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민언련 모니터] 성별,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종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등 20가지 넘는 어떤 사유로도 생활의 다양한 영역에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예방하는 법이 ‘차별금지법’입니다. 2007년 처음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지금까지 제정되지 못해 시민사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연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2007년 ‘차별금지법의 올바른 제정을 위한 반차별공동행동’ 결성 이후 다양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이 이어졌습니다. 2011년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가 발족하며 본격적으로 입법운동이 시작되었고, 2017년 재출범하며 다양한 시민참여 활동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을 촉구하며 18일차 단식을 진행하고 있는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왼쪽부터)와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비상시국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특히 2021년 10월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한 달 간 도보행진을 한 이종걸 차제연 공동대표와 미류 책임집행위원은 4월 11일부터 국회 앞에서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단식투쟁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만큼 지지부진한 국회 논의가 하루빨리 속도를 내야 할 것입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두 활동가가 단식을 시작한 때부터 한 달 여간 언론보도를 분석했습니다.

언론의 차별금지법 관심, 처참… 계곡살인 573건 > 차별금지법 340건

지난 한 달 간 언론 관심은 윤석열 정부 내각 인선, 검찰 기소-수사 분리법안에 쏠렸습니다. 차별금지법 관련 보도는 뒷전이었는데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제공하는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의 ‘주간이슈’를 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주간이슈’는 1위부터 10위까지 하루 이슈(평일 한정)와 관련 보도량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해 놓았는데요. 4월 11일부터 5월 11일까지 23일 간 230개 주요 이슈 중에서 차별금지법은 한 건도 없었습니다.

주제별 빅카인즈 주간이슈 1~10위에 오른 횟수(왼쪽)와 보도량(오른쪽)(4/11~5/11) ⓒ민주언론시민연합

4월 27일 트랜스젠더 방송인 하리수 씨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양당 대표에 면담을 요청하고, 다음날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위한 비상시국회의’에 참석했습니다. 5월 8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와 함께 송두환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내고 국회에 역할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날에도 빅카인즈 주간이슈에선 차별금지법 보도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빅카인즈에서 ‘차별금지법’으로 검색한 결과, 같은 날짜에 보도량이 조금 늘었을 뿐 그마저도 27건(5월 8일), 20건(4월 27일)으로 매우 적었습니다. 한 달 간 ‘차별금지법’ 보도량은 340건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주간이슈에 오른 보도는 무엇이었을까요. 한 달 간 1위에서 10위에 오른 230개 주요 이슈 주제를 분류해본 결과, 윤석열 정부 내각 인선과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이슈(34번), BTS 병역특례‧육계협회 과징금 등 단건 이슈를 분류해놓은 ‘기타’(22번), 검찰 기소-수사 분리법안 관련 이슈(19번)가 나란히 1~3위를 차지했습니다. ④국내 코로나19 상황 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⑥지방선거 ⑦다양한 국제 이슈 ⑧윤석열 정부 정책 ⑨문재인 전 대통령 행보 ⑩국내 기업 활동이 뒤를 이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촉구 활동이 있던 날 빅카인즈 ‘주간이슈’엔 없는 차별금지법 보도

보도량으로 따져 봐도 큰 차이가 있는데요. 주간이슈엔 19회 오른 검찰 기소-수사 분리법안 이슈가 해당 기간 보도량이 제일 많아 4,066건을 기록했습니다. 34회 주간이슈에 오른 윤석열 정부 내각 인선 이슈는 3,044건 보도돼 두 번째로 많았습니다. 차별금지법에 비하면 10배 가까운 보도량입니다. 빅카인즈 ‘주간이슈’에 많이 오른 이슈엔 ‘계곡살인’도 있는데요. 경기 가평 한 계곡에서 한 여성이 내연남과 함께 보험금을 노리고 배우자를 살해했다는 의혹을 받는 사건입니다. 주간이슈에 9회 오른 ‘계곡살인’은 한 달 보도량이 573건으로 차별금지법보다 많았습니다.

네이버 랭킹뉴스 0.04% 그친 차별금지법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랭킹뉴스’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사별로 조회 수를 기준으로 기사 순위를 매기는 ‘많이 본 뉴스’엔 4월 11일부터 5월 11일 한 달 간 차별금지법 관련 보도가 5회 올랐습니다.

