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노하연 기자] 언론·미디어가 혐오표현을 퍼 나르면서 독자·시청자의 혐오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전문가 비판이 제기된다. 언론이 자극적인 따옴표 인용 기사를 생산하면 댓글에서 혐오표현이 뒤따르는 악순환이 거론되고 있다. 시민사회는 ‘말할 자유’ 뒤에 가려진 ‘피해받지 않을 권리’를 외면한 언론 보도 행태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11일 진보당·한국여성민우회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미디어 속 혐오표현 개선과 차별금지법> 토론회를 개최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 김수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부교수,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박고은 한겨레 기자, 성상민 문화평론가, 한희정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부교수가 참석했다.

발제를 맡은 김수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부교수는 “차별금지법은 ‘표현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법’,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이 아니라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국가의 예방 의무를 설정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교수는 대표 사례로 국민일보의 <동성애 합리적 비판 재갈 물리는 ‘온라인 차금법’ 재발의 우려>(2024년 7월 3일자) 기사를 언급했다. 해당 기사는 ‘동성애 OUT’이라는 댓글을 작성한 누리꾼이 혐오표현 가이드라인 위배로 신고된 사례를 다루며 온라인상 혐오·차별표현 규제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 “특히 동성애 등에 대한 합리적 비판도 원천 봉쇄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 부교수는 “국민일보는 ‘이 정도 말도 못한다’ ‘이제 인터넷에서 이런 식으로 나의 자유가 침해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한 것 같다”며 “차별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개인의 자율을 규제하는 것이라는 식의 담론은 (차별금지법 논의를) 어렵게 한다”고 했다. 이어 김 부교수는 “그러나 차별금지법의 핵심은 ‘어떤 법도 당신이 말을 못하게 막을 수는 없지만 그 말에 사회적 책임이 있고, 그 말이 갖고 있는 사회적 효과에 따라서 그 말의 표현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언론이 혐오표현을 확대·유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부교수는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이 혐오를 누가 유통시키는가의 문제”라며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온라인 혐오표현 인식 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언론이 ‘혐오표현을 확대·조장 ’하고 있다는 의견은 응답자의 절반가량인 49.6%로 나타났다. ‘혐오표현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고 답한 비율은 14.2%에 그쳤다. 김 교수는 “책임은 결국 플랫폼 혹은 언론에게 있다. 그러나 둘 다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처장은 “언론·미디어 단체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권적 관점이 결여된 언론은 혐오와 차별의 확성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것은 제가 2022년 (언론 미디어 단체의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내용이었다. 사실 지금도 (이 생각은)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권 처장은 “언론과 미디어가 혐오를 나르고 있다”며 “종교 재단이 소유하거나 관련 있는 언론 미디어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권 처장은 성별이나 연령, 직업, 종교, 계층, 지역, 인종 등의 이유로 방송 편성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현행 방송법 제6조를 거론하며 CTS의 사례를 언급했다.
2020년 7월 1일 CTS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통과,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차별금지법 반대 긴급 대담을 방송했다. 해당 대담에 김태영(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김종준(대 한예수교장로회 합동)·윤보환(기독교대한감리회) 목사 등 주요 교단장들이 동성애에 관한 허위 주장을 쏟아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CTS 대담이 <방송심의규정> 제 9조(공정성)와 제14조(객관성) 조항을 위반했다며 법정제재 ‘주의’를 의결했다. 그러나 2022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은 방통심의위가 CTS에 내린 제재를 ‘취소’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기독교적 교리와 이념의 전파를 위해 불가피한 범위 내 차별적 내용의 방송 편성이 가능하다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권 처장은 “이 조항은 ‘종교방송은 성소수자를 차별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활용된다는 측면에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겨레 사회부 박고은 기자는 언론과 미디어에서 발생하는 혐오 표현의 해결 방안으로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기자는 “언론에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는 차별적인 기사가 차별·혐오적 인식 강화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행위'로도 이어지기 때문”이라며 2022년 성균관대 연구팀의 <제20대 대통령선거 기사에 대한 댓글 분석>논문을 인용했다.
논문에 따르면 ‘큰 따옴표 제목 기사’에서 전체 댓글의 57.5%가 악성댓글이었다. 정치혐오 댓글(30.2%)이 가장 많았고, 연령 혐오 (21.1%), 직업 혐오(17.3%), 성별 혐오(15.6%) 순으로 나타났다. 박 기자는 “언론이 자극적 인용구를 제목에 넣으면 독자들은 악성댓글을 다는 것으로 반응한다”고 지적했다.
박 기자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혐오 정치로 지지자를 세력화하는 정치인과 차별·혐오적 보도로 조회수를 높이는 데 급급한 언론을 견제하고, 차별을 당해도 침묵할 수밖에 없던 수많은 이들에게 법적·제도적 언어를 주는 일이기 때문”이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은 벽을 부수는 망치다. 차별금지법은 존재 자체로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사회에 준다”고 덧붙였다.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법 제정뿐 아니라 현재 방송·통신 심의 규정 등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성 평론가는 “차별금지법 논의에서 다루어지는 ‘표현의 자유’와 ‘차별과 혐오 규제’는 상반된 논리가 아니다”라며 “오히려 한국에서는 '표현의 자유'의 근간 자체가 제대로 확립되거나 보장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성 평론가는 일례로 방통심의위의 2015년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 심의를 들었다. 방통심의위는 해당 드라마에 나온 여자 고등학생 사이의 키스 묘사 장면에 7단계 방송심의 의결 중 4번째로 제재 수위가 높은 ‘경고’를 내렸다. 당시 방통심의위는 “드라마에서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동성애, 그것도 청소년 동성애는 문제가 있지 않나. 과하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성 평론가는 “문제적 심의 결정은 법과 제도 그 자체, 그리고 시행 방법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지 않고서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라며 "법을 그냥 제정하는 것만으로 완벽하게 이 혐오와 차별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차별금지법 논의는 이 사회에 차별받지 않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켜가며 할 수 있는 그런 인권을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로 가기 위한 하나의 큰 과제를 놓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 과정에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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