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의혹 제기 내용이 추상적이라 밝힐 만한 내용은 없다"-5월 15일 서울중앙지법 
"삽겹살에 소맥도 사주는 사람도 없다"-5월 19일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윤석열 내란' 사건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의 '유흥업소 접대 의혹' 인물 사진이 공개됐으나 일각에서 진상규명의 화살이 사법부가 아닌 더불어민주당을 향하고 있다. 일부 언론과 국민의힘은 '판사 협박' 프레임을 전면에 꺼내 들었다. 하지만 비위 의혹 당사자의 해명이 3시간 만에 거짓말로 드러나고 법원이 늑장 감찰에 나선 상황을 감추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 19일 오전 지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재판을 진행하면서 "얘기하지 않으면 재판 자체가 신뢰받기 힘들다는 생각에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며 "의혹 제기 내용은 사실이 아니고 그런 데 가서 접대 받는 건 생각해본 적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의혹 제기 이후 무려 5일 만에 당사자 입장이 서울중앙지법도 아닌 법정을 통해 나왔다. 군인권센터는 "법정 사유화"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노종면 선대위 대변인이 1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노종면 선대위 대변인이 1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사건 재판장인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유흥업소에서 접대받았다"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관련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지 부장판사는 "평소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지내고 있다.(중략)삼겹살에 소맥도 사주는 사람도 없다"며 '판사 뒷조사에 의한 외부 공격'으로 재판 진행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 부장판사 입장 발표 3시간 뒤 노종면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지 부장판사 얼굴이 담긴 '룸살롱 접대 의혹' 사진을 공개했다. 노 대변인은 "지 부장판사는 룸살롱에서 삼겹살을 드시냐"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지 부장판사가 출입한 곳을 서울 강남에 위치한 고급 룸살롱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민주당은 여성 종업원들이 룸·테이블마다 동석하는 곳이며 지 부장판사가 여러 차례 출입했다고 했다. 민주당은 지 부장판사와 함께 사진을 찍은 동석자 2인은 법조 관계자로 직무 관련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이 사진을 공개한 이후 지 부장판사는 재판을 진행했고,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19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이 지목한 업소는 지 부장판사 접대 의혹이 불거진 당일 하수구 공사를 이유로 영업을 중단했다. 한국일보는 해당 업소가 룸살롱 등 유흥주점이 아닌 '단란주점'으로 등록됐다고 전했다. 단란주점은 유흥 종사자를 둘 수 없다. 

하지만 강남구청 관계자는 한국일보에 "이런 유형의 술집은 회원제 및 예약제로 운영하다 보니 손님으로 가장해 단속하기 어렵다"며 "불시에 들이닥쳐도 폐쇄회로 TV로 입구를 감시하다 다른 문으로 빠져나가거나, 여성 종업원을 지인이라고 속이는 경우가 많아 불법 여부를 적발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단란주점으로 위장한 룸살롱 운영 사례가 많다는 설명이다. 노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한국일보 기사를 공유하며 "최근 문을 닫은 그곳은 여성 종업원들을 직접 두고 영업했다"며 "민주당이 이미 현장을 확인했다"고 부연했다. 

국민의힘은 때아닌 민주당 공세에 나섰다. 나경원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은 19일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제대로 된 근거 하나 없이 거짓 선동으로 사법부를 계속 압박하고 있다"며 "특정 판사에 대한 이러한 악의적 좌표 찍기와 마녀사냥은, 이재명 후보식 '맞춤형 법정'을 세우려는 공포의 전주곡"이라고 주장했다. 나 선대위원장은 "실체 없는 의혹과 '아니면 말고' 식 괴담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이를 선거와 이재명 대표의 범죄 방탄에 악용하는 작태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와 권성동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 안철수 의원이 19일 서울역 광장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와 권성동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 안철수 의원이 19일 서울역 광장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일 조선일보와 매일신문이 사설을 통해 '민주당의 판사 협박' 프레임으로 날을 세웠다. 조선일보는 사설 <尹 석방 판사에 대한 비상식적 협박>에서 "현재로서는 민주당의 지 판사에 대한 공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법부에 대한 공격의 연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민주당이 지 판사의 재판 배제를 요구하려면 지 판사가 윤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접대를 받고 석방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윤 전 대통령 사건과 무관한 문제로 판사를 뒷조사하고 면책특권의 보호를 받으며 의혹을 제기해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늑장 감찰에 대한 사법부의 책임을 묻지 않고, 지 부장판사의 법관 자격이 달린 비위 의혹의 범위를 '윤석열 재판'으로 좁힌 것이다. 

조선일보는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 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대법원장 청문회와 탄핵을 추진했고 대법원장 특검법도 상정했다"며 "재판의 독립을 원천 부정하는 것으로 민주 법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정치 폭력"이라고 했다. 