4월 19일 여성신문 5위에 배치된 <국회 앞 단식농성 8일째…“4월 차별금지법 제정해야”>(4월 18일 홍수형 기자), 4월 26일 여성신문 4위에 배치된 <민주당 지도부,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박지현 “약속 지킬 시간”>(4월 25일 이세아 기자). 4월 28일 연합뉴스 3위에 배치된 <국회 찾은 하리수 “차별 이루 말할 수 없어”…평등법 제정 촉구>(4월 28일 송은경 기자), 5월 2일과 3일 두 번에 걸쳐 한겨레21 4위에 배치된 <‘차별완박’, ‘검수완박’의 속도로>(5월 2일 황예랑 기자)입니다. 한겨레21의 같은 기사가 두 번 랭킹뉴스에 올라 5회로 집계됐습니다.

랭킹뉴스엔 81개 언론사 1~5위 기사 5개씩 합해 하루 405개 자리가 있습니다. 4월 11일부터 5월 11일이면 랭킹뉴스에 오를 수 있는 자리는 총 12,555개가 됩니다. 하지만 이중 차별금지법 관련 기사는 겨우 5회, 비율로 따지면 0.04% 수준입니다.

빅카인즈 주간이슈와 네이버 랭킹뉴스 결과는 우리 언론이 차별금지법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포털과 포털에 입점한 언론사 모두 차별금지법 보도가 시민에게 닿는 데 얼마나 무성의한지 잘 보여줍니다. 무려 2007년부터 지속된 입법촉구 운동입니다. ‘새롭지 않다’는 이유로 언론 보도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린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이 늦춰지고 차별이 보편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문‧방송 무관심 속 차별‧혐오 선동 칼럼도… KBS‧TV조선‧MBN 종합뉴스, 차별금지법 보도 ‘0’

무관심한 언론 보도 흐름은 방송 저녁종합뉴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종걸‧미류 활동가의 단식투쟁이 시작된 4월 11일부터 5월 10일까지 지상파 3사‧종합편성채널 4사 저녁종합뉴스에서 차별금지법을 언급한 보도는 KBS, TV조선, MBN 모두 0건입니다. 온라인 기사나 KBS 지역국 지역뉴스에선 차별금지법 관련 소식을 볼 수 있었지만 메인뉴스에선 다루지 않은 겁니다.

차별금지법 관련 방송사 저녁종합뉴스 보도량(4/11~5/10) ©민주언론시민연합

MBC 보도 1건은 5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열린 ‘봉축 법요식’에 차제연 활동가가 참석했다는 내용이고, SBS 보도 1건은 청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무리하게 보험을 판매한 사건을 다룬 내용입니다. 둘 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직접적으로 연관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JTBC 보도 4건 중 2건과 채널A 보도 2건 중 1건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 기소-수사 분리법안 통과에 대한 정의당과 논의 과정을 담은 내용입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말하거나, 차별금지법 제정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행보를 다룬 보도가 아닌 경우가 더 많은 건데요. JTBC <국회 앞 농성장, 취임식 전 철거? 규정 따져보니>(5월 5일 이지은 기자)만 차제연 활동과 관련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영등포경찰서가 국회 앞 농성장을 철거하라고 한 것에 대한 규정을 따져보는 내용입니다.

차라리 무관심이 나은 중앙일보, 한국경제

차별금지법 관련 신문 지면 보도량(4/12~5/11)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 지면에서는 ‘차라리 무관심이 낫다’ 싶은 보도도 있습니다. 단식투쟁 시작 다음 날인 4월 12일부터 5월 11일까지 종합일간지 6개‧경제일간지 2개 지면에서 차별금지법을 언급한 보도는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각 31건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한국일보는 9건으로 뒤를 이었고, 매일경제는 한 건도 없었습니다. 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한국경제는 1~3건 수준입니다.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기사 중엔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기사나 칼럼은 없습니다. 오히려 1~3건을 보도한 신문사 기사와 칼럼 중 “진보 독선도 문제”라거나 “차별을 금지하려다 또 다른 차별과 갈등을 초래”할 것이란 내용이 있습니다.

