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여당 주요 인사들이 일제히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를 촉구하고 대통령실까지 이를 거드는 듯한 모양새가 된 것은 심상찮다. 내란 수습과 사법개혁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상황이 삼권분립 훼손과 사법부 장악 논란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것은 대통령실의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법사위원장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쏘아올린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메시지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힘을 실은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공감’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이는 대통령실이 직접 대법원장 사퇴를 압박한 초유의 사태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부담이 컸는지 대통령실은 몇 차례에 걸쳐 메시지 수정을 거듭해 최종 입장은 ‘원칙적 공감’이란 수준에서 정리됐다. 대법원장 사퇴라는 주장 자체에 공감한 것이 아니라 입법부 일부에서 대법원장 사퇴라는 주장을 하기까지 갖게 된 문제의식에 대해 공감한다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대통령 측이 직접적으로 사법부 수장의 거취에 관한 압박에 나서는 것은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해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가능성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대통령실의 정무적 판단 미스다.
대통령실은 지난 7월 금융 당국이 ‘수도권 6억원 한도’ 부동산 대출 규제 대책을 내놨을 때도 “대통령실 대책이 아니다”란 답변을 내놨다가 “긴밀히 조율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후퇴한 일이 있다. 당시는 대통령실이 되도록이면 부동산 대책에 직접 관여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할 때다. 그러나 ‘수도권 6억원 한도’의 대출 규제 조치는 대통령실이 용인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강도의 대책이다. 그 정도 대책이 나왔는데 “대통령실 대책이 아니다”라고 하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한다. 즉, 당시 대통령실 판단 착오는 ‘대통령실이 부동산 대책을 주도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는 것과 ‘수도권 6억원 한도 대출 규제 조치’의 무게를 고려하는 것 중 우선순위를 잘못 판단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번 경우는 어떤가? 검찰개혁을 둘러싼 정청래 대표와 우상호 정무수석 간 갈등설, 특검법 개정안에 대한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 간 충돌 등 상황이 이어지자 김민석 국무총리과 강훈식 비서실장까지 나서서 화기애애한 자리를 만든 직후다. 정청래 대표가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를 말한 이후 대통령실이 이에 거리를 두는 메시지를 내놓으면, 언론은 당과 대통령실의 입장 차이에 주목할 게 분명하다. ‘원 팀’ 기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원 보이스’로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도 강조했듯 대법원장 사퇴 촉구라는 ‘원 보이스’는 필연적으로 더 큰 논란을 낳는다. 즉, 이게 정무적 판단 미스의 문제라면 대통령실은 ‘원 팀, 원 보이스’냐 ‘삼권분립 훼손 비판 회피’냐의 우선순위를 잘못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실의 메시지를 오류가 아닌 의도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16일 한겨레의 보도가 대표적인데, 사법개혁으로 이슈가 옮겨가는 과정에서 사법부가 전국 법원장 회의를 개최해 목소리를 내는 등 반발의 정도가 심화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항하기 위해 강한 메시지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즉, 여당과 대통령실이 ‘팀 플레이’를 한 것에 가깝다는 해석인데, 이런 얘기다.
먼저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은 추미애 의원이다. 공개적으로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를 촉구해 분위기를 조상한 것이다. 이후 법사위 소속 일부 의원들이 나서서 이를 지원사격 했고, 정청래 대표까지 나서서 사법부를 향한 ‘최대 압박’ 작전을 실행했다. 여당은 이를 통해 사법개혁 입법의 동력을 확보하고 사법부의 반발 여론을 꺾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데, 대통령실은 ‘치고 빠지기’식 대응을 통해 이를 도왔다. 즉,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대통령실이 메시지의 수위를 조정한 것은 잘못된 사태를 수습하려고 한 게 아니라 애초부터 의도된 대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지방선거 일정과 연계된 측면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겨냥해 강한 메시지를 내고 있는 인사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지방선거 국면에서 주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당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인 인사들은 여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이 “김건희 채해병 특검도 전담재판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내란전담재판부는 ‘내란’이라는 조건과 지귀연 판사가 윤석열을 구속취소 결정을 한 특수성이 논의의 전제로 작용한 사례다. 다른 특검의 경우도 전담재판부가 필요하다고 하면 논의 전체가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주장을 내놓는 것은 나름의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당내에서 지방선거를 겨냥한 강경파적 백가쟁명이 분출할 가능성이 높다. 이 상황을 정청래 대표도, 이재명 대통령도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 입장에서는 통치에 다소 부담이 따르더라도 여당 상황을 어느 정도는 용인하면서 결정적 대목에서 통제하는 방식을 쓸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은 이런 맥락과 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가능하다는 거다.

마지막 세 번째 가능성은 집권 세력이 실제로 조희대 대법원장의 중도 사퇴를 추진하고 있고, 대통령실의 메시지도 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보는 경우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은 길이다. 독립된 지위를 인정받는 사법부의 특성상 권력이 사퇴를 압박하면 오히려 버티기에 명분이 실릴 수밖에 없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탄핵도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기 어렵다. 그러한 일을 과연 집권 세력이 실제 밀어 붙이고 있다고 봐야 할까는 의문이다.
결국 대통령실의 판단 오류이거나 사법개혁 및 지방선거를 겨냥한 여론전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전자면 인사와 시스템을 점검하면 되는 문제이다. 그러나 후자라면 이런 방식의 이슈파이팅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내란 척결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내란 세력’의 ‘침대 축구’식 대응에 빌미만 주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닌가? 재판 일정이 오히려 길어지는 악순환을 낳는 것은 아닐까? 돌아볼 대목이 많다.
여러 정치적 계산이 늘상 오가는 곳이 정치의 현장이지만, 지금은 내란을 신속히 수습하고 나라를 실질적으로 정상화 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방법이 무엇이든 집권세력은 신속 정확한 단죄를 우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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