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법조기자 출신 언론사 간부들과 금전 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장동 로비 의혹이 언론계로 옮겨붙었다. 문제는 이 역시 법조 비리라는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1년 '50억 클럽' 명단이 공개돼 파문이 불거졌다. 김만배 씨가 법조인 5명과 언론인 1명에게 50억 원을 주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50억 클럽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은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박영수 전 특별검사, 김수남 전 검찰총장, 최재경 전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출신 4명과 권순일 전 대법관,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 등 6명이다. 홍 회장을 제외한 5명은 법조인이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이 지난해 10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화천대유 관련 이른바 '50억원 약속 클럽'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이 지난해 10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화천대유 관련 이른바 '50억원 약속 클럽'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곽 전 의원은 자녀가 화천대유에서 근무하다가 퇴직금, 위로금 명목으로 50억 원(세금 25억 원)을 받은 것이 문제가 돼 뇌물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홍선근 회장은 김만배 씨에게 50억 원을 빌리면서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박영수 전 특검은 딸이 대장동 아파트를 특혜 분양 받았다는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김만배 씨가 부장판사들의 유흥업소 술값을 여러 차례 대신 내준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은 수원지법·서울중앙지법에서 부장판사를 지낸 김 모 전 판사와 대법원 이 모 판사가 서울 역삼동 소재 모 유흥주점에서 '김만배' 이름으로 비용처리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씨가 대장동 일당을 통해 검사·판사들을 상대로 수시로 현금을 상납하고 골프 접대를 한 정황도 나타난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13년 3월 5일 김 씨는 정영학 회계사에게 "터지면 대장동 사업 못해", "그 당시에 그걸 다 깔끔히 막았잖아"라고 말했다. 김 씨는 "형이 공적으로 쓴 것 말고 사적으로", "공적으로 들어간 돈 따지면 형이 더 받아야 해"라고도 했다. 정 회계사는 김 씨 발언 중 '공적으로 들어간 돈'에 대해 "로비한 돈"이라고 자필로 기록했다. 

지난 2021년 10월 20일 남욱 변호사의 피의자신문조서에 따르면, 남 변호사는 검사가 "법조인에 대한 로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요"라고 묻자 "(김만배 씨가)판·검사들하고 수도 없이 골프를 치면서 100만 원씩 용돈도 줬다고 들었다"며 "골프 칠 때마다 500만 원씩 가지고 간다고 했고, 그 돈도 엄청 썼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남 변호사는 "이 사건 터지고 나서 국회에 있는 조선일보 기자와 통화를 했는데, 윤석열 밑에 있는 검사들 중에 김만배한테 돈 받은 검사들이 워낙 많아서 이 사건 수사를 못할 거라고 했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법원 판결에 좌우된 대장동 개발 사업

대장동 개발 사업은 검찰 수사, 법원 판결 등 법조계의 동향에 따라 수차례 영향을 받았다. 대장동 개발은 지난 2005년 국토교통건설부가 성남 대장지구 개발을 결정하고, 2008년 대장동 일원 토지소유자들이 개발 추진위원회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당초 성남시는 대장지구 개발을 공영개발 방식으로 추진했지만, 토건업자들은 대장동 일대의 토지와 건물을 선매하는 등 방법으로 민간개발을 추진했다.

성남 대장동 지구. (사진=연합뉴스)
성남 대장동 지구. (사진=연합뉴스)

부동산 개발업체 이강길 전 씨세븐 대표는 지난 2009년 대장동 땅을 사들이고, 대장동 원주민으로 구성된 민간개발추진위원회와 MOU를 맺은 후 민간개발 전환을 위한 로비를 벌였다. 이강길 전 대표는 자금조달을 위해 정영학 회계사와 남욱 변호사를 '자문단'으로 영입했다.

정 회계사는 2009년 7월 이강길 전 대표에게 한국토지공사 본부장 출신 윤 모 씨를 소개했다. 성남시청과 주택공사 로비를 위해서였다. 성남시의회 로비는 이 전 대표의 동업자였던 삼성물산 출신 분양대행업자 김 모 씨가 맡았다.

이 전 대표가 추진하던 대장동 민간개발은 2010년 6월 LH공사가 성남시에 대한 도시개발구역지정 제안을 철회하자 틀어졌다. 이 전 대표는 성남시가 사업 제안을 거절하고, 씨세븐이 지난 2010년 12월 부산저축은행 등 11개 저축은행 대주단에서 받은 1800억 원대 대출 만기가 도래하면서 대장동 사업에서 철수했다.

