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자잘한 잽보다 묵직한 한 방이 중요한 때가 있다. 당정관계에서는 지금이 그런 때다. 24일 여당 지도부와 용산의 만찬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제 ‘독대’ 여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용산은 늘 그렇듯 불쾌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물밑에서 논의하면 될 일을 왜 ‘언론 플레이’ 하느냐는 거다. 한동훈 대표 측은 지도부가 언론에 독대 요구 사실을 흘린 일은 없다면서도 독대를 통해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에 대해선 이런저런 얘기를 이미 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독대 자리에서 한동훈 대표는 의정 갈등의 해법과 관련한 해결책을 건의할 생각이라고 한다. 23일 조선일보는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을 위해 정부의 유연한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을 전할 것”이라는 국민의힘 관계자 발언을 인용하며 한동훈 대표의 의도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 만찬이 현재 정부·여당이 처한 난맥을 바로잡을 계기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한동훈 대표가 이런 태도인 것은 이 자리가 마련된 맥락 때문이다. 애초 한동훈 대표를 포함한 여당 지도부와 대통령 간 만찬은 추석 연휴 이전에 이뤄졌어야 할 일이었다. 만찬이 취소된 것은 한동훈 대표가 의정 갈등의 해결사를 자처하면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느낀 것인지 단순히 불쾌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한동훈 대표가 구상한 추석 연휴 전 여야의정 협의체 가동은 정부의 뜨듯미지근한 태도와 의료계의 비협조 속에 성사되지 못했다. 24일은 한동훈 대표의 시도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는 분위기가 될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용산으로서는 대통령 중심의 ‘의료개혁’ 추진 정당성을 강변하면서 여당의 우위에 서기에 좋은 타이밍인 것이다. 한국일보도 22일 “대통령실은 추석 연휴기간 의료 대란 없이 ‘선방했다’는 평가를 당과 공유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정면 돌파' 기조를 고집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라고 보도했다. ‘의료개혁이 잘 되고 있는데 왜 그러느냐’는 식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인 거다.
이러니 한동훈 대표 입장에선 의정 갈등의 해결사를 자처한 정당성을 확인하려는 시도를 할 수밖에 없고 그게 독대 요구로 이어지고 있는 셈인데, 국민 입장에선 피곤하고 황당한 일이다. 당정이 머리를 모아 해결책을 마련해도 모자랄 판에 서로 자기가 잘했다는 정당성 확보를 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모양새만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용산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뭐라도 언론에 내놓기로 한 게 아닌가 싶은 보도도 있다. TV조선은 22일 이용 전 의원과 장예찬 전 최고위원의 용산 입성이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TV조선은 두 사람이 한동훈 대표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많이 해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대통령실의 이같은 결정엔 두 사람에 대한 당내 부정적 여론과 계파갈등 확산에 대한 우려까지 담긴 게 아니냔 관측이 나옵니다”라고 했는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 간의 신경전에 비추어 보면 ‘우리 입장만 강변하는 게 아니다. 우리도 양보할 것은 양보했다’고 하는 용산의 의중이 실린 보도가 아닌가 하는 추정이 나올 수도 있는 보도이다.
그런데 이게 그런 것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가령 장예찬 전 최고위원이 지난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것에 대해서는 여당 입장에서 보면 비판할 만한 요소가 없지 않다. 당의 방침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인사를 총선 대패 이후 대통령실이 품는 그림은 당정관계를 상정하지 않더라도 여러 뒷말과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는 문제다. 특히 최근 김건희 여사의 ‘공천개입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선, 의혹의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더 부담스러운 이슈가 될 수 있다. 지난 3월 20일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았다가 과거 발언으로 공천이 취소된 장예찬씨는 8차례나 자신이 ‘윤 대통령의 1번 참모’임을 강조하며 무소속 출마했다. 무소속으로 여권 표를 나누면 의석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놀랍게도 윤 대통령이 장씨의 무소속 출마를 권했다는 설이 돈다. 이에 대해 장씨는 잘라서 부인하지 않으며 뭔가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고 대통령실도 아무 반응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건희 여사의 ‘공천개입 의혹’에 대해선 국민의힘 인사 대부분이 공천이 실제 이뤄지지 않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얘기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보도되는 상황 자체는 김건희 여사와 용산의 잘못이 크다는 인식 역시 당내에서 커지고 있다고 한다. 한동훈 대표가 독대 자리에서 이런 문제제기도 할 수 있을까? 대개의 언론은 ‘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인 반면, 조선일보는 “한 대표가 이미 언론 인터뷰 등에서 사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만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한동훈 대표 측 인사의 발언을 전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23일 기사에서 최근 국민의힘 지지율 하락 추세 등 현상에 대해 “한 대표가 대통령실에 할 말을 하는 듯하면서도, 갈등을 피하려는 애매한 리더십 탓에 원내 설득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무성하다”고 지적했다. 애초 국민의힘 지지층은 용산의 변화를 이끌어내거나 그게 안 되면 명확히 선을 긋는 수단으로 한동훈 대표를 선택했다. 그런데 거의 두 달째 여당 뉴스는 대통령실과 자잘한 수준의 신경전을 이어가는 양상을 되풀이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지금 상태라면 ‘독대’ 성사 여부도 그런 정도의 얘기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묵직한 한 방’이라는 건 꼭 한동훈 대표가 용산을 한 대 때려야만 되는 건 아니다. 다음의 질문에 속 시원한 답이 빠르게 나오느냐가 관건이다. 첫째, 용산은 한동훈 대표마저 진압하면서 의료대란 상황을 이대로 계속 끌고 갈 것인가? 둘째, 한동훈 대표는 용산으로부터 계속 무시당하며 여당 대표 한 번 해본 것으로 만족하고 정치적 커리어를 끝낼 것인가? 셋째, 그 결과 집권 세력은 배우자의 숱한 의혹을 감싸기만 하는 대통령을 이대로 내버려 둔 채 정치적 파산을 맞이할 것인가? 쓰고 보니, 한 번의 ‘독대’로 풀릴 문제가 결코 아닌데 그것마저 쉽게 합의하지 못하는 집권세력의 태도가 이미 답이 되고 있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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