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차별금지법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충족해 법제사법위원회에 자동회부되자 수면 아래에 있었던 재계의 반대 입장이 기사화되고 있다. 이전까지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는 보수개신교계가 도맡았다.

한국경제는 22일 <차별금지법, 또 다른 '기업 옥죄기' 되나>, <대출조건 차등·학력별 임금차이까지 '불법'이라는 차별금지법>, <가해자로 지목되면… 차별 안했다고 입증 못할 땐 손해배상 책임> 등의 기사를 게재했다.

6월 22일자 한국경제신문 1면·3면 기사 갈무리

한국경제는 "경제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며 "경제계에서는 차별 금지라는 명분 아래 또 다른 ‘기업 옥죄기’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경제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평등법에 대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조항이 대거 담겨 있다"며 "예컨대 평등법 제13조는 ‘모집·채용 공고 시 성별, 학력 등을 이유로 한 배제나 제한을 표현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는 차별금지법안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또 한국경제는 "손해배상 조항을 포함하면서 차별했다고 지목받은 사람이 차별 피해에 대한 입증 책임을 지도록 했다"며 입증 주체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경제는 "근로자가 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하면 기업이 차별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며 "경제계에서는 과도한 소송에 휘말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인사와 성과급, 고용 및 해고에 불만을 품은 직원들이 국적, 학력, 출신 지역, 성적 지향(동성애) 등을 핑계로 대며 차별받았다고 주장할 경우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라고 썼다.

파이낸셜뉴스는 평등법이 발의된 지난 16일 <차별로 손해 입혔다면 3~5배 배상?… 재계 "지나친 규제입법 반대">기사에서 "법안에 명시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기업에 지나친 경영부담을 지울 수 있어 또 다른 포퓰리즘 입법이라는 비판도 나오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재계 관계자들은 "고용형태 등에 따른 합리적 차이까지 포괄적으로 불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을 가져올 것", "손해배상액 등을 법으로 규정할 경우 남소에 따른 사회적 자원의 낭비가 우려된다" 등의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24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민주노총, 이주노동자조합,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법' 등은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 제정 10만행동'을 선포했다. (사진=미디어스)

이 같은 재계의 주장은 차별피해 당사자들이 겪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국회 국민동의청원글을 게재한 동아제약 채용성차별 피해자는 "저는 만 25년 인생의 대부분을 기득권으로 살았다. 유복한 한국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서울과 해외에서 거주하였고,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이성애자이자 비장애인이자 정규직이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6개월 전, 이 모든 권력이 단지 저의 성별을 이유로 힘없이 바스러지는 경험을 했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는 "이는 저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었다. 아이비리그를 졸압한 제 친구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면접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고,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는 아이와 함께라는 이유로 여러 식당에서 출입을 거부당했다"며 "이 둘은 제게 말한다.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국에서 아이 낳지 말라고, '탈조선'하라고 말이다"라고 했다.

지난달 24일 '차별금지법 제정 10만행동' 선포 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박한희 변호사는 차별피해 당사자로서 피해입증의 어려움을 증언했다. 박 변호사는 2017년 열릴 예정이었던 여성성소수자 생활체육대회의 대관을 민원이 제기되자 취소한 동대문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박 변호사는 "차별 가해자가 으레 그러하듯 동대문구는 절대 자신들이 성소수자 행사를 차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판사는 저희에게 동대문구가 성소수자를 차별할 의도가 있었는지를 입증하라고 요구한다"며 "상대방의 차별의도를 어디까지 입증 가능할까. 하물며 충분한 자료를 갖지 못한, 법률적 지식이 없는 차별 피해자들은 어떠할까"라고 말했다.

이어 박 변호사는 "차별이 해소되고 예방되기 위해서는 개인들이 겪는 무수한 차별경험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고, 사회가 들어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며 "때문에 포괄인 차별금지사유를 규정하고 입증책임 전환 등의 규정을 갖춘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절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등법 등이 규정한 차별피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고의성, 지속성, 반복성, 피해자에 대한 보복성, 차별피해의 규모 등을 고려해 '악의적 차별'이 인정될 경우에 해당된다. 특히 평등법의 경우 피해입증 책임을 원고와 피고에게 양분했다. '차별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차별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자가,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점은 차별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자의 상대방이 각각 입증하도록 했다.

지난달 3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평등의 약속, 차별금지법 바로 지금'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사유 중 하나로 '고용형태'를 꼽고 있는 게 사실이다. 법안은 '고용형태'를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을 목적으로 하는 통상근로와 단시간 근로, 기간제 근로, 파견 근로, 그 밖에 통상근로 이외의 근로형태'로 규정하고 있다. 즉 고용 전 영역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금지한 것이다.

조혜인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노동건강연대에 게재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노동현장은 어떻게 변할까?>에서 "현행 기간제법, 파견법에 임금과 근로조건에 관한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고 시정하는 제도가 도입되어 있으나, 이러한 차별 시정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다"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오히려 조 변호사는 "현행 비정규직 차별 시정 제도가 실효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가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정성 그 자체에 있음을 생각해볼 때, 법안 역시 현행 제도와 유사한 한계를 반복할 위험이 있다"며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차별을 금지해야 기업의 생산성이 더 높아진다는 조언도 나온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27일 시사인에 게재한 <차별금지는 윤리를 넘어 '조직의 생존 문제'>에서 "차별금지법은 차별행위에 대해 사후적인 구제 조치를 취하는 법이기도 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기능은 기업·대학 등 각 개별 조직에 차별금지와 다양성 문제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각 조직들이 스스로 정책을 수립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홍 교수는 젠더 다양성과 인종·문화적 다양성이 높은 상위 25% 기업이 다양성이 낮은 하위 25% 기업보다 수익률이 각각 25%, 36% 높다는 '매킨지 보고서' 내용을 인용하며 차별금지와 다양성 증진을 위한 기업의 책무를 강조했다.

홍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보고에 관한 국제기준에는 차별금지·평등·포용에 관한 항목이 높은 비중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회적 책임 보고서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이 내용을 담거나 아예 다양성과 포용에 관한 보고서를 따로 내는 기업도 있다"면서 "다양성최고책임자(CDO)를 임명하고 다양성 담당 부서를 두어 기업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감시하기도 한다. 이에 비하면 한국 기업과 대학이 다양성에 대해 보이는 관심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2018년 매킨지가 발표한 '동등의 힘:아시아·태평양에서 여성 평등의 확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직장 내 성평등은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하위권이다. 한국은 직장 내 양성평등 점수가 0.39점에 그쳐 18개국 평균인 0.44점을 밑돌았다. 여성 임금차별과 유리천장이 아시아 최악 수준으로 조사됐다. 매킨지는 한국이 양성평등을 앞당길 경우 GDP 9%가 증가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편, 앞서 2007년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제정안을 입법예고했을 당시 재계와 보수언론은 학력·병력에 의한 차별금지 조항이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저해한다며 가장 먼저 반대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에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차별사유에서 '성적지향' 삭제를 요구하면서 법무부는 성적지향, 병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언어, 출신국가, 범죄 및 보호처분 등의 차별사유 조항을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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