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비동의 강간죄 도입과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강 후보자가 진전된 인권 의제의 제도화를 일부 기득권 세력의 눈치를 보며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강 후보자는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답변 자료에서 비동의 강간죄 관련 질의에 "입증책임의 전환 우려 등을 이유로 반대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법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강 후보자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질의에 "현재 찬반 의견이 나눠진 갈등 요소가 많은 사항"이라며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강 후보자는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의에도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논의돼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또 강 후보자는 포괄적 성교육에 대해 "아동·청소년 대상 성교육은 교육 수요자의 다양한 의견과 관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사회적 합의와 논의를 바탕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답했다.

14일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차별금지법, 강간죄 개정을 옹호하는 여성가족부 장관을 원한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성폭력상담소는 "'사회적 합의'는 사회적으로 진전된 시민들의 인식과 삶을 반영하는 적극적 인권 의제를 일부 기득권 세력의 반대에 눈치 보며 정치권이 가로막을 때 쓰는 용어"라며 차별금지법 제정과 형법상 강간죄 개정이 유엔에서 한국 정부에 권고한 사항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지난해 6월 한국정부 9차 심의 최종권고에서 2년 이내 특별 보고 사항으로 차별금지법 제정과 형법상 강간죄 개정을 지정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는 ▲국제인권 기준에 따라 부부강간을 포함한 모든 강압적 상황을 고려해 합의에 기반하지 않는 모든 성적 행위를 포괄하는 적극적이고 자유롭고 자발적인 동의의 결여를 기반으로 강간을 정의하도록 형법을 개정할 것 ▲공적 및 사적 영역에서의 직·간접 차별을 비롯하여 취약한 집단의 여성과 소녀들이 직면하는 교차적 형태의 차별을 다룸으로써 형식적·실질적 평등을 보장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명확한 타임라인을 설정할 것을 권고했다. 여가부는 해당 권고를 이행하고 보고해야 하는 주무부처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송두환 전 국가인권위원장(윤석열 탄핵심판사건 국회 측 법률대리인)은 재직 시절 비동의 강간죄 도입과 차별금지법 제정을 국회에 주문했다. 지난해 3월 8일 송 인권위원장은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와 자유권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형법상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과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정의할 것 등을 권고했다"며 "인권위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대한 독립보고서 제출 등 여성 인권과 성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송 전 위원장은 지난해 6월 18일 국제혐오표현 반대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22대 국회에 "혐오와 차별을 금지하는 법 마련에 노력해달라"며 "세계 각국은 평등법 또는 보편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혐오표현에 맞서고 있다. 법률의 제정은 혐오와 차별에 대한 대응 의지를 표명하고 평등사회로 나아가는 구체적인 노력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성폭력상담소는 강 후보자가 비동의 강간죄에 대해 '입증 책임 전환 우려'를 언급한 데 대해 "입증 책임의 전환 우려라며 반대한 이가 누구였나. 전 법무부 장관 한동훈"이라고 날을 세웠다.
성폭력상담소는 "이미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카메라등이용촬영에 '의사에 반하여' 요건이 있지만 이를 두고 '입증 책임의 전환'이라고 말하는가. 수사도 기소도 재판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한 전 장관과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은 형법상 강간죄 개정을 두고 갈라치기 정치를 했다. 법무부는 제3차 양성평등기본계획 수립 이후 '형법상 강간죄 개정 검토'를 번복했고, 여가부는 이 이견을 그저 수행했다"고 비판했다.
성폭력상담소는 "여가부 장관은 윤석열 정부와 정치권이 정치적 사안으로 만든 형법상 강간죄 개정 과제를 전문적인 의제로 다시 정비해야 한다"며 "일본은 2023년 형법을 ‘부동의성교죄’로 개정하여 동의를 형성, 표명, 완수할 수 없는 사유를 밝히며 사회적 진전을 이뤘다. 우리는 차별과 혐오를 앞세운 과잉정치로부터 빠져나와 실사구시의 전문적 행정을 펼칠 장관을 원한다"고 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표는 14일 성명에서 "강 후보자는 뭘 하고 싶어서 장관이 되려 하는가"라며 사퇴를 촉구했다. 권 대표는 "강 후보자가 젠더 분야 주요 정책 의제들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이유로 모두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며 "지난 대선에서 비동의 강간죄를 공약한 후보를 만나 '죽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했다는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말이 강 후보자에겐 들리지 않는가. 딥페이크 성범죄 등 학교 현장에서 지금도 확인되고 있는 왜곡된 성 인식과 차별받는 소수자들의 고통이 강 후보자에겐 보이지 않는가"라고 했다.

권 대표는 "광장 여성 시민들은 이재명 정부에게 3년간 사실상 멈춰 있었던 여가부를 조속히 정상화하고 개혁과제를 강력하게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며 "‘사회적 합의’ 운운한 정치인 중 그 합의를 앞장서 만들어 온 정치인은 없었다. 그것이 결국 ‘하지 않겠다’는 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모르지 않는다. 강 후보자의 태도는 여가부 정상화를 위해 싸워온 여성들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행 형법은 폭행·협박이 있는 경우에만 강간죄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강간 피해를 입은 2018명의 상담일지를 분석한 결과, 153명(70.2%)의 사건은 폭행·협박 없이 발생했다. 여성단체 등에서 강간죄 성립 요건을 동의 여부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동의 여부 입증 책임이 사실상 검사가 아닌 피의자·피고인에게 돌아가 억울한 사람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찬성하는 측에서는 죄 성립 요건이 상대방 동의 여부가 되는 것일 뿐 입증 책임은 여전히 검사에게 있다고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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