이 전 대표에 이어 대장동 사업권을 가지게 된 것은 남욱 변호사였다. 남 변호사는 이 전 대표의 지주작업을 토대로 대장지구 민관공영개발을 추진했다. 2011년부터 대검 중수부가 6조 원의 부실을 안고 있던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을 대대적으로 수사했는데 씨세븐 대출 건은 검찰 수사에서 빠졌다. 당시 주임검사는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2014년 예금보험공사가 저축은행 부실대출 사건 중 수사·기소가 이뤄지지 않은 씨세븐 대출 부분을 검찰에 수사의뢰 하면서 남 변호사의 입지도 흔들리게 된다. 수원지검은 이 전 대표와 남 변호사, 삼성물산 출신 김 씨, 한국토지공사 본부장 출신 윤 씨, 금융브로커 조 모 씨, 로비 대상이었던 국회의원 동생 신 모 씨 등을 수사해 재판에 넘겼다.

뇌물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 변호사는 최종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구속 수사를 받으면서 사업권을 김만배 씨에게 넘겼다. 김 씨가 사업의 주도권을 잡은 후 대장동 개발사업은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 의혹으로 부상하기 전까지 순탄하게 진행됐다.

지난 2021년 10월 20일 검찰 조사에서 남 변호사는 검사가 "김만배가 법조인 로비를 통해 대장동 개발사업에 도움을 준 것은 무엇이냐"고 묻자 "제1공단 시행업자인 신흥프로퍼티파트너스주식회사가 공원화에 반대하면서 성남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막은 것이 가장 큰 역할"이라며 "그 사건이 대법원에서 뒤집히지 않았으면, 대장동 개발사업이 3년은 지연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0년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대엽 전 시장 시절 제1공단 부지에 아파트·주상복합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용도를 변경한 도시계획을 철회하고 대장동과 1공단 부지를 결합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당시 시장이 기존 사업자였던 신흥프로퍼티파트너스의 사업시행자지정신청을 거부하면서 2011년 행정소송이 벌어졌다. 당시 1심은 성남시, 2심은 신흥프로퍼티파트너스가 승소했지만, 2016년 2월 대법원에서 성남시가 최종 승소했다.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2021년 10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2021년 10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법조로비 큰 틀에서 법조기자단 바라봐야"

최근 언론사 간부들과 기자들이 김만배 씨와 돈거래를 하거나 용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장동 로비 의혹이 언론계로 번지는 모양새다. 김 씨는 한겨레 간부 A 씨와 9억 원, 한국일보·중앙일보 간부와 각각 1억 원과 9000만 원의 돈거래를 했다. 채널A 간부는 명품 신발을 선물 받았다.

검찰은 김 씨가 기자들 수십 명과 골프를 치고 한 사람당 100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건넨 정황도 파악했다. 김 씨는 지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대장동 사업을 위해 기자들을 관리해야 한다"며 대장동 일당에게서 명절 때마다 500~70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챙겨간 것으로 전해졌다.

정영학 녹취록에 따르면, 지난 2020년 7월 29일 정영학 회계사가 "형님, 맨날 그 기자분들 먹여 살리신다면서요"라고 말하자, 김 씨는 "걔네들은 현찰이 필요해"라고 말했다. 김 씨는 "걔네들한테 카톡으로 차용증을 받어, 그런 다음에 2억씩 주고, 그래서 차용증 무지 많아 여기"라며 "분양 받아준 것도 있어. 아파트, 서울에, 분당, 그런데 그게 더 안 써"라고 했다.

김 씨와 돈 거래를 한 언론사 간부들의 공통점은 김 씨와 친분이 깊은 법조기자 출신 기자들이라는 점이다. 김 씨와 골프를 친 기자들 다수도 법조기자라는 후문이다. 김 씨는 일간스포츠, 한국일보, 머니투데이 등을 거치며 사회부 기자로 활동했다. 이 가운데 수 년간 대법원 기자단 간사 등 법조기자단에서 직책을 맡았다.

법조기자로 수년 간 활동했던 A 기자는 "김만배 씨에게 소고기를 얻어먹지 않은 법조기자는 법조기자가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며 "대체 법조기자들이 뭐길래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조기자 출신 중견 언론인은 "김만배 씨는 법조기자단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라며 "이 사건은 단순히 기자들이 문제라는 것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법조 로비'라는 큰 틀 안에서 법조기자단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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