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특검법 개정과 관련한 여당 내 혼란은 또다시 여당의 ‘개딸’로 통칭되는 강성 지지층 문제에 대한 지적으로 번지고 있다. 당정대는 회동을 통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진보와 보수의 논조를 가리지 않고 언론 전반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

요약을 하자면 이런 얘기다. 김병기 원내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가 모처럼 여야 합의로 특검법 개정과 금융감독위원회 설치 협조 등을 합의해왔는데, 이에 대한 강성 지지층의 비판이 커지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합의를 일방적으로 뒤집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강성 지지층의 반발은 특검법 개정안에 기간 연장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뤄졌다.

법사위 소속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SNS를 통해 김병기 원내대표 등을 비판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은 이 합의 내용을 몰랐으며 동의하지 않는다는 취지 입장을 내놓으면서 김병기 원내대표는 고립되었는데, ‘개딸’과 함께 ‘3통령(이재명 대통령뿐 아니라 여의도 정청래 대통령, 충정로 김어준 대통령이 정국을 주도한다는 주장)’ 주장까지 나오는 지경이 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여야 지도부 오찬 회동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여야 지도부 오찬 회동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우선 맥락을 먼저 짚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김병기 원내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앞서와 같은 협상 및 합의를 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 맥락을 상기하기 위해서는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대표 오찬 자리를 떠올려 봐야 한다. 이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여당이 가진 게 많으니 양보하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여당 지도부는 이 다음 장면에 뭔가 야당과 합의해서 성과를 내는 장면이 있어야 하겠다고 봤을 것이다. 원내지도부의 합의는 이런 차원에서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추미애 의원이 “지나친 성과 욕심”을 언급하며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앞두고 정부조직법을 순산시키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가까이 모시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런 충정과 진정성은 의심하지 않는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을 지적하는 걸로 보인다.

강성 지지층이 반발한 기간 연장 문제에 대해 김병기 원내대표와 원내지도부는 나름대로 복안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특검 준비기간 15일을 온전히 수사기간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둬 사실상 수사기간 15일을 연장하는 효과를 거두게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정청래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 등에도 공유했다는 게 원내지도부의 항변이다. 물론 정청래 대표 등은 이 내용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보고가 됐더라도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의 ‘다수’가 이 내용을 알고 있었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안의 성격상 ‘15일’ 등 내용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면 국민의힘과의 합의는 무력화 되기 때문이다. 원내지도부가 밝힌 바를 보면 합의의 구조상 특검 기간 연장이 없다는 조건은 국민의힘에 주는 명분이다. 그런데 특검 기간 연장이 없는 상황에서 언론 등 보도를 통해 ‘실제로는 15일 연장이 가능하다’는 대목이 공개되면 국민의힘은 합의의 명분을 잃게 되고 그러면 합의는 파기될 수밖에 없다. ‘15일’ 대목이 소수에만 제한적으로 공유됐을 가능성을 내다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그 ‘소수’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정청래 대표가 (‘15일’ 문제가 아니라) 수사 기간 연장이 합의안에 빠져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던 것처럼 주장한 것은 의문이다. 이는 정말 강성 지지층의 반발 때문에 재협상 지시를 하면서 댄 핑계에 불과한 것일까?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만 보는 것은 앞서 맥락으로 보면 다소 극단적 해석이다. 왜냐하면 애초 여야 합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여야 대표의 오찬 회동이라는 맥락을 고려해야 이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까지 등장하는 정치적 맥락을 당 대표가 강성 지지층의 반발을 이유로 틀어 버린다는 걸 상식적으로는 상상하기 어렵다(여의도 대통령이란 식의 주장은 정치적 수사일 수는 있지만 상식적인 주장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에서 답변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에서 답변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 상황은 합의안을 실제로 뒤집는 데 결정적 영향력을 발휘한 주체가 정청래 대표보다 윗선(?)이라고 가정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또 김병기 원내대표의 반발이 설명되지 않는다. 정청래 대표의 위라면 대통령 정도일 텐데, 대통령이 직접 합의 파기에 영향을 미쳤다면 김병기 원내대표가 누구를 상대로든 드러내놓고 크게 반발할 수 있었을 리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난 몰랐다”면서 내란과 정부조직법을 교환하는 합의는 이룰 수 없다고 발언한 것에 주목하게 되는 건 이런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이 합의안의 디테일한 내용, 가령 ‘15일’ 등 내용을 정확히 모른 상태로 특검 수사 기한 연장은 빠졌다는 언론 보도 내용 등을 접한 후 합의 내용에 의문을 표했고, 그 뉘앙스가 참모에 의해 당에 전달된 것이라면?

정청래 대표는 과정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는 채로 재협상을 말할 수밖에 없었을 거고, 김병기 원내대표는 ‘15일’ 등 내용을 정확히 대통령실에 보고하지 않아 오해를 초래했다는 등의 이유로 정청래 대표 등에 반발했을 수 있다. 추미애 의원이 김병기 원내대표의 사전 논의 여부에 대해 “알아듣기 어려운 다급한 말로 뭐라 하는데 그때까지 여야 간 원내 합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나로서 일단 다 ‘금시초문’이라고 답했다”고 굳이 공개적으로 설명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가 14일 서울 종로구 총리 공관에서 열린 당·정·대(더불어민주당·정부·대통령실) 고위급 만찬회동에서 만나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가 14일 서울 종로구 총리 공관에서 열린 당·정·대(더불어민주당·정부·대통령실) 고위급 만찬회동에서 만나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집권세력이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비서실장이 참여한 가운데 당정대 회동을 통해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가 악수하는 그림을 만든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보면 이해가 된다. 사실 강성 지지층만의 문제라면 이런 그림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대통령실-여당-정부 각자가 서로 주고 받으며 확인해야 할 입장이 있는 거라면 이런 자리는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최근 정청래 대표 및 우상호 정무수석 간 언쟁 보도 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이 결국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른바 강성 지지층이 상황을 주도하는 것이라고 하면 언론과 보수야당 일각에서 제기하는 ‘3통령’ 프레임식 설명 방식에 힘이 실릴 것이다. 그러나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빈 구멍들을 메꾸다 보면 여당과 정부가 제각기 활동의 자율성을 갖지만 큰 틀에서 상황의 주도권은 이재명 대통령이라는 플레이어가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도 속에서 여당과 정부와 자율성은 ‘3통령’식의 분할 통치가 아니라 대통령 권력의 운용 방식에 따라 용인되는 것에 가깝다.

이렇게 보면 새로운 시사점이 눈에 들어온다. ‘3통령’ 프레임은 지금 당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지도력을 폄하하고 보수 야당에 기회를 안기는 좋은 수단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결정적 순간에 책임 소재를 불명확하게 만드는 의도치 않은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이재명 정권 시기의 일은 대부분 이재명 대통령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과거나 지금이나 그런 나라였다. 그렇지 않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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