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적용범위, 시기, 처벌수위 등이 완화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18일째를 맞은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고 김용균씨 어머니)은 정치권의 소극적 태도에 비판을 쏟아냈다.

28일 중대재해법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되고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를 바탕으로 법안심사소위 논의를 재개해 최종안을 마련할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중대재해법이 당초 원안보다 크게 후퇴한 안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난 24일 각 정부부처는 중대재해법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법사위에 제출했다. 26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소방청,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등은 '법안 취지에 동감하지만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검토의견서를 내놨다.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이사장이 28일 오전 국회 본청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촉구 단식농성장에서 열린 정의당 대표단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우선 사업장 규모에 따른 단계적 적용이 검토되고 있다. 민주당은 중소기업(개인사업자·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을 4년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이에 대해 정의당 김종철 대표는 25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4년 유예 부분은 굉장히 타협하기 힘든 부분이다. 우리나라 50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 사업장의 98.8%고, 건설현장에서도 거의 80% 이상"이라며 "시공사의 80% 이상이 50인 미만"이라고 말했다.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처벌 구성요건이 아닌 '가중처벌 요건'으로 완화하는 안이 거론되고 있다. 당초 민주당 박주민·이탄희 의원 법안은 산업재해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주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추정을 통해 사업주 책임을 묻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당정은 중대재해법 처벌대상을 '경영책임자'에서 '안전담당 이사'로 한정하고, '공무원 처벌' 조항을 직무유기죄를 물을 수 있는 경우에 가중처벌하는 내용으로 수정하는 안을 논의 중이다. 과잉금지원칙에 따라 벌금과 손해배상액의 상한선을 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인과관계 추정 조항과 처벌수위 등을 독소조항으로 꼽고 있다.

28일 정의당 김응호 부대표는 중대재해법 제정 촉구 국회 단식농성장에서 정부안을 '후퇴'라고 지적했다. 김 부대표는 "중대재해법이 노동의제만이 아닌 국민생명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음에도 작은 기업과 자영업자 핑계를 대며 대기업 원청의 책임성을 분명히 하지 않고,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법망을 피해나갈 수 있도록 정부안이 제출된다면 이는 국민적 동의와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며 "국민생명이 아니라 재벌의 손을 들어 주었다 평가받을 것이며 그 책임을 고스란히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8일 경향신문은 사설 <'단계적 시행' 만지작 여권, 중대재해법 후퇴 안 된다>에서 "민주당은 심사과정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한다는 법안 취지에 맞는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기업의 반발을 핑계로 핵심 내용은 빼버린 빈껍데기 법안을 밀어붙인다면 노동존중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거짓이었음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중대재해법 적용을 유예하면 전체의 1.2% 사업자에만 적용되는 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인과관계 추정 조항 후퇴도 문제다. 당초 이 법의 취지는 원청기업 최고경영자의 책임성을 강화함으로써 산재를 예방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인과관계 추정 조항과 경영책임자·공무원 처벌 조항을 무력화한다면 법의 골격은 무너진다"며 "이렇게 취지와 동떨어진 법으로 산재를 근절하겠다니 어이가 없다. 뒤늦게 이번 임시국회 내 법 제정을 약속하더니 이제는 누더기법을 만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8일 사설 <'단계적 시행' 만지작 여권, 중대재해법 후퇴 안 된다>

이도흠 한양대 교수는 같은날 한겨레 시론 <이 땅에서 가장 절박한 자리>에서 "산재 사망자 10명 중 8명이 50인 미만 소기업에서 사망하는데, 유예기간을 두면 8명은 죽게 놔두고 2명만 살리자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며 "원청과 사업주의 처벌을 명시하고, 50인 미만 소기업에 대해서도 유예기간 없이 전면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2014년, 현대제철에서 1년 5개월동안 13명이나 산재로 사망하는 바람에 청와대 비서실에서 경고성 전화를 하자 정몽구 회장이 바로 헬기를 타고 당진 공장으로 가서 5천억원을 안전에 투자하고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임원부터 엄중 문책하겠다고 선언하였다"며 "그러자 사고는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만 제대로 제정되면 모든 기업에서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국회에서 단식 농성중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27일 중대재해법 입법촉구 기자회견에서 "사람들을 살려달라고 밥을 굶은 지 오늘로 17일째가 되었지만 국회의원들은 법 통과 의지를 보이지 않고 시간만 끌고 있는 것 같다"며 "우리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국회가 먼저 나서서 사람들 죽음을 막는 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늉만 하지 뚜렷하게 진척되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민주당에서는 국민의힘이 논의에 들어오지 않아 처리가 어렵다고 말한다. 야당이 협상에 나오지 않으면 여당 단독으로라도 처리해달라"면서 "국민의힘에서는 논의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민주당이 단일안을 내면 들어오겠다고 말한다. 논의는 하지 않다가 나중에 들어와서 법안을 희석시킬 생각이라면, 국민들이 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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