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거취를 포함한 이후의 일을 당에 일임한다고 했다. 여당은 진통 끝에 퇴진 일정을 확정했는데, 정작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이제 남은 길은 탄핵뿐이다. 12일 오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이를 공개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와중에 갑작스런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소식이 들려왔다. 타이밍만 봐도 다각적인 고려를 한 걸로 보이는 대목이다.
대통령의 담화는 억지와 거짓으로 점철돼 있다. 대통령은 여전히 야당 탓을 하며 불법 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지적했듯 예산 감액이나 국무위원 및 검사 탄핵 등은 계엄 선포의 요건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발언은 계엄 선포가 불법이었다는 사실을 자백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13일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이 보도한 바를 보면 심지어 예산 관련 주장은 사실관계조차 틀렸다. “검찰과 경찰의 내년도 특정업무경비, 특수활동비 예산은 아예 0원으로 깎아놓고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국회 예산은 오히려 늘었다”고 했지만 국회가 통과시킨 예산은 ‘감액 예산’이었으므로 “국회 예산은 오히려 늘었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원전 생태계 지원 예산을 삭감하고, 체코 원전 수출 지원 예산은 무려 90%를 깎아 버렸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한국일보에 의하면 산업통산자원부 관계자는 “원전 예산 중 삭감된 건 없고 증액된 정부안 그대로 통과됐다”고 했다. “청년 일자리 지원 사업, 취약계층 아동 자산 형성 지원 사업, 아이들 돌봄 수당까지 손을 댔다”는 대목도 사실이라 보기 어렵다. 예산이 소폭 깎인 건 사실이지만 이는 저조한 집행률을 고려해 여야와 정부가 감액에 합의한 결과다. 한국일보에 의하면 정부 관계자는 “이 사업들의 예산은 조금 삭감된 수준이라 집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예산 이외의 대목에서도 거짓이 너무 많이 일일이 지적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악랄한 대목이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불법 계엄 선포의 목적과 관련된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은 헌법적 틀 안에서 계엄을 선포했고 국회의 활동을 보장했으며 군대를 투입한 건 질서 유지의 목적이었다고 주장했는데, 당일 현장 상황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동의할 수 없는 얘기다.

심지어 이런 주장은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바로 반박당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께서 비화폰으로 제게 직접 전화했다”, “의결 정족수가 아직 다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고 하셨다”고 했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경찰 조사에서 계엄 선포 직전 윤석열 대통령을 직접 만나 국회와 더불어민주당사, MBC 등을 장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국군방첩사령부의 정치인 체포 시도에 협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증언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또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면권 행사, 외교권 행사와 같은 사법 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 “계엄 조치는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고, 오로지 국회의 해제 요구만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게 사법부 판례와 헌법학계의 다수 의견”이라고도 했는데, 이 역시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1997년 전두환 노태우 등에 대한 재판에서 대법원은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 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진 경우 법원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 심사할 수 있다”고 했다. 대다수의 헌법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계엄 선포는 형사적 판단의 대상이라고 판단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거짓 주장을 거리낌없이 내놓고 있는 것은 ‘변론요지서’를 미리 공개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평가가 대다수다. 내란죄가 인정되느냐는 결국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에 해당되느냐로 볼 수 있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의 요건을 오판했을 수는 있겠지만, 국헌 문란의 목적은 없었다’고 주장하기 위한 ‘빌드업’을 진행 중인 상황 아니냐는 거다.
다루지 않을 수 없는 두 번째 대목은 ‘부정선거론’에 기댄 주장을 직접적으로 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는 내용을 말하겠다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시스템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보안점검 결과 부실이 확인됐으나 개선을 확인할 수 없어 국방부 장관에게 조사를 지시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이는 최근 극우 유튜브 등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계엄 선포를 정당화 하기 위해 반복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는 내용’이라는 전제를 붙였지만, 이미 이 내용은 조선일보 등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고 이 때문에 2023년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다. 10월 13일 행안위에서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간에 오간 대화를 보면 당시 보안점검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를 알 수 있다.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임): “이번 보안점검에서 실제 상황하고 다른 조건에서 시뮬레이션이 시행된 거지요?”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김): “그건 맞습니다.”
