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단식투쟁 시작할 때보다 끝낼 때 기자분들이 더 많이 오실 줄 알았으면 빨리 끝낼 걸 그랬나봐요. 현장에서 애쓰시는 기자님들 서운하시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고요. 국회가 멈춘 자리에서도 언론의 역할은 계속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면서 준비한 입장 읽도록 하겠습니다."
46일 간의 단식투쟁을 마무리한 미류 활동가는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위한 언론의 역할을 주문하며 '정치의 실패'를 규탄했다. 26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류 활동가의 단식 중단 결정을 발표했다.
차제연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법안심사와 신속처리안건 지정 등을 촉구했지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국회로부터 이렇다 할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차제연은 "평등한 사회에서 더 잘 살아가기 위해 택한 단식투쟁이었기에 동료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이를 이어가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지방선거가 실질적으로 시작되는 사전투표일 전날인 오늘 국회 앞 농성 또한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이날 미류 활동가는 "46일 전, 평등의 밥상을 다 차려놓았으니 국회의원들은 숟가락만 들고 오시라 했다. 그러나 국회는 오지 않았다"며 "더 이상 국회 앞에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국회가 찾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찾아올 정치가 부재함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이제 야위어 가는 몸을 걱정해주시는 분들께 더이상 지켜보고 함께해달라고 요청드릴 수가 없다. 국회는 미안해할 줄도 모르는데, 미안할 이유가 없는 시민분들에게 인사를 받을 염치가 제게는 없다"며 "마음 아프게 해드려 죄송하고 또 고맙다. 아픔없이 응시하기 어려운 시간들을 외면하지 않았던 여러분이 저를 살려주셨다"고 말했다.
미류 활동가는 정치가 시민들의 '사회적 합의'를 묵살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교회가 반대한다? 개신교 신자들 중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조사결과를 국회는 무시한다"며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 대통령 득표율보다 높은 70%의 시민이 제정하라는데 부족하다면 만장일치라도 이뤄야 한다는 건가. '나중에'의 망령은 질기게 버텼다"고 말했다.
미류 활동가는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조차 거부하는 국민의힘은 여당의 자격이 없다. 대통령이 '자유'를 부르짖으면 뭐하나"라며 "법안심사 시작조차 못하는 더불어민주당도 민주세력을 자처하기를 그만두라. 국민의힘 핑계대는 것은 기만일 뿐임을 시민들은 모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단식투쟁으로 시작한 이 봄, 우리가 목도한 것은 이 땅 정치의 참담한 실패다. 단지 차별금지법을 못 만드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불평등과 부정의로부터 변화시킬 능력이 지금의 정치에 없다는 뜻"이라며 "시민들이 곡진하게 내어준 기회를 놓친 거대양당은 그 심판의 결과가 어떨지 곧 보게 될 것이다. 평등의 봄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11일 미류·이종걸 두 활동가는 국회 앞에 농성장을 세우고 '평등의 봄을 쟁취하자'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이종걸 활동가는 단식 39일째인 지난 19일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미류 활동가는 국회 앞 농성장에서 단식투쟁을 이어나갔다. 투쟁기간 동안 기자회견 24회, 문화제 35회가 열렸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에 시민 5735명이 연서명했다. 동조단식에 참여한 인원은 총 900명, 비상시국선언에 참여한 사회 각계인사는 813명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여야는 지난달 26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간사 협의와 진술인 추천을 거부했다. 민주당 법사위원들이 소위원회에서 공청회를 개최하기로 의결하자 국민의힘은 '국민적 합의'가 되지 않았다며 보이콧과 진술인 추천 거부로 일관했다. 25일 열린 법사위 법안소위 공청회는 민주당 추천 진술인들이 참석한 반쪽짜리 공청회로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차제연은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박광온 법사위원장 등에게 차별금지법 국회 논의를 위한 신속처리안건 지정(패스트트랙)을 공식 요구했으나 25일 정오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는 일정 정도에 도달했다. 한겨레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7명(71.2%)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했다. 진보 성향 응답자 찬성률은 84.6%, 보수 성향 응답자 찬성률은 62%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8일 발표한 '평등에 관한 인식조사' 결과, '현재 21대 국회에 4개 평등법안이 계류 중임을 전제로 제정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10명 중 7명이 동의(67.2%)한다고 답했다.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성명을 내어 "국회는 여야가 합의한 바 있는 평등법 공청회를 조속히 개최하고 법안 심사 진행을 위한 입법 절차를 지체 없이 시작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임보라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 공동대표는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져 생긴 평등을 향한 탄탄대로의 걸림돌은 누구였나. 예수의 복음에는 눈곱만치도 관심없어 하는 이들, 시민의 뜻을 받아 일해야 하는 정치인들이 그 길에 또아리를 틀고 가로막은 것"이라며 "긴 단식은 심장과 뇌의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정치인들의 무능함이 심장과 뇌의 손상보다도 더 유해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임 공동대표는 "상식적인 시민들은 민주당에 분노한다. 비대위에서 고성이 오갔다는데 참 꼴 좋다는 생각을 했다"며 "곡기를 끊는 극한의 상황에서 박홍근·박광온은 끝끝내 주어진 시간을 흘려 보냈다. 당 안에서 애쓰는 분들이 있는 것 알지만 결국 '나중에'의 끝도, '국민적 합의'의 끝도 민주당의 무능력과 맞닿아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호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확인하는 것은 운동의 실패가 아니라 정치의 실패, 민주당의 실패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 법사위 공청회도 지지부진한 국회가 아니라 우리의 투쟁이 만들어 낸 성과"라며 "국회와 정당의 역할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민주·개혁정당을 자임해 온 민주당이 2022년 한국사회에서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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