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보수양당은 우리를 이남자와 이대녀의 틀로 해석하는 것을 중단하십시오. 보수양당은 우리가 놓여 있는 자본주의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정치무대에서 사라져 주십시오. 기후위기를, 성차별 문제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보수양당에겐 정치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23개 청년·학생단체(총 507명)가 4·7 보궐선거 이후 거대양당이 시대적 과제를 외면한 채 '이남자·이여자' 남녀·세대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며 시국선언에 나섰다. 이들은 정치권을 향해 "세대가 아닌 시대를 교체하라"고 촉구했다.

30일 기후·여성·노동·교육·학생단체 연합체 '청년 시국선언 원탁회의'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의 시대는 실패했다. 시대가 아닌 시대를 교체하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사진=청년 시국선언 원탁회의)

30일 기후·여성·노동·교육·학생단체 연합체 '청년 시국선언 원탁회의'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의 시대는 실패했다. 세대가 아닌 시대를 교체하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시국선언을 발표한 배경에 대해 "계속해서 청년이슈가 주목받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실종된 개혁과 보수양당에 국한된 협소한 정치구도는 청년세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제를 소화하고 있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이 국민의힘을 지지한 결과를 두고 '이남자' '이여자'로 세대를 구분하는 것은 기후와 불평등, 차별 등 다양한 사회의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는 청년세대를 보수양당 구도로 환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에서 "시대의 모순은 세대가 아닌 불안정 노동자, 차별받는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 빈민, 농민, 이주노동자, 동물 등 배제와 차별로 불안정과 불평등에 희생된 이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문제 역시 이러한 시대의 결과일 뿐"이라며 "세대론은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복합적인 시대의 모순을 세대의 문제로 은폐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한다고 해도, 자본주의 체제와 맞서지 않는 정치는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을 일깨운 역사적 경험"이라며 "계급갈등을 노동조합 이기주의로, 가부장제의 문제를 성별갈등으로, 나이 위계를 세대갈등으로, 주거권의 문제를 땅값과 시장활성화로, 기후위기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새로운 성장신화로 왜곡하는 기존 정치는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들은 정치권에 ▲경쟁사회 신화를 타파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 ▲토지·교육·의료·식량 등 삶의 필수품을 공공의 영역으로 되돌려 놓을 것 ▲차별과 배제가 아닌 다양한 삶과 정체성이 보장되는 평등한 사회 ▲자본주의를 반성하지 않는 기후위기 대응을 버리고 체제를 전환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특권적 소수만이 올라선 경쟁에서의 '공정'은 허상에 불과하다. 자본주의는 ‘정상성’으로 분할된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우리의 재생산권과 경제권, 인권을 억압한다"며 "우리는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체제를 불평등의 원인으로 지목한다"고 강조했다.

30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오늘의 시대는 실패했다. 시대가 아닌 시대를 교체하라' 청년시국선언 기자회견 (사진=청년 시국선언 원탁회의)

한국지엠 사내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태훈 씨는 "반노동 정권인 것은 민주당이나 국민의 힘이나 똑같은데 지난 보궐선거 결과를 두고 이남자 이대녀라는 틀로 나누고 청년을 분열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정치권이든 언론이든 청년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비정규직 제도를 놔두고 무슨 공정을 논하란 말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장애인 차별로 신학대학원을 자퇴했다는 유진우 씨는 "정규 커리큘럼에 하나인 목회실습이라는 수업을 이수하기 위해 12곳 교회에 전도사를 지원했지만 교회에서는 축구부가 있어서, 운전을 해야해서,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등 여러 이유로 저를 거부했다"며 "이러한 불평등에 한 번이라도 사회는 장애인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으려 한 적이 있나. 능력주의 공정성이 옳다고 말하는 이들을 비판하기 위해,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균열을 내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밝혔다.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 한빛 활동가는 "우리 시대의 핵심적인 문제가 차별과 불평등이라는 것을 자본과 보수양당은 결코 모르지 않는다. 그들은 차별과 불평등을 기반으로 우리를 분열하고 경쟁에 몰아넣어 이득을 보는 이들이기 때문"이라며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차별금지법을 몇 년째 혐오세력을 핑계로 무시하고 오히려 그들의 논리에 편승하던 장면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비판했다.

대학입시를 거부한 '투명가방끈' 김정래 활동가는 "저는 이대남 이대녀가 아닌 대학입시거부자다. 대학에, 기업에 자신을 팔고 싶지 않아 대학거부를 했더니 저임금 감정노동이 돌아왔다"며 "청년 세대가 공정을 요구한다고들 말하지만 공정한 경쟁의 기회란 더 좋은 상품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버려지는 것도 받아들이란 말이다. 허울 좋은 공정사회가 아니라, 나를 인간으로 대하는 사회를 원한다"고 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명숙 활동가는 "차별을 수용한 상태에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시대교체라는 말은 시대의 위기를 시대의 문제로 전가해 기득권 체제를 유지하려는 꼬리자르기"라고 지적했다. 명 활동가는 "청년시국선언문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현재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은 정권교체도 세대교체도 아닌 시대교체"라며 "구조적 불평등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문제를 개인화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공정담론이 아니라 시대의 불평등을 깨고 서로의 존엄함을 지키는 싸움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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