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박민 KBS 사장이 단체협약·편성규약을 무시한 인사 물갈이와 프로그램 폐지, 모호한 공정성 잣대로 실시한 대국민 사과 등으로 언론의 관심을 끌어당겼다. "쿠데타를 방불케 한다"는 야당 비판이 과장이 아니라는 언론 평가가 나온다. 박 사장의 조치를 옹호한 조선일보도 "현 정권 칭송 보도를 한다면 다음 정권에서 또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사장은 취임 다음 날인 14일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어 "공정성을 훼손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국민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기자들의 질문은 급작스러운 시사보도프로그램 진행자·앵커 교체와 공정성 기준에 쏠렸다. 간부 내정자가 제작진과의 협의 없이 하차 통보를 지시하는 등 편성규약을 훼손하는 일방적인 진행자 교체 논란이 한창이다.
박 사장은 공정성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밝히지 않았다. 박 사장은 '주진우 라이브' 진행자 주진우 씨, 저녁종합뉴스 '뉴스9'의 이소정 앵커 등의 교체가 '기습작전'처럼 강행됐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사장으로서 특정 프로그램의 개편이나 방향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면서 "본부장 인선 후 문제가 있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해야할지 협의해 추진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구체적인 과정은 모른다"고 했다. 자신이 직접 개입한 것은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제작진과 논의 없이 '더 라이브' 편성이 삭제됐다. 라디오센터장 '내정자'는 주진우 씨 하차를 담당 PD에게 통보했다. 제작진이 거부의사를 밝히자 사규를 거론하며 겁박을 했다고 한다. 보도본부는 이소정 앵커에게 전화해 하차 통보를 했다. 앞서 KBS '뉴스광장' 앵커도 보직 '내정자'로부터 교체 시그널을 받고 시청자들에게 하차 인사를 했다.
15일 한국일보는 사설 <휘몰아치는 KBS 칼바람… 또 다른 편파 우려한다>에서 "'군사쿠데타를 방불케 한다'는 야당의 비판이 과장이 아닌 모습"이라며 "굳이 '프로그램 개편 전에 제작진과 협의해야 한다'(31조)는 KBS 단체협약, 편성규약을 들지 않더라도, 제작진이나 실무진과 충분한 상의를 거치는 건 기본 상식"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이런 조치들이 향후 KBS 행보의 예고편은 아닐지 걱정스럽다. 옳든 그르든 수년간 시청자와 만나온 진행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을 줄 만큼의 아량은 있어야 했다"며 "지금까지의 편파방송이 문제가 됐듯, 단 며칠의 행보만으로도 국민들은 또 다른 편파를 낳지 않을지 우려한다.(중략)다음 정권에서도 칼바람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기사 <취임 하루 만 '대국민 사과'한 박민 KBS 사장 "불공정 편파 보도, 유감">에서 "박 사장이 제시한 불공정 편파보도들은 현재 여당에 비판적이거나 불리한 보도들이 대부분이라 또 다른 정치적 편향성 시비를 불러오거나 권력 감시 기능을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며 "KBS는 한국언론재단 언론수용자 조사에서도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으로 신뢰도 1위를 차지한 바 있다"고 전했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사설 <‘박민 KBS’의 인사·콘텐츠 칼바람, 이게 공영방송 장악이다>에서 "고강도의 콘텐츠 감별과 문책을 예고하면서도 ‘공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박 사장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류희림) 제재를 불공정 방송의 사례로 언급한 데 대해 "친여권 위원 우위로 재편된 방심위는 최근 비판 언론을 옥죄는 정부 기조에 맞춰 무리한 심의·징계를 강행·남발해 안팎의 비난을 사고 있다"며 "정부 입맛에 맞지 않고 비우호적 보도를 찍어내는 방심위 결정을 불공정 판단 기준으로 삼는 건 온당치 않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낙하산’ 소리를 듣는 KBS 사장이 정부·여당에 불리한 보도에 불공정·편향 딱지를 붙여 문제 삼고 책임을 물으려는 것인가. 그러면 정부 비판 취재와 보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그렇잖아도, 박 사장은 취임 첫날인 지난 13일 칼바람 인사를 단행했다.(중략)사측이 제작진 의견을 무시하고 편성규약을 어기며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무너뜨린 처사"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윤석열 대통령이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박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군사작전 벌이듯 KBS 물갈이에 나서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하루라도 빨리 KBS를 쥐고 흔들겠다는 정부의 조급함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며 "박 사장의 행태는 대국민 사과까지 하며 밝힌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겠다'는 말과도 정반대다. 공영방송이 또다시 정권의 전리품이나 소유물로 전락되지 않도록, 독립적인 지배구조를 개편할 때가 됐다"고 썼다.
한겨레는 사설 <‘KBS 점령’ 속도전 펴는 박민 사장, ‘땡윤 방송’ 급한가>에서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기는 하나 정도가 심하다. 원칙도 절차도 저버린 점령군식 행태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라며 "사장이 바뀌면 프로그램 개편이나 출연진 교체가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합리적이고 투명해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한국방송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이런 상식과 거리가 멀다. ‘취재 및 제작 책임자는 방송의 적합성 판단 및 수정과 관련하여 실무자와 성실하게 협의하고 설명해야 한다’는 한국방송의 편성규약은 전혀 안중에 없는 듯하다"라며 "이 모든 일의 종착점이 ‘땡윤 방송’이라는 걸 모를 국민은 많지 않다. 정치권력과 손잡고 공영방송을 유린한 무도한 행태는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썼다.
조선일보는 박 사장의 조치들을 옹호하면서도 다음 정권에서 사과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KBS의 왜곡 보도 사과, 다음 정권에서 또 사과하지 않아야>에서 "KBS가 문재인 정부 시절에 언론이 아닌 정권 응원단으로 공공성을 저버린 사례는 셀 수도 없다.(중략)'공영방송이 아니라 정당 유튜브'라는 지적까지 들었다"면서 "KBS 일부 이사조차 '편파성이 독재 정권 때보다 심하다'고 비판했을 정도"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불공정 방송 백서를 만들겠다는 박 사장의 약속에 대해 "공정성 회복을 위해 당연한 조치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하는 행태도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조선일보는 "근본적으로는 KBS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리품 노릇을 한 것이 공공성 위기를 불렀다"며 "전 정권 왜곡 보도를 사과했지만, 현 정권 칭송 보도를 한다면 다음 정권에서 또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박 사장의 인사조치를 "취임하자마자 편파·왜곡 방송 시비가 일었던 프로그램들을 대거 수술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라고 치켜 세웠다. 서울신문은 "인적쇄신에 그칠 일이 아니다. 박 사장이 강조했듯 지난 수년간 이어진 편파·왜곡 보도에 대해 철저한 진상 규명과 함께 책임을 묻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며 "모쪼록 뼈를 깎는 노력으로 KBS가 다시 국민의 방송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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