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국회가 차별금지법 청원 심사를 재연장하자 시민단체들이 ‘나중으로 미루는 것도 차별’이라며 국회 원내 정당에 차별금지법에 대한 공식 입장을 촉구했다.

지난 6월 14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국민동의청원은 30일 안에 10만명 동의를 얻으면 소관 상임위로 자동회부된다. 소관 상임위는 90일 이내로 청원을 심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9월 11일 청원심사를 11월 10일로 한 차례 연기한 데 이어 9일 청원 심사 기간을 21대 국회 임기만료일인 2024년 5월 29일로 재연장했다. 현재 국회에 지난해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과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이상민, 박주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평등법안 3개 등 4개의 법안이 발의된 상황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에 관한 정당의 입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사진 미디어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앞에서 국회의 차별금지법 국민동의청원 심사 재연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각 정당에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입장을 묻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한상희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은 “내용도, 가치도, 정신도 없고 단지 선거 이해타산만 있는 ‘나중에’라는 망령이 여의도를 넘어 청와대까지 휩쓸고 있다”며 “‘나중에’는 ‘나중에 하겠다’라는 의미로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과정을 거치고, 계획을 이행하겠다는 약속이 따라와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의 ‘나중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 위원장은 “(대선후보들은) 정치적 이해관계만 충족시킬 생각만 하면서 표를 달라고 하고 있다”며 “우리가 (투표장에) 왜 나가야 하나, 우리도 그들에게 똑같이 ‘투표’도 ‘지지’도 나중에 하자”고 말했다. 이어 “차별없는 사회 모습을 300명의 국회의원이 있는 국회에서 먼저 만들어야 한다”며 “나중이 아니라 지금 평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 인권단체도 한국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매우 오랫동안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 제대로 된 심사조차 못받고 있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이 국제적으로 큰 지지와 관심을 받는 사안임을 강조하고 싶다. 이제라도 법을 통과시켜 (시민들을) 차별로부터 효과적으로 보호할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11일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7개 국제단체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서한을 국회 법사위에 전달했다”며 “이 법의 제정은 한국의 인권 승리일 뿐 아니라 아시아의 승리이며 더 나아가 전 세계 인권의 진전”이라고 말했다. 윤 사무처장은 “한국 정부는 차별로 인한 피해자들의 정의를 회복하고 많은 이들에게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며 “한국이 국제 인권 의무를 준수하고 인권 보장에 전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전 세계에 보여달라”고 했다.

소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어떤 사람은 차별 금지를 바라고 애원하는데 그걸 다른 어떤 사람이 논의도 하지 않고, 차별하겠다고 한다”며 “차별하겠다고 하는 게 갈등이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이냐”고 반문했다. 소주 집행위원은 “‘나중에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말도 생각해보니 다 차별”이라며 “필요한 논의를 안 하는 것, 외면하는 것 다 차별이다. 지금 거대 정당 정치인들이 차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현수(도구)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활동가는 “발언을 준비하면서 ‘했던 말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분노가 일었다”며 “차별금지법이 마치 소수자만을 위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이 법을 구제받을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국민의 대다수다. 사회적 합의는 필요 없고, 더 이상 지체할 시간도 없다”고 강조했다. 김 상임활동가는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한국 사회가 더욱 평등한 사회로 나가는 데 역사의 한 줄로 기록되고 싶지 않냐”며 “그 역사를 만들 적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기자회견 후 국회 원내 정당에 차별금지법에 관한 당의 공식적인 입장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제출했다. 오는 26일 법 제정을 촉구하는 ‘신문광고’ 게재와 ‘1인 깃발 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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