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같은 작업장에서 비슷한 이유로 노동자들이 계속 죽는다면 안전한 근로환경을 만들지 않은 사업주가 최종 책임을 지는 게 상식입니다. 중대재해기업을 명확히 규정하고 강도 높게 처벌하는 법안이 있어야만 노동자들의 죽음을 멈추고 궁극적으로 생산성도 늘릴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5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보도된 리포트 일부분이다. MBC는 '매일 2명씩 죽어 나가는데…벌금만 내면 그만?'이라는 제목의 심층보도를 통해 산업재해가 반복되는 이유를 집중 조명했다. 대안으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언급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5일 [집중취재M]의 <매일 2명씩 죽어 나가는데...벌금만 내면 그만?>이란 제목의 8분짜리 리포트를 전했다. (사진=MBC)

지난 5월 삼표시멘트 하청업체 소속 63살 김 모 씨는 멈춰섰던 연료 운반용 컨베이어 벨트가 갑자기 작동해 숨졌고, 해당 공장에서는 지난 1년 동안 김 씨를 포함해 3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다. 김 씨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16톤 트럭의 후진을 유도하던 50대 작업자가 차량 아래 깔려 숨졌다. 크레인 사망 사고 뒤 삼표시멘트는 과태료 140만 원을 냈지만 이후 2건의 사망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 2월 경북 포항의 현대제철에서는 31살 공 모 씨가 1,500도의 쇳물 위로 떨어져 화상을 입고 사망했다. 공 씨가 밟고 떨어진 뚜껑은 지난해부터 노동자들이 교체를 요구했던 2천만 원짜리 뚜껑이다. 현대제철은 사망 사고로 벌금 600만 원을 냈다.

<뉴스데스크>는 산재가 발생한 기업에 대한 처벌이 강하지 않아 사고가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검찰에 넘겨진 사건 11만여 건 중 구속된 사례는 26건, 90%는 재판조차 열리지 않았다. 재판에 넘겨지면 2/3는 벌금형에 그쳤고 벌금액은 평균 500만 원이 채 안 됐다.

KBS는 지난 7월 2일부터 ‘일하다 죽지 않게’ 연속 기획 시리즈를 보도하고 있다. 메인뉴스에서 보도하고 인터넷 기사로 자세한 내용을 보충한다. 노동건강연대와 일주일 사이에 숨진 노동자 현황을 집계하고 매주 열악한 노동환경 실태를 알린다. 집계 이후 15주 넘게 두 자릿수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KBS는 매주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일주일 사이에 숨진 노동자 수를 집계해 보도하고 있다. (사진=KBS)

‘일하다 죽지 않게’ 시리즈에서는 택배노동자, 상수도 노동자, 3D프린터기 사용 교사,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들에 대한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KBS 역시 지난 5월 삼표시멘트 공장에서 사망한 김 모 씨의 사례에서 기획을 시작했다. KBS는 최근 9년간 고용노동부에 보고된 중대재해 8,057건을 분석했는데, 중재대해가 2번 이상 반복된 사업장은 279곳, 3번 이상 반복된 곳은 60곳이었다. (관련기사 : [일하다 죽지 않게]① 죽은 곳에서 또 죽는 일터는 어디? )

노동자가 죽어도 회사에 대한 처벌은 벌금형에 그쳤다. KBS는 2018,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1심 판결문 가운데 법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671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업체 대표‧현장 소장 등 법인을 제외한 피고인 1,065명 가운데 21명만 집행유예 없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피고인의 절반가량인 49.5%는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평균 벌금 액수는 485만 원이었다.

KBS는 “계속되는 솜방망이 처벌에 노동계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마련해 처벌의 하한선을 두자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지난달 8일에는 산업재해가 발생했는데도 보고되지 않은 경우가 최근 5년 동안 4500건이 넘었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JTBC는 지난 5월 27일 <뉴스룸>에서 “갑질을 당했거나 산재를 당했거나, 먹고 살기 위해 뛰어든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죽음이 일상이 돼 가고 있다. JTBC는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온전히 보호받는 그날까지 추적하고 집중 보도하겠다”라고 밝힌 뒤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추적 보도를 이어오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 김성인 씨에 이어 입주민 갑질 폭행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은 경비원 최희석 씨의 사연, LG전자 하청을 받아 일하다 추락 사고를 당한 에어컨 설치기사의 사례를 들어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다뤘다. 6월 10일에는 현대제철 공장에서 일하다 쓰러진 일용직 노동자, 28일에는 대구 한 자원재활용 업체 지하창고에서 숨진 노동자 4명의 사고를 조명했다. 2개월 뒤 8월에는 삼성중공업에서 불이나 숨지고 다친 노동자들의 사건을 보도했다.

JTBC도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21대 국회에서 대표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주목했다. 지난 6월 발의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에 위험 방지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해 사망 사고가 났을 때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천만~10억 원 벌금, 상해 사고의 경우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안전관리 소홀로 노동자가 죽거나 다치는 경우 사업주, 특히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한 법안으로 “산재 사망 사고 시 선고된 벌금이 평균 448만원에 불과한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방송사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주목하는 반면, 이를 반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측의 입장은 보수 경제지에 실린다. 경총은 지난달 25일 “현재 산업재해보건법에 규정된 사업주 처벌 형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경영활동을 위축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전달했다. 한겨레를 제외한 일간지 대부분은 이를 검증 없이 그대로 보도했다.

조선일보 <경총 “산업재해로 인한 기업 처벌 이미 세계 최고 수준”>, 매일경제 <“산안법 이어 ‘중대재해법’까지?...경총 ”기업 과잉처벌“ 강력 반대>, 서울경제 <경총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통과땐 경영활동 위축“> 등이다. 이후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필요성이 제기될 때면 동아일보 <재계 “또 기업처벌 강화 법안 너무해”...중대재해처벌법 과잉입법 논란>(11월 3일 1면)과 같은 기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5일 당 상무위원회의에서 “이낙연 대표가 국회연설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서두르자고 말한 지가 이미 두 달 전인데, 민주당은 아직도 법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관련 논의는 미뤄지고 있다. 지난 9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씨의 어머니가 올린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10만 명이 참여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다뤄지게 됐다. 10월에는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박주민 의원을 필두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왔지만 아직 준비중이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5일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에 대단히 유감”이라며 “집권 여당이 시간을 허비하는 지금 이 시간에도 집으로 영원히 돌아가지 못하는 노동자가 생기고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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