했다. 이를 통해 용산과의 관계 재설정 의지를 시사할 수 있을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설 내용은 그러한 기대와는 달랐다. ‘이재명의 민주당’ 비판으로 시작해 특권을 포기해야 공천을 주겠다는 얘기로 끝났다. 국민의힘이 어떤 ‘비상사태’에 있고, 자신이 왜 ‘비상대책’을 떠맡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국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국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이 비상상태에 이르게 된 이유와 한동훈 비대위원장 등장의 경위는 대통령의 여당 장악 의지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때문에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에서 이를 언급했다면 당연히 대통령에게 이제는 할 말을 하겠다든가 하는 얘길 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의식적으로 그런 상황을 피해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자기 편’을 직접적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상황을 최소화 하려는 생각인 것은 분명하다. 수락 연설에 반성의 맥락으로 등장하는 쓴소리는 “국민들께서 합리적인 비판 하시면 미루지 말고 바로바로 반응하고 바꾸자”라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대한 ‘윤석열 아바타론’을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찾는다. 하지만 이날 연설을 보면 인식과 철학에서도 두 사람의 유사성은 확인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대한민국 역사를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한다. 정상의 영역에는 독립운동, 다부동전투, 인천상륙작전, 연평해전, 포항제철 및 산업화, 민주화 항쟁과 넥타이부대 등이 포함된다. 비정상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은 이재명의 민주당, 운동권 특권 세력, 개딸 전체주의 등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연설의 핵심은 이 비정상을 총선에서 청산하기 위해 자기가 비대위원장으로 왔다는 거다.

이런 구도는 윤석열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가 되기 전부터 주장해온 바 있다. 문재인-이재명-운동권-주사파 일당들만 정상화 하면 대한민국이 정상화 되므로 자신이 나서서 그 일을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정치에 나섰던 것이다. 이런 구도는 더불어민주당이 집권 세력이던 대선 국면에선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엔 달라졌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바로 그런 맥락에서 해온 말들을 ‘남 탓’이나 ‘오만함’으로 받아들였다.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 “과거엔 민변 출신들이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와 같은 발언으로 지지율이 폭락한 게 대표적 사례다.

집권 2년 반이 안 되는 기간 동안 윤석열 정권이 보여준 것은 또 다른 ‘비정상’이다. 그 ‘비정상’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게 최근까지의 여당 상황이다. 오죽하면 조선일보가 “국민 입장에서는 누가 비대위원장이 되느냐보다 이 모든 일을 결정하고 집행한 대통령으로부터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설명을 듣고 싶다”, “어떻게 대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가장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임기 초반을 이렇게 보내면서 세 번이나 비상대책위를 구성해야 하는지 책임자인 대통령은 설명을 할 의무가 있다”(지난 15일자 사설)고 할 정도다.

그러니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연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비정상을 청산하자”고 하는 것은 적어도 그 주장을 하는 주체가 ‘정상’인 걸로 생각되는 경우에 효과가 있는 것인데, 이미 스스로가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비정상을 청산하자”고 하는 게 “나는 대통령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선언하는 것 외에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는 거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

이해가 어려운 것은 연설로 끝나지 않는다. 한동훈 비대위는 28일 8명의 비대위원을 지명하였는데 김예지 의원을 제외하고는 비정치인 출신이라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그런데 지명된 이들 중 구자룡 변호사, 박은식 호남대안포럼 대표, 윤도현 SOL 대표 등은 김기현 체제에서 이미 영입인재로 공개된 인물들이다. 성의 있는 인선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 큰 의문은 민경우 수학연구소장, 김경율 회계사 등의 인선에서 드러난다. 이들은 ‘이재명의 민주당’과 86운동권을 비난하는 데에는 쓸모가 많겠지만 보수가 반성을 하고 거듭나는 데에 필요한 인물들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들을 상대방 비난을 위해 활용하는 쓸모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들이 과거 운동권 또는 참여연대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반감됐을 거라는 점도 짚어봐야 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썼던 영수증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했는데, 운동권 경력으로 보수정치 내에서 운동권 정치를 비난하는 스피커를 확보해 집권당의 비대위원을 맡는 것 역시 ‘썼던 영수증 또 내미는’ 행위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운동권 특권정치’와 뭐 그리 다른가?

이 모든 장면은 우리가 이미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 계속해서 봐왔던 것들이다. 한동훈 비대위를 통해 다시 한 번 똑같은 일들 다시 겪어야 한다면, 그 비대위는 뭐하러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국민에게 그런 느낌을 받게 해서 과연 비상한 혁신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용산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각자 할 일을 하면 되는 관계라고 했는데,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똑같으면 각자 할 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겠나. 이럴 거면 차라리 ‘윤석열 비대위’를 하는 게 맞지 않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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