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3분 윤석열 대통령의 기습적인 비상계엄 선포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다행히 4일 새벽 1시 1분 국회의원 190명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됐고, 이후 두 차례의 표결 끝에 내란 우두머리인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1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내란의 밤’에 이르기까지 숱한 불법행위와 진실이 드러난 상황, 이제 탄핵의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포고령 1호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규정했다. 때문에 그날 밤 언론사들이 비상 대책을 논의했다거나 몇몇 기자들은 피신했다는 후일담도 들린다. 특히나 그간 윤석열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언론인들은 더욱 불안감을 가졌을 법하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을 보도한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는 12.3 내란 사태 어떻게 봤는지 들어보고자 지난 18일 서울 충무로역 근처 뉴스타파 함께센터에서 만났다. 다음은 심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 (사진=이영광 기자)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 (사진=이영광 기자)

14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보도를 꾸준히 해온 입장에서 소회가 특별할 것 같아요.

“사필귀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탄핵의 직접적인 계기는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시도죠. 그런데 비상계엄 선포 전에도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정치 지도자의 도덕성과 정당성은 이미 파탄에 이른 상태였다고 봅니다.

정치인의 도덕성이나 정당성에 대해 시민들이 용인할 수 있는 한계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걸 일종의 저수지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해보자고요. 도덕적인 문제를 쓰레기라고 보면 커다란 쓰레기가 나올 때마다 윤석열은 이걸 저수지에다 처박아 둔 거예요. 근데 계속 버리다 보니 결국 저수지가 쓰레기로 가득 차고 넘쳐서 악취를 풍기는 상태였다고 볼 수 있어요.”

계엄 선포는 끓는점이었고 그 외의 것이 쌓였기 때문에 탄핵됐다고 보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서 비유를 계속 말씀드리면 저수지에 쓰레기가 너무 차서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포크레인 불러서 아예 흙으로 덮어버리려고 한 거죠.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지만, 이번 계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이 최근 명태균 게이트의 황금폰이 발견됐다는 얘기 듣고 결심했다는 보도도 있었잖아요. 물론 사실 여부는 확인해볼 문제이지만요.

결국 그 커다란 저수지에 쓰레기가 너무 쌓여서 국민들도 이미 용인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고, 윤석열 대통령 자신도 이대로 두고는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한꺼번에 덮을 만한 수를 낸 게 계엄이라고 생각해요.”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 서울역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 서울역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자님은 3일 밤 그 시간에 뭐하고 계셨나요?

“그날 결혼기념일이었어요. 그래서 와이프와 근사한 식당 가서 와인을 한 병 마셨어요. 좀 취한 채로 집에 들어온 게 10시 20분이었어요. 근데 10시 23분인가 계엄 선포를 했지 않습니까? 집에 와서 옷 갈아입는데 핸드폰 알림 메시지가 울리는 거예요. 처음에 믿을 수가 없어서 뉴스 틀어보니까 정말로 윤석열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현실이라는 걸 지각했죠.”

처음 겪는 일이었을 거 아니에요.

“그럼요. 영화나 역사책에서만 봤던 일이고 당연히 너무 현실감이 없었죠. 다른 기자들은 체포 걱정도 많이 했다고 하는데, 저는 뉴스타파의 보도를 책임지는 입장이라 그랬는지 빨리 회사에 가서 취재 지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에 하나 계엄군이 뉴스타파를 침탈한다면 우리가 총칼로 막아 세울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대비를 해야 하잖아요. 때문에 저는 회사 가서 기자들을 빨리 불러내 현장에 배치하고, 계엄군이 올 경우를 대비해서 취재자료나 편집 장비 같은 것들을 분산시켜 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다행히 큰일은 없었어요.

“계엄은 10시 반에 선포됐고, 제가 회사에 11시 조금 넘어서 왔는데 계엄군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TV로 국회 상황 지켜 보면서 잘하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회에서 1시 1분에 계엄 해제 요구안이 통과됐지 않습니까? 그때부터는 마음을 좀 내려 놓고, 취재자료나 편집 장비 분산시키려고 했던 계획도 일단 보류하고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게 된 거죠.”

이미지 출처=뉴스타파
이미지 출처=뉴스타파

계엄사 포고령에 언론 통제 부분이 명시돼서 기자들은 더 긴장한 것 같던데.

“포고령만 보면 한 줄 써 있지만 ‘계엄실무편람’이란 300쪽짜리 문건을 보면 언론 통제 계획이 매우 구체적으로 나와 있어요. 오늘(18일) 아침에 저희 뉴스타파에 황일성 기자가 그 문건과 관련해 기사 냈거든요.