같은 날 매일신문은 사설 <민주당의 지귀연 판사 접대 의혹 제기, 협박 정치 신호탄인가>에서 "문제는 이 사진만으로는 지 판사가 부적절한 접대를 받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어디에도 부적절한 접대를 확증(確證)하는 장면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며 "민주당의 룸살롱 접대 의혹 제기는 사실 여부에 대한 논란과는 별도로 정치적 의도에 의한 재판부 협박(脅迫)·공갈(恐喝)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고 썼다. 

매일신문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 취소 결정을 내린 지 판사를 내란 재판에서 배제(排除)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것"이라며 "사실이라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는 심각한 위협에 처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의도 미심쩍은 민주당 ‘판사 향응’ 압박…진상규명은 필요>에서 "민주당이 공개한 사진만으로는 지 부장판사의 향응 의혹을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어떤 이유로든 집권 가능성이 큰 원내 다수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 판사를 뒷조사해 공격하는 것은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고 삼권분립을 무너뜨릴 우려가 있다"며 "국내나 외국의 독재 정권이 반대파 인사들의 사생활을 약점으로 잡고 악용한 사례가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사진=연합뉴스)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사진=연합뉴스)

반면 경향신문은 사설 <‘룸살롱 향응’ 지귀연 부인·민주당 사진 공개, 신속 규명하라>에서 "민주당 주장대로 지 부장판사가 고급 룸살롱에서 향응을 접대받고, 제기된 의혹에 대해 거짓말까지 했다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며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은 신속히 의혹의 진위를 확인해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재판장 개인의 신상 문제가 논란의 소재가 되는 상황이 길어질수록 역사적인 내란 재판의 신뢰와 권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더구나 지 부장판사는 법원 내규·관행과 달리 구속기간을 날이 아닌 시로 계산해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구속을 취소하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의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해 다수 시민의 공분을 샀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 <커지는 ‘지귀연 의혹’, 사법 신뢰 위해 신속히 규명하라>에서 "12·3 내란 단죄를 위한 역사적 재판이 ‘재판장 향응 접대’ 의혹으로 차질이 빚어져선 안 된다"며 "사법부는 신속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합당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서울중앙지법은)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면 될 텐데 ‘의혹 제기가 구체적이지 않다’는 둥 강 건너 불구경하듯 말한 것"이라며 "이해하기 힘든 행태다.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이 뒤늦게 조사에 나섰지만, 이미 국민 불신은 키울 대로 키웠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지 부장판사의 '판사 뒷조사' 주장에 대해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말"이라며 "공직자가 수백만 원의 향응을 접대받으면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하물며 그런 행위를 처벌하는 판사가 국회의원이 제기한 접대 의혹을 ‘판사 뒷조사’로 치부하며 무시하는 게 맞나"라고 따져 물었다. 한겨레는 이번 의혹이 신속하게 해소되어야 한다며 민주당을 향해서도 대법원 조사에 협조하라고 했다. 

지난 3월 8일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서 차에서 내려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8일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서 차에서 내려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편, 지 부장판사가 민주당의 사진 공개를 예견하고도 정치적 방어막을 치기 위해 법정에서 의혹을 전면 부인한 것이라는 일각의 분석이 나온다. '룸살롱은 갔는데 접대는 안 받았다'고 해명하는 순간 법관으로서의 도덕성이 훼손되기 때문에 법정에서 '판사 뒷조사'를 운운하며 전면 부인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피해자'를 자처했다는 얘기다.  

20일 MBC라디오 '시선집중' 진행자인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지 부장판사가 민주당이 사진을 추가 공개할 줄 모르고 전면 부인을 했을까. 그것은 넌센스"라며 "민주당은 얼굴이 들어간 사진을 갖고 있다고 이미 지난주에 밝혔다. 그걸 모르고 전면 부인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김 평론가는 "지 부장판사는 '외부 공격' '재판 영향' '판사 뒷조사'라는 표현을 윤석열 내란수괴 혐의 공판이 열린 법정에서 썼다"며 "'내가 중대한 재판을 맡고 있는데 자꾸 나를 흔들려고 한다'는 간접 어필"이라고 했다. 

김 평론가는 지 부장판사가 보수세력의 정치적 방어를 유도하고, 오는 26일 예정된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이 같은 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조희대 대법원의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과 함께 '정치권의 사법부 독립 침해 논란'을 함께 다루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김 평론가는 "지 부장판사의 정치적 피해자 설정이 그 범주(법관대표회의)에 들어가는 것"이라며 "동료 판사들의 방어선을 기대하고 있는 것 아닌냐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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