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현순 칼럼]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잡는 지침 같은 것이라서 일방통행식의 처리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높은 시민의식에 기초해 왜곡되거나 잘못된 적용을 배제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통해 얼마든지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다” “헌법 정신에 따라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건 당연하다. 기독교계 지도자들도 이를 부인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현실에서 잘못 작동될 것에 대한 우려인 것 같다.”(2021. 11. 9. 한국교회총연합 예방 자리에서 이재명 후보의 발언)

“평등을 지향하고 차별을 막겠다고 하는 차별금지법도 개별 사안마다 신중하게 형량이 안 돼서 일률적으로 가다 보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문제가 많이 생긴다.”(2021. 11. 25. 국민의힘 서울캠퍼스 총회에서 윤석열 후보의 발언) “차별 부분도 폭넓게 다루자는 원칙론에 공감하지만 입법 단계에 이르기에는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이준석 대표의 발언)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유력 두 후보 또는 관계자의 언급이다. 주관적으로 차이점을 평가하자면 차별금지법의 입법에 대한 원칙적 찬성과 원칙적 반대로 보인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지금 당장 행동’을 주장하며 찬성을 분명히 하는 것과 달리 찬반을 분명히 할 경우 득실 때문인지 최대한 모호하게 언급하고 있지만, 입법 여부에 대한 찬반을 가르자면 전자가 법안제정과정에서의 일방성을 우려한다면 후자는 입법 자체에 대한 논의 부족을 언급하는 점으로 보아 원칙적 찬성과 반대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왼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은 ‘충분한 논의와 토론, 사회적 합의’이다. 그런데 그 합의 대상이 입법 여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인지 ‘법안에 담길 내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아직 충분한 논의와 토론, 사회적 합의가 없다고 전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럴까. 이 법은 최근 갑자기 어디에서 떨어진 것인가.

국회의안정보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차별금지법이 최초로 발의된 것은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이고, 2008년경에는 고 노회찬 의원이 대표발의하였으나 심사도 없이 폐기되었고, 2011년경에는 박은수, 권영길이 각각 차별금지기본법안과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하였으나 폐기되었다. 현재 21대 국회에는 4개의 차별금지관련 법안이 발의되어 있고,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그렇다면 14년 동안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는 동안 관련 논의는 없이 발의와 폐기만 계속되었단 말인가. 내가 기억하는 바로도 2020년 10월경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포괄적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위한 법조토론회’와 ‘포괄적차별금지법 바로알기 법조토론회’가 연달아 개최된 바 있고, 이 밖에도 수많은 토론과 공청회가 있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주요 주장 또한 개벌법이 아닌 일반법의 중복성, 차별의 정의, 차별의 범위, 교육에서의 차별금지문제, 시정명령과 이행강제금 문제, 신앙과 양심의 자유침해 등으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위 지적 상당 부분이 법 자체에 대한 오해이거나 입법기술 영역에서 해소될 가능성이 있으며, 그러고도 남는 차이점이 있다면 이는 입법화 자체에 대한 반대여서 이는 논의로 해소될 영역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태의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제 정당 입장 공개 요구 기자회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를 들어 차별금지법 제정반대 논거로 “국제법상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내국인과 동일한 차원에서 평등을 실현할 수 없는데, 차벌금지법안은 차별의 다양성을 부인하고 모든 차별에 대해 획일적인 금지와 제재를 부과하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라는 지적은 동일하게 반박될 수 있다. 개별법에서 규정한 금지를 우회하는 다양한 ‘차별’을 포괄하기 위해서 바로 그 일반법이 필요한 것이라고, 형법이 죄형법정주의를 이미 선언하였으니, 헌법은 불필요한 것인가라는 반문도 가능하다. 이는 논쟁이라기보다는 선택이고 실행의 영역이다.

‘차별당하지 않을 권리’를 일반법제화하는 데 대해 ‘차별하지 않을 일반적 의무’를 부담할 수는 없다고 논쟁한다면 그것은 논쟁이 아니라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 하는 관점의 문제가 아닐까. 개별적인 차별금지법 제정 당시에는 어땠던가. 바로 그 무렵인 2007년 4월경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이듬해부터 시행되었다. 당연한 상식과 도덕을 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강제한다는 반대론이 사라지고 제정되었던가. 그보다 연령이 좀 된 남녀고용평등법은 또 어떠한가. 성별 차이를 무시한 입법으로 남녀유별의 전통문화를 파괴한다는 반대론을 온전히 잠재운 뒤 입법이 되었던가. 출생과 신분에 의한 차별 폐지를 선언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어떠한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집중농성에서 참가자용 텐트 사이에 구호가 적힌 종이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법을 이미 제정하여 시행한 나라들의 경험은 없는가. 포괄적차별금지법이 입법화된 각국 대사들이 간담회에서 한 차별금지법 제정과정 및 시행 이후의 변화에 대한 평가는 또 어떤가. “10년 전 평등법 제정 당시 크리스마스 등 종교행사를 기념하는 것이 금지될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난 10년간 매년 크리스마스가 금지되지 않았다는 증거를 사람들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영국, 닉 메타 부대사), “평등을 위한 변화가 처음에 일어날 땐 위협을 느끼고 두려울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위협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뉴질랜드, 필립터너 대사).

최근 여론조사 결과(엠브레인 조사 성인 1000명 대상 응답자 57.6% 법안통과 찬성-2021. 12. 16.자 서울신문 보도, 케이스탯리서치 조사 성인 1027명 대상 응답자 71. 2.% 차별금지법 찬성-2021. 11. 29.자 한겨레)는 시민들의 앞선 의식을 보여준다.

과연 차별금지법 제정논의가 아직도 숙성이 필요한 것일까. 14년 전 참여정부는 한발 앞서 정부 발의로 차별금지법을 제안하였다. 그때 입법화되지 못한 차별금지법에 대해 많은 논의를 거쳤고, 이제 많은 시민들이 입법화를 요구한다. 여기에 도대체 어떤 ‘숙성기간’이 또 필요한 것인가.

* 송현순 언론인권센터 미디어피해구조본부 실행위원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34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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