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집권세력이 자기들끼리 장군 멍군을 거듭 외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당혹스럽다. 책임 있는 국정운영에는 별 관심이 없고 치고 받는 권력쟁투만 중요한 사안이 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통치의 방향에 대하여 중요 의견을 나눠야 할 독대가 다뤄지는 방식이 꼭 그렇다.
애초에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만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가령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를 ‘민주당 정부’라고 했다. 이 정권도 초창기엔 말로는 ‘국민의힘 정부’라고 했다. 가령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에 “정부를 인수하게 되면 윤석열의 행정부만이 아니라 국민의힘이라는 여당의 정부가 된다”고 했다. 전 정권이나 현 정권이나 비슷한 언급을 한 것은, 지도자 개인의 성향이나 영향력이 좌우하는 정부보다는 결사체로서의 정당이 책임지는 정부가 올바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여당이 존재하는 상태의 정부를 ‘국민의힘 정부’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이준석 대표 때도 그렇고 지금 한동훈 대표 체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독대마저 특별한 이벤트로 비춰질 정도로 비우호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번에 대통령실이 모처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요구를 수용해 독대 자리를 마련하기로 해 곧 이뤄질 전망이라지만, 앞서의 맥락 때문에 진정성보다는 정치적 노림수가 먼저 눈에 띄는 게 사실이다.

먼저 볼 것은 정치적 환경이다. 대통령실의 태도가 바뀐 것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이 커진 것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국회 안에서의 국정감사에선 거의 모든 상임위에서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다루고 있고, 국회 밖에서는 명태균 씨가 연일 뉴스 거리를 생산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통령실의 대응은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명태균 씨가 대선 과정에 수시로 사저를 드나 들었다는 주장을 한 데 대한 반박을 시도했다가 오히려 여러 반론에 직면한 이후 더욱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는 중이다. 다른 사안 같으면 가짜뉴스라고 호통을 치고 난리가 났을 텐데, 이러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
사실관계를 되짚는 방식의 대응이 어렵다면 정무적 대응이 필요하다. 김건희 여사의 사과 등 메시지가 나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법 논리에 민감한 사람들이 볼 때 사과는 곧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고, 잘못을 인정하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사과를 해야 한다면 법적 문제가 선결돼야 하는 것이다.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를 불기소 처분 할 거라는 얘기가 진작부터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과 등의 대응을 하려면 명품백 수수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의 법적인 ‘클리어’가 전제돼야 하는 거다.
한동훈 대표의 독대 요구에 꿈쩍도 않던 용산이 갑자기 이를 수용한 건 이러한 맥락에서 나름의 해법을 마련한 결과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검찰이 법적 문제를 불기소 처분을 통해 제거하고 나면 한동훈 대표와의 독대를 통해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한 정무적 대응에 합의를 이뤄내고 이를 통해 당정갈등을 봉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동훈 대표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해법은 사태를 해결하기는커녕 악화시킨다. 결과적으로 김건희 여사에게 법적 면죄부를 주는데 여당 대표가 들러리를 서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독대를 요구해 놓고 이제 와서 걷어찰 수도 없는 노릇이다. 친한계 일각에서 김건희 여사에 대한 기소 필요성을 거론하고 한동훈 대표가 동조한 건 이 때문이다.
물론 김건희 여사 기소는 독대 의제로 삼기에는 무리일 수 있다. 기소 여부는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시점도 장담할 수 없어 수용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동훈 대표는 ‘김건희 라인 정리’를 추가로 요구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인사에 관한 것은 명확하게 대통령의 수용 여부가 판가름 나는 대목이다. 독대를 통해 ‘김건희 라인’이 정리되면 한동훈 대표로서는 명확한 성과를 거두는 거고, 정리되지 않으면 대통령이 한동훈 대표의 제안을 걷어차고 김건희 여사를 또다시 감싸는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양측의 전선은 재보궐선거의 성적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놓고도 뜨거워지고 있다. 여의도 주변에선 대통령실이 굳이 독대의 시점을 재보궐선거 이후로 잡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혹시라도 부산 금정 등 보수가 유리한 승부처에서 패배한다면 또다시 한동훈 대표의 지도력에 의문을 표하는 방식으로 지도 체제를 흔드는 일이 벌어질 수 있고, 이러면 자연스럽게 독대 자리에서 한동훈 대표의 발언력도 감소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실린 것 아니겠느냐는 거다.
반면 한동훈 대표 입장에서 보면 재보궐선거가 패배로 평가될 경우 김건희 여사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대통령과 참모에 대한 국민적 문제의식이 성적에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로 위기를 돌파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런 점을 들어 대통령실 일부와 친윤계 쪽에선 한동훈 대표가 재보궐선거 성적이 좋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대통령실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중이라고 한다.

각자의 계산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때는 명분을 먼저 따지는 게 중요하다. 앞뒤 사정이 어쨌든 ‘김건희 라인’은 존재한다는 게 대다수 언론의 평가다. 지난 총선 직후 ‘박영선 총리-양정철 비서실장’ 구상을 둘러싸고 용산에서 혼란이 빚어진 게 대표적 사례다. 당시 이관섭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한 공식 라인은 검토한 바 없다고 했는데도 ‘김건희 라인’으로 분류되는 참모들이 부득불 권력 핵심이 이러한 구상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기자들에게 설명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보통 이런 일이 벌어지면 공식 라인과 다른 설명을 한 참모들에 대해 불이익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이관섭 비서실장 등이 용산을 떠나는 이례적인 일이 이어져 의구심이 커졌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영부인이 공식 체계를 어지럽히는 방식으로 국정에 개입하고 있는데 대통령과 공조직이 이를 감싸고 있다면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 주변의 누구든 이러한 의심의 근원을 확인하고 문제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다. 때문에 방식과 배후의 계산이 어떻든 한동훈 대표의 접근은 명분이 있다.
그런데 대통령실과 친윤계 인사들은 반발하고, 반격하고, 모른 척 하고, 이리저리 회피하면서 문제의 본질로부터 눈을 돌리려는 시도만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통치를 책임지고 있는 세력의 태도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책임한 것이다. 이런 태도로만 일관하니 보수 언론에서도 임기를 정상적으로 채울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게 아니겠나. 아직도 임기는 절반 이상이 남았는데 벌써 이런 꼴이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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