임: “제가 선관위 설명을 유심히 보니까 사전에 보안의 핵심인 시스템 구성도 또 소스코드 또 접속 관리자 계정까지 제공을 했지요?”
김: “예, 그렇습니다.”
임: “그리고 사전 준비 기간 중에는 내부 보안정책을 예외 처리를 해 줬습니다. 그렇지요?”
김: “예, 그렇습니다.”
임: “그리고 국정원이 처음에 선관위 전산망에 침투를 시도했을 때는 관제실에서 탐지를 해서 차단을 했지요? 그렇지요? 확인을 했습니다.”
김: “예, 저희에게 고지를 하지 않고 해킹 툴을 설치했기 때문에 그게 보안관제시스템에 자동적으로 노출이 됩니다.”
임: “예, 그래서 차단이 되니까 이렇게 해서는 시스템을 점검할 수 없다고 해서 선관위가 차단을 풀어 준 거지요? 그렇지요?”
김: “예.”
임: “그러면 무슨 뜻이냐 하면 여러 가지 문제점의 전제가 잘못된 거지요. 왜냐하면 지금 보안시스템을 일단 다 풀어 놓고 시스템 점검이 이루어진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김: “예.”
임: “그러면 일단 이것은 집 구조하고 현관 비밀번호까지 다 알려 주고 주인 나가라고 한 다음에 도둑질이 가능하냐 이것을 알아본 것하고 사실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닙니까?”
김: “…”

더군다나 지난 총선의 경우 온갖 음모론에 의한 보수유권자층 일부의 사전투표에 대한 불신 때문에 여당의 주장으로 수개표를 병행하도록 한 바 있다. 그래서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은 “사전투표, 투표 제도에 대해 걱정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이번 선거부터 우리가 바꿨다. 모두 수개표를 병행한다”, “여러분, 걱정하지 말라. 우리가 반드시 걱정하지 않게 챙길 거다”라고 선거 유세에서 주장한 것이다.
이런 사실관계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굳이 자신의 ‘계엄 시나리오’에 선관위 공격을 포함시킨 것은 부정선거론을 스스로 믿은 영향도 있겠지만, 이러한 음모론을 총선 결과 부정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앞섰을 가능성도 있다.
여하튼 이 점을 대국민담화에서 다시 언급한 것은 결국 이 음모론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에게 ‘구조요청 신호’를 보낸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 메시지를 수신한 극우 유튜브 제작자들과 그 신봉자들은 ‘역시 우리 말이 맞았다’며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새로운 승리 시나리오를 써내려가며 윤석열 대통령을 더욱 더 적극 지지하는 상태가 될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정점에 이르러 현실과의 괴리가 극대화 되면, 그러니까 자신들만의 세계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미 부정선거를 증명하고 국회를 뒤엎은 상태여야 하는데 현실에선 오히려 구속이 되고 탄핵을 당하는 상황이 된다면, 어떤 일로 이어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즉, 윤석열 대통령의 12일 대국민담화는 나라를 분열시키고 혼란을 가중시켜서라도 거짓과 기만을 동원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의 표명에 다름아닌 것이었던 셈이다. 헌법재판소에 가서도 사소한 모든 것을 트집 잡으며 반칙이라고 주장하면서 ‘침대 축구’ 전략으로 일관할 게 틀림이 없다. 헌법 수호 의지가 전혀 없는 이런 인물이 과연 지도자의 자격이 있는가? ‘윤핵관’ 권성동 의원을 원내대표로 뽑은 후 탄핵은 안 된다는 당론을 유지하자고 하고, 대통령의 담화를 곱씹어보자는 소리나 하는 나경원 의원 같은 사람이 중진인 여당에 묻고 싶다. 과연 이대로가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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