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언론·미디어단체들이 4월 내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국회에 촉구했다. 이들은 언론이 혐오·차별 문제를 확대재생산하는 동안 소수자는 혐오 집단의 표적이 되어 왔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이 언론의 변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5일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12개 언론·미디어단체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월 임시국회 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언론·미디어단체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권적 관점이 결여된 언론은 혐오와 차별의 확성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은 언론피해를 예방하고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나중'이란 없다"고 밝혔다.

언론미디어단체들이 2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미디어스)

이어 이들은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은 개혁과제로 대선에서 지더라도 국민 모두의 평등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제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면서 "국민의힘 역시 차기 집권여당으로서 스스로 내건 '통합'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에 함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는 "방송사에서도 이제 부끄러운 차별과 혐오의 보도를 하지 않는 규칙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며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다. 합의와 준칙은 이미 갖춰져 있다. 당장 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윤소 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장은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 전문을 낭독하며 "언론의 긍정적 변화를 목격하고 있지만 변화는 너무 느리다. 혐오가 난무하는 기사와 댓글을 보면서 정치와 언론이 인권을 후퇴시키는 현실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차별금지법은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언론이 실천하게 만드는 동력이 될 것"이라며 "이 동력은 언론인에게도 더욱 무거운 책무로 다가갈 것이다. 차별과 혐오에 편승해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언론은 분명히 책임을 약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이동권 시위에 대한 언론보도의 행태를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윤 위원장은 "언론은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시민불편 프레임'으로 보도했다"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박경석 전장연 대표의 토론에서 박 대표를 위압적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카메라의 모습은 구조화된 차별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비판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15일째 단식투쟁 중인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언론이 혐오 발언의 문제점을 짚지 못하는 동안 혐오 집단의 표적이 되어야 했던 사람들은 이 사회에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기도 어려웠다"며 "언론은 이 사회의 수많은 소수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미류 활동가는 "대선 토론이나 국회에서 ‘동성애’ 찬반 논란이 있을 때 당시 발언을 그대로 옮기는 것 외에 문제점을 짚어주는 언론이 있었나"라면서 "언론 노동자 개개인이 무엇이 차별인지 아닌지 따지기 어렵다. 개인의 몫으로 떠넘기지 말고 사회와 국가가 함께 하자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라고 말했다.

김형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장은 '비정규직 백화점'으로 불리는 언론·미디어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방송·미디어 산업에서 고용형태와 그에 따른 차별은 어느 산업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다. 근로계약 뿐 아니라 팀 단위 도급계약, 프리랜서 계약 등 수많은 형태의 계약이 혼재돼 있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이런 차별이 일소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회 전반에 만연한 차별에 강력한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인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김민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인공지능(AI) 기술에 의한 사회적 차별을 방지해야 한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김 활동가는 ▲젠더 고정관념이 반영된 인공지능 음성비서 ▲혐오 발언을 내뱉는 챗봇 ▲피부색과 성별에 따라 정확도가 떨어지는 인식 기술 ▲여성을 깎아내리는 채용과 신용 평가 ▲흑인에게 가혹한 평가를 내리는 재범예측프로그램 등을 사례로 들며 "평등과 차별 금지의 원칙이 구체화되지 않은 선언만으로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차별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한편, 민주당은 이날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평등법 제정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15년 전 평등법 논의가 시작됐지만 부끄럽게도 그동안 국회는 법제정에 한발자국도 다가서지 못했다"며 "평등법 제정 논의를 시작하겠다. 국회 앞에서 15일째 평등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중인 분들께, 차별받는 모든 분들께 미안하다"고 말했다.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은 "인권활동가들께서 목숨 건 투쟁을 하고 있는데도 국회는 꿈쩍도 안한다. 정치는 왜 있는건지 회의감이 밀려온다"며 "우리 당부터 의총을 열어 평등법을 당론으로 확정해달라. 국민의힘과 협의해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를 개최하고, 법안 심의에 착수해 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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