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이재명 정부가 첫 장관 후보자들을 지명했다. 이전까지는 새 정부의 국무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시간을 들인다는 기조였지만 외교안보 영역부터 장관이 신속하게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지명 시점이 빨라진 것으로 보인다.
장관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면 전반적으로 ‘중도-실용’의 기조가 뚜렷하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와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가 그렇다. 배경훈 후보자는 LG AI연구원장으로 한국형 대형언어모델인 ‘엑사원’ 개발을 주도한 인사로 알려져 있다.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 과 호흡을 맞춰 ‘소버린 AI’ 전략에 집중할 것으로 보이는 포석이다. 한성숙 후보자도 네이버 출신이라는 점에서, AI 분야를 떠나 유사한 맥락의 연결고리가 보인다. 새 정부가 중시하는 정책 분야 관련 민간 영역에서 성과를 낸 인사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활용할 수 있다면 진영을 신경쓰지 않겠다는 메시지도 보이는데, 전 정권에서 임명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가 유임된 점이 그렇다. 송미령 장관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취해왔고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이력도 있다. ‘반성문’을 쓰기는 했으나 윤석열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에 불려간 인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에 개의치 않고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는 것은 그만큼 ‘중도-실용’의 색채를 중요시한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선택으로 읽힌다. 정치의 시작은 민주당 계열에서 했다지만, 최근 상대 정당에서 합류한 이력을 갖고 있는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도 마찬가지 맥락의 선택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에서도 나름의 색깔을 포기하지 않은 영역도 있다. 불법적 계엄 선포 사태를 수습하고 국방개혁을 진두지휘해야 할 국방부 장관의 경우가 그렇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사실상 최초의 민간인 출신으로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되었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공화국 체제에서 필수다. 따라서 형식적으로 역대 국방부 장관은 모두 군을 전역한 상태에서 직을 맡아 왔다. 그러나 거의 바로 직전까지 군 고위직을 맡은 경우가 절대다수였으므로 문민통제가 완전히 이뤄졌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국방위에서 오래 활동하면서 상임위원장을 맡을 정도의 경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대목에서 개혁과 실용을 모두 챙기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인선이라고 볼 수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유사한 맥락이다. 정동영 후보자는 거의 20년 만에 다시 통일부를 맡게 되는 셈인데, 전문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동시에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갖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조현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존재를 볼 때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상대적으로 주류 지향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되는데, 그 와중에 정동영 후보자는 이종석 국정원장과 함께 대북문제가 현안이 될 경우 해결사 역할을 맡게 되는 셈이다. 이런 점을 보면,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자기 색깔을 양보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현직 기관사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고용노동부 장관을 맡게 되는 것은 처음이다. 재계의 우려 등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은 이재명 정부가 적어도 노동 문제에 있어서는 어떤 ‘유산’을 남기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반면, 개혁적 의지를 표명할만한 대목인데 후퇴한 듯한 대목도 있다. 대표적인 게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 분출된 아젠다 중 하나였던 젠더 이슈와 관련한 대목이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후보자 자체에 결격 사유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이전 정권의 경우에는 여성운동이나 학계를 통틀어 상징성을 가질 만한 인물을 여가부 장관 후보자로 고려했다는 점이 비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의 김영훈 후보자의 경우와 엮어서 보면 ‘노동 문제에 대해선 분명한 의지를 보일 수 있지만 젠더 문제에 대해선 크게 논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평가가 앞서 송미령 후보자의 경우와 묶이면 ‘광장의 목소리가 외면당할 수 있다’는 우려로 귀결될 수 있다. 이른바 ‘남태령 대첩’에 불이 붙은 것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등에 분노한 농민단체 회원들의 상경 시위가 경찰에 의해 가로막힌 사건이 발단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더 그렇다. 남은 장관 후보자 인선은 이러한 우려를 덜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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