계엄실무편람을 보면, 우선 보도처라는 행정조직을 만들어요. 그리고 이 보도처 밑에 ‘보도 검열단’을 편성해서 운영하는데, 보도 검열단의 멤버는 현역 군인과 방통위 직원들이에요. 그리고 보도 검열단 산하에 방송반, 통신반, 출판반, 공연반, 전시물반, 음반류반, 사이버 검색 대응반이 조직돼요. 그러니까 언론 보도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겠다는 조직이고 심지어 영화 대본, 노래 가사와 공연 대본은 사전 검열 대상이에요. 그리고 페이스북 같은 SNS라든지, 유튜브 개인 방송은 사후 감시 대상으로 적시돼 있어요.

그 계엄실무편람에 보면 ‘정권 비판 보도’는 금지예요. 더 황당한 건 군수물자 부정 유출이라든지 지휘관의 무능 작전 실패 같은 군대의 문제점도 보도 금지로 돼 있단 점이에요. 왜냐하면 군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요. 반면에 계엄사령부가 내린 지시사항 혹은 군의 작전 성공 사례, 군의 무용담 같은 내용은 중요하고 자세하게 다뤄야 한다고 돼 있어요.

아무리 계엄이라도 언론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이렇게까지 통제한다는 것은 사실 헌법에 맞지 않아요. 위헌적이죠. 이게 사실 전두환 신군부가 시행했던 것을 거의 그대로 베껴온 것인데, 전두환 신군부가 이런 검열 지침을 시행해서 당시에 기사를 108만 건을 검열했어요. 그중에 3만 건을 삭제했고요. 지침에 따르지 않은 기자 900명을 해직시켰습니다. 이런 일을 윤석열 정부가 하려고 했던 거예요.”

결과적으로 계엄군을 먼저 배치한 곳이 중앙 선관위와 국회, 그리고 <뉴스공장>이었잖아요. 왜 언론사에는 안 내보냈을까요?

“제가 보기에 언론사는 다음 날 가도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장악 대상이 <뉴스공장>이 아니라 ‘여론조사 꽃’이었거든요. 무슨 말이냐면 윤석열 대통령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굉장히 깊숙이 빠져 있다는 거죠. 국회에 보낸 건 계엄 해제 의결을 막기 위해서인 거고, 나머지 최우선 과제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입증할 만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봤던 거예요.”

이미지 출처=뉴스타파
이미지 출처=뉴스타파

만약에 언론이 제 기능을 못 했다면 계엄을 막을 수 있었을까요?

“계엄 발표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이 MBC도 들어가고 그날 라이브 방송했던 오마이 TV 같은 데 들어가고 뉴스타파도 장악해서 계엄 관련된 보도를 정상적으로 못 하게 만든다는 얘기잖아요.

하지만 SNS를 다 통제할 수는 없어요. 상황이 이러한데, 이를테면 군인들이 장악한 MBC에서는 ‘왜 저런 보도밖에 안 하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많은 시민들이 틀림없이 국회 앞으로 나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몇 개 언론사, 중요하다고 판단한 거점을 장악할 수 있었겠지만, 시민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다 통제하지 않는 이상은 그날 국회로 몰려갔던 시민들의 흐름은 막을 수 없었을 거라고 봅니다.”

언론이 일정 부분 역할을 했기 때문에 빨리 끝난 거 아닌가요?

“그럼요. 많은 시민이 언론 보도를 보고 국회 앞으로 갔어요. 국회의원들 역시 그렇게 빠르게 국회로 모여서 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할 수 있었던 것은 언론 보도의 힘이 굉장히 크죠. 그런데 계엄군이 언론을 먼저 장악했다 하더라도 그 흐름을 막을 수 없었을 거라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된 후에는 어땠나요?

“그때도 굉장히 불안감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국회의 결의안 통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 그걸 받아서 계엄 해제를 선포해야만 법적으로는 일단락이 되는 거니까 새벽 1시부터 4시 반까지 3시간 반 동안 엄청나게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실제로도 나가 있던 기자들이 철수를 못 했죠. 다들 그러셨겠지만 대통령이 계엄 해제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4시 반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12월 5일 MBC 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12월 5일 MBC 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7일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는 통과될 거란 예측이 많았지만 찬성 198표로 부결되었죠. 그 결과를 보고 어땠나요?

“저도 김건희 특검법은 통과될 거라고 예상했었어요. 국민의힘이라는 당이 민심에 역행해서 대통령과 영부인을 계속 지켜왔고 그 결과 대통령의 내란 시도라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맞이하게 됐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 탄핵안은 부결시키더라도 특검 법안은 통과시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찬성 198표니까 이탈표가 6표밖에 없었다는 얘기잖아요? 정말 놀랍고 허탈하고 분노했어요.”

12일 김건희 특검법이 네 번째로 국회 본회의 통과한 건 어떻게 보셨어요?

