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윤석열 대통령은 왜 헌법재판소 변론에 직접 나간다고 했을까? 처음에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했다. 첫째, 공수처 수사가 불법이라는 주장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수사에 응하지 않는 핑계를 만들기 위해서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은 안과 검진 일정까지 동원해 공수처의 강제 인치 시도를 무력화시켰다. 둘째, 본인이 직접 등장해 장광설을 늘어 놓는 것이 절차 지연이라는 목표 달성에 유리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변호인이 이상한 말을 하는 것 정도는 재판관이 재량으로 제지하는 광경이 계속되지 않던가?

실제 윤석열 대통령이 변론에 직접 임하는 것을 보면서, 세 번째 목표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건 본인이 본인을 ‘셀프변론’ 하는 것 그 자체다. 윤석열 대통령의 변호인들은 그간 무능한 모습을 노출해왔다.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재판관의 질문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등, 과연 변론 전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본인의 탄핵심판 4차변론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증인신문을 하자(사진 왼쪽), 김 전 장관이 답변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본인의 탄핵심판 4차변론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증인신문을 하자(사진 왼쪽), 김 전 장관이 답변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직접 등판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변호인들이 일부 틀린 사실을 발언하면 이를 정정하고 국회 탄핵소추단 측이 공개한 동영상에서 반박 포인트를 발굴(?)하는 등 적극적으로 탄핵심판 절차에 대응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변호인단의 수석변호사 같은 느낌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이와 같은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예 김용현 전 장관을 직접 신문하였는데, 윤석열 대통령 측의 시각으로 보면 이거야말로 노림수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거 아니었나’라는 취지로 답변을 유도하면 김용현 전 장관은 ‘그렇다’고 대답하는 방식인데, 과연 김용현 전 장관은 마지막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구나 싶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윤석열 대통령 측의 시각인 거고 대다수 시민들이 볼 때는 헌법재판관들을 앞에 놓고 공범들끼리 말 맞추기를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광경이다. 더군다나 그 내용도 황당하고 허무맹랑하기 이를 데 없어 흡사 ‘덤 앤 더머’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도 들었다.

가령 윤석열 대통령이 포고령 1호에 대해 “법적으로 검토하면 손댈 게 많겠지만, 어차피 계엄이 길어야 하루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데다 포고령은 상징적일 뿐 집행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그냥 두자고 했었는데 기억 나느냐”고 하자 김용현 전 장관이 “말씀하시니 기억난다”고 한 대목이다. 이전까지 윤석열 대통령 측은 김용현 전 장관이 과거의 포고령을 베끼면서 실수한 것을 잡아내지 못해 위헌적 내용이 포함된 거라는 취지의 주장을 해왔다. 그런데 23일 김용현 전 장관은 계엄의 정당성을 설명하는데 너무 몰입한 것인지 “국회의 입법 활동은 존중되고 보장돼야 하지만, 정치 활동은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반국가세력과 결탁해 체제 전복을 노린 사례가 있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그러자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서 “기억 나느냐”며 말 맞추기를 시도한 것인데, 그러느라 포고령 1호의 위법성을 애초에 인식했다는 듯한 얘기로 꼬여버린 거다.

1월 23일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1월 23일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특전사 요원들이 본관 건물 밖에 마당에 주로 있었나 아니면 본관 건물 안으로 많은 인원이 들어가 있었나”라고 물은 것에 대해 김용현 전 장관이 “280명은 본관 안쪽에, 하여튼 복도든 어디든 곳곳에 가 있었다”고 한 것도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 측이 기대한 것은 대다수 병력이 본관 밖에 있었다고 하는 것이었는데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김용현 전 장관이 헛발질을 한 거다. 그러자 윤석열 대통령은 바로 “장관이 구체적으로 병력 위치 사항을 자세히 파악할 수 없었던 게 아니냐”고 했고 김용현 전 장관은 얼른 “저는 그렇게 알고 있다”고 한다. 국방부 장관보다 대통령이 특전사 병력 배치 상황을 더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긴데, 내란 우두머리가 누구였는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대목 아닐까?

23일 한국일보 등 보도에 의하면 계엄이 해제된 지난해 12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은 김용현 전 장관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고 한다. 이후 김용현 전 장관은 휴대폰과 노트북 등에 대한 증거인멸에 나서기 시작한다. 또 관련 보도를 보면 이날 밤 삼청동 안가에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 이완규 법제처장 등의 모임이 있었다. 삼청동 안가 사용은 대통령이 관여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계엄 관련 법적 방어에 관한 논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윤석열 대통령을 정점으로 증거인멸 포함 모든 법적 대응에 대한 논의, 지시, 집행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큰 거다. 그러한 맥락을 놓고 보면 헌법재판소 변론을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주도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결론일지 모르겠다. 변론 참여야 본인의 법적 권리이니 그렇다쳐도 앞서의 과정에 대해선 진상을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계를 드러낸 공수처나 ‘한 몸’인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검찰이 할 수 있겠나? 특검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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