중앙일보 <서경호 논설위원이 간다/시동 걸린 차별금지법, 함께 가야 멀리 간다>(5월 3일)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의견을 나란히 실은 칼럼입니다. 서경호 논설위원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측에 대해 이들이 “동성애 반대 측은 합리적 토론의 상대로 여기지도 않는다”며 “아무리 거친 반대가 있다고 해도 차별을 없애기 위해 차별하고 배제해도 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반대한다고, 혹은 적극 나서지 않는다고 반인권 세력으로 몰아붙여선 곤란하다. ‘혼자 가는 것보다 함께 가야 멀리 간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법이든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차별금지법도 토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존재의 찬반을 논해야 하거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는 내용까지 토론대 위에 올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종걸 공동대표와 미류 책임집행위원은 투데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언제든지 찬반 토론해도 된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우리나라 국회 수준이 성소수자 존재를 인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 정도 담론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과연 국회만 그럴까요? 서경호 논설위원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토론은 어느 수준의 내용일까요?

같은 기사에서 이종걸‧미류 활동가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동성애 조장법이다’, ‘에이즈 확산시킨다’ 이런 말들을 의견이라고 이름 붙이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그냥 혐오 발언이고 어떤 존재의 존엄을 깎아내리는 말일 뿐이다. 반대 ‘의견’이라고 치켜세우며 이 이야기와 찬반의 이름으로 동등하게 올려놓았기 때문에 지금 이 모든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한다면 우리 사회에 차별금지법이 없더라도 충분히 차별과 혐오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과 그에 대한 근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한국경제, 무지막지한 차별‧혐오 선동 칼럼

차별금지법 관련한 문제적 내용을 담은 한국경제 칼럼(5/7)

한국경제 <토요칼럼/차별금지법,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5월 7일 서화동 논설위원)는 차별금지법안에 “여러 가지 논쟁적 내용이 담겨 있다”며 차별금지법과 관련된 각종 허위조작정보를 나열했습니다. 서화동 논설위원은 “차별의 사유를 최대한 폭넓게 규정”하고 있어 “과잉 중복 규제”라고 주장하는데요. “양성평등기본법, 남녀고용평등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다양한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있으므로 포괄법은 불필요하다”는 근거를 들었습니다.

서화동 논설위원이 열거한 개별법은 각자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별법으로 구제하기 어려운 차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자는 게 차별금지법의 핵심입니다. 해외 사례에서도 평등 증진과 차별구제를 위해 개별법과 별개로 포괄법을 제정하는 시도를 볼 수 있는데요. 2021년 11월 24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유럽 차별금지법제와 시사점’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개별적 법률들이 기존에 있었다 해도 일반적‧포괄적인 법률을 제정하여 사각시대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2021년 현재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유럽연합의 평등지침들에 따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마련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서화동 논설위원은 “이 법안은 성별을 ‘여성, 남성,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이라고 정의”해 “남녀외에 제3의 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개인의 존엄과 남녀 양성평등을 기초로 국가의 혼인과 가족 보장의무’를 선언한 헌법 제36조와 어긋나게 된다”고 말하고 있기도 한데요. 여기서 말하는 헌법 제36조 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는 내용입니다. 혼인과 가족생활이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한 것이지, 국가가 개인의 혼인과 가족생활의 권리를 남성과 여성의 결합에만 제한하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헌법 제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성적 지향의 개념이 불확정적이므로 소아성애, 다자성애 등 온갖 일탈적 취향까지 인정해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채용에서의 학력 차별 등이 “사적 자치의 원리가 침해받게 되는 것”이라는 등도 문제 소지가 큽니다. 전자는 종교계, 후자는 경제계에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기 위해 주로 펴는 논리이나 사실이 아닐 뿐더러 심각한 왜곡이자 혐오선동입니다.

차별금지법안 내용과 차별금지 사유는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과 성소수자 소외 문제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차별금지사유로 정한 것입니다. 차별금지법을 만든다고 곧장 차별 없는 사회가 되진 않습니다. 차별금지법 위에서 차별 철폐를 위해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논의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랍니다.

* 모니터 대상 : 2022년 4월 12일~5월 11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 2022년 4월 11일~5월 10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평일)/<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 2022년 4월 11일~5월 11일 포털사이트 네이버 ‘랭킹뉴스’의 ‘많이 본 뉴스’ 화면 / 2022년 4월 11일~5월 11일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의 ‘주간이슈’ 화면 및 ‘차별금지법’으로 검색한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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