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전당대회랍시고 자기들끼리 치고 받고 왕따시키는 여의도 정치에 할 얘기가 많지만, 오늘은 언론 문제를 짚어보자.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언론사 간부 및 기자들에게 돈을 줬다는 뉴스는 충격적이다. 특히 ‘간부’로 지칭되는 한겨레 기자가 받았다는 거액은 눈을 의심케 할 수준이다.

보도를 참고하면 한겨레 기자는 아파트 분양을 받으려다 대출이 막혀 김만배 씨를 통해 9억원을 융통하려 했다고 한다. 김만배 씨는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과 함께 3억씩 갹출해 이 돈을 마련하려 했으나 정작 전달한 것은 6억원이었다. 3억원은 어떻게 됐을까? SBS와 조선일보 등의 후속보도를 보면 3억원은 화천대유 대표를 통해 전달됐다고 한다.

김만배 씨가 자기 몫을 직접 전달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짐작은 할 수 있으나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받는 쪽에선 떳떳치 못한 일일 수 있다는 예상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9백만원도 아니고 9억원을 생판 남에게 빌리는 일은 그럴만한 특별한 맥락이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이 ‘그럴만한 특별한 맥락’은 당연하게도 받는 사람이 기자라는 점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김만배 씨와 회계사 정영학 씨의 대화가 기록된 녹취록을 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김만배 씨는 녹취록에서 “기자들 분양도 받아주고 돈도 주고, 응?”, “회사에다 줄 필요 없어. 기자한테 주면 돼”라고 말하고 있다. ‘자연인’에게 호의로 주는 돈이 아니라는 거다. 기자가 돈을 받을 때 이 맥락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2021년 10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2021년 10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런데 한겨레, 한국일보, 중앙일보, 채널A 소속 기자 뿐일까? 김만배 씨는 녹취록에서 자기가 관리하는 기자들 집단을 ‘지회’라고 표현하고 있다. 남욱 변호사 진술에 의하면 김만배 씨는 골프 접대를 하는 방식으로 돈을 줘가며 기자들을 관리했다고 한다. 김만배 씨는 기자들 뿐만이 아니라 법조인들도 같은 방식으로 관리했다고 한다. 애초 ‘50억 클럽’의 구성원 상당수도 판검사들이다. 전말을 모두 밝혀야 한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언론에 신뢰를 갖기 어려워졌다는 거다. 김만배 씨에게 돈을 받은 기자들이 소속된 매체들이 앞으로 이 사안을 제대로 보도할 수 있을까? 보도한들, 독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앞서도 썼듯 이 기자들은 ‘간부’로 지칭됐다. 취재와 편집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는 직책이나 위치에 있었다는 뜻이다.

이 사건이 언론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걱정이다. 과연 기자들을 돈으로 관리한 게 김만배 씨 하나뿐일까? 김만배 씨와 기자의 유착과 같은 일들은 그냥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의심은 과한 게 아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이미 비슷한 사례를 몇 차례나 봤다. 2016년 조선일보사의 송희영 주필이 호화로운 출장에 동행하는 방식으로 접대를 받은 사건은 어떤가.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로비스트’ 박수환 씨는 그 이전에 이미 언론인 자녀의 채용 청탁에 관여하거나 명품을 선물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는 점이 뒤늦게 보도를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2018년 삼성 미래전략실의 장충기 전 사장의 문자 내용이 폭로된 사건은 어떤가? 당시 장충기 사장이 문자를 주고 받은 대상 중에는 언론인도 상당수 포함됐는데 골프니 음악회 티켓이니 하는 얘기가 있어 화제였다. 2021년의 가짜 수산업자 사건은 어떤가? 여기서도 차량, 골프채, 수산물, 자녀 학원 수강료, 대학원 등록금 등을 받은 언론인들이 등장한다. 그야말로 직업윤리가 완전히 실종됐다.

언론은 과연 이런 상황을 자정할 능력이 있는가?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한바탕 시끌벅적하고 마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 의혹에 등장했던 언론인들 상당수가 지금도 같은 회사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게 구체적 증거다. 김영란법을 만들 당시를 떠올려보라. 주요 언론들이 입법을 얼마나 극렬히 반대했는가? 이런 현실을 보며 언론이 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일각에서 출입처 폐지 등 필요성을 얘기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앞서 사건들로 본 로비와 청탁은 출입처와 취재원의 벽을 거뜬히 넘기 때문이다. 기자들 스스로가 윤리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상호감시와 견제가 강화돼야 한다. 언론이 동업자 의식을 갖고 서로 싸우는 일을 자제하는 게 아니라, 언론이 언론에서 일어난 사건을 서로 취재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그나마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적어도 상호 간 보도에 대한 비판과 이를 통해 스스로를 가다듬는 일이 일상이 돼야 한다. 그래야 어느 기자의 ‘일탈’이 벌어졌을 때, 적어도 그 사실이 보도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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