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비판을 받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50인 미만 사업장 3년 유예’ 등 문제적 조항은 수정되지 않았다. 법안을 주도적으로 통과시킨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노동계 우려 속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중대재해법 제정안은 8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석 의원 266명 중 164명이 찬성했고 44명이 반대했다. 기권한 의원은 58명이다. 정의당 의원들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자 사망 등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을 물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인에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또한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나 법인은 최대 5배 범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했다. 시행 시기는 법 공포 뒤 1년 뒤다.
문제는 중대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의 사업주가 처벌 대상에서 빠졌다는 점이다. 법사위는 5인 미만 사업장 사업주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 처벌은 3년 유예하기로 했다. 현재 중대재해 98.8%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경영책임자의 범위가 '대표이사 또는 안전담당 이사'로 수정돼 사업주가 책임을 회피할 우려도 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8일 본회의 토론에서 “국민 70%가 찬성하는 법인데 양당 합의라는 미명 하에 허점투성이 법안이 만들어져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강 원내대표는 “5인 미만 사업장이 처벌 대상에서 빠져 또 다른 차별이 생겼다”며 “중대재해법이 통과되는 자리이지만 결코 웃을 수 없다”고 밝혔다.
강 원내대표는 “이제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과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면서 “경영계는 ‘기업을 잠정적 살인자로 보는 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산업재해가 기업 살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강 원내대표는 “사법부는 중대재해법 제정 취지를 살리는 적극적인 법 해석을 해야 한다”며 “정부는 ‘노동자 안전과 생명이 버림받았다’는 원망을 듣지 않기 위해 설득력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법 제정 과정에서 정의당과 노동자의 요구가 잘려 나가는 것을 목격했다”며 “국민의힘이 쏘아 올린 공을 더불어민주당이 완성시킨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민주당의 국정철학은 사라졌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류 의원은 “모든 노동은 존엄한데 사업자 규모에 따라 노동자를 차별하는 법은 찬성할 수 없다”며 “국민 지지와 응원에도 원안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 앞으로 입법에 목적 맞는 집행이 이뤄지도록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강미정 열린민주당 의원은 “중대재해법은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 될 것 같다”며 “각 정당 의원들이 국회 앞에서 20여 일 단식 중인 김용균 어머니, 이한빛 아버님을 위로하는 모습을 봤다. 하지만 지금 법으로는 결코 약속을 지킬 수 없다”고 했다.
김태흠 국민의힘 의원은 노동자 생명이 달린 법을 두고 “경제 생태계 파괴법”이라며 “중대재해법은 시류에 영합해 근로자 생명과 안전을 명분으로 들고 있지만, 결국 정치 권력의 횡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은 8일 중대재해법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일터에서 중대재해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양대 노총은 “5인 미만 사업장의 적용 제외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 유예는 실제 대다수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작은 사업장의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며 “앞으로도 중대재해 피해자는 계속 발생할 것이고 실효적인 처벌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8일 오후 사설 <원칙 없이 타협하다 껍데기만 남은 중대재해법>에서 “법 취지를 크게 훼손한 정부안을 바로잡으라는 산업재해 유가족과 노동계, 시민사회의 요구에 두 당은 정부안보다 외려 크게 후퇴한 내용으로 답을 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방향성을 잃은 채 원칙 없는 타협으로 ‘누더기 법’을 만든 것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며 “생명과 노동에 관한 문재인 정부의 철학과 의지 부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민주당은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와 함께, 법 개정 방향과 일정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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