“그것도 사필귀정이라고 봅니다. 기본적으로는 대통령이 자기 부인의 비리를 밝히고자 하는 특검법을 세 번이나 거부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이죠.”

이번 특검법 수사 대상으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품 가방 수수, 8회 지방선거와 22대 총선 선거 개입, 20대 대선 부정선거, 명태균 관련 사건 등 김 여사와 관련한 15가지 의혹인데 적절하다고 보세요? 특검 기간이 한정돼 있어서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도 드는데.

“일단 이번 김건희 특검법은 파견 검사 30명에 파견 공무원도 60명으로 돼 있어서 상당히 많은 인력이긴 해요. 과거 국정농단 특검 같은 경우 파견 검사가 20명이고 파견 공무원 40명 수준이었거든요. 그때보다 인력은 1.5배 많고 수사 기간도 원래 최장 90일에 30일 두 번 연장해서 150일까지 가능한데, 국정농단 특검 같은 경우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이 연장을 거부해서 90일 만에 끝나긴 했습니다. 만약 이번에 만약에 90일이 아니라 150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면 인력도 일단 1.5배가 되는 거고 수사 기간도 1.5배가 되는 거죠.

근데 말씀하신 것처럼, 특검법에 나열된 수사 대상이 너무 많아요. 물론 15가지라고 해도 잘 뜯어보면 그중에 같은 맥락으로 합칠 수 있는 게 몇 가지 있긴 하지만 여전히 너무 많기 때문에 이 모든 의혹을 특검이 끝까지 다 수사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특검이 구성되고 나면 그중에서 옥석을 가리겠죠.”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씨가 9월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도보 순찰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씨가 9월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도보 순찰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12.3 내란 사태 관련해 KBS 보도 문제도 나왔는데 어떻게 보셨어요?

“2016년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두고 언론들이 취재 경쟁을 벌일 때 KBS는 그 취재 경쟁에 뛰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명백하게 규명된 사안조차 축소 보도하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았죠. 지금 KBS의 보도 행태도 8년 전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봐요.

이 사건 이전에 명태균 게이트가 터졌을 때도 KBS의 보도 스탠스는 대단히 소극적이었고, 관련해서 TF를 만들자는 기자들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윤 대통령을 계속 보위하겠다는 일념이 가득 차 있는 태도라고 봅니다. 근데 지금 내란 이후에,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이후에 풍향이 바뀌는 것 같으니까 최근 KBS에서 내란 관련해 TF를 드디어 결성했다는 얘기는 들었거든요.”

이제요?

“이게 매번 반복되는 일이긴 하지만, KBS 사장을 임명한 대통령에 대한 보위성 보도 태도는 결국 제 살을 깎아 먹는 거고 KBS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거라고 생각해요.”

죽은 권력은 사정없이 물어뜯는다고 해서 검사들을 하이에나라고 하잖아요. KBS도 비슷할까요?

“KBS는 꼭 그렇지도 않을 거예요. 아마 적당한 선에서, 이 국가적이고 역사적인 사태를 KBS가 외면하지 않았다는 평가 들을 정도로만 하겠죠. 왜냐하면 지금 박장범 사장 체제잖아요.

좀 다른 얘기인데, MBC와 KBS 상황을 비교해 보면 너무 안타까운 부분이 있어요. 어쨌든 MBC를 지배하는 방문진 이사장과 KBS 이사장이 똑같이 해임 무효 소송을 냈는데 MBC만 이겨서 MBC는 결국 사장이 바뀌지 않은 채로 계속 갈 수 있었던 거잖아요. 그게 KBS와 MBC의 운명을 가르는 분기점이었다면 또 한 가지는 이번 사건이죠. 윤석열 대통령이 이 비상계엄 선포를 한 달만 일찍 했어도 박장범이 사장에 임명될 일이 없었단 말이에요.”

KBS '뉴스9' 12월 12일 톱리포트 보도화면 갈무리
KBS '뉴스9' 12월 12일 톱리포트 보도화면 갈무리

박장범 사장이나 박민 사장이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게 아니라, 만약에 윤석열 대통령이 직무 정지가 된 상태에서 KBS 사장을 뽑았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었을 거 아닙니까? 그런 부분이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깝고 KBS가 여러 가지로 불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KBS 보도 복구가 가능할까요? 공영방송이 망가지는 건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도 손해잖아요.

“반드시 복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전제하에서 모든 논의를 출발해야 하는 것이죠. KBS가 망가졌다고 해서 버릴 수 있는 거냐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공영방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그러니까 공중파의 의미가 퇴색되어 공중파의 영향력이 작아졌다는 건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 KBS라는 거대한 언론사가 공공의 관점에서 저널리즘의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지, 그것의 플랫폼이 공중파냐 유튜브냐 인터넷이냐 이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KBS는 반드시 국민들이 되찾아서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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