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광주 아파트 외벽붕괴 사고와 관련해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유예로 책임을 피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때 시행됐더라도 원청인 현대산업개발에 책임을 온전히 물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 발생 직전까지 주요 보수·경제지는 중대재해처벌법 추가 완화를 주장하며 정부 비판에 열을 올렸다. '산업현장 아우성', '반기업 폭주' 등 건설업계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와 사설이 이어져왔다.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신축 공사 현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11일 오후 3시 46분경, 광주 서구 화정동에서 공사 중이던 현대 아이파크 아파트 외벽이 38층부터 23층까지 붕괴돼 하청업체 노동자 6명이 실종됐다. 사고 원인으로 거푸집 붕괴와 콘크리트 강도 문제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거론되고 있다. 추운 날씨에는 콘크리트가 굳는 속도가 더딘데, 입주 일정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콘크리트 타설을 진행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있을 수 없는 참사'라는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사고를 둘러싼 또 하나의 쟁점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다. 시공사 HDC 현대산업개발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유예로 법 적용을 피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월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법 시행이 1년 유예되면서 오는 27일부터 적용되기 때문이다.

법이 제때 시행됐다고 해도 중대재해처벌법이 후퇴한 까닭에 원청인 HDC 현대산업개발에 책임을 묻기 어려웠을 것이란 지적이 노동계에서 나온다. 법 제정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원청 기업의 책임을 강화해달라 요구했지만 정부와 국회를 거치면서 경영책임자 처벌 수위는 낮아지고 원청에 대한 책임은 모호해졌다.

그러나 참사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몇몇 언론은 건설업계 입장에 맞춰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추가적인 완화를 촉구했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추가 보완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자 성토에 가까운 언론의 비난이 이어졌다.

한국경제는 지난 8일 사설 <"중대재해법 보완없다" 현장 아우성 귀막은 고용부 장관>에서 "산업현장의 공포가 극에 달하는데도 주무장관은 '더이상 내놓을 게 없다'고 손사래 친 것"이라며 "시행령 보완과 같은 괜한 기대는 하지 말고, '시범 케이스'에나 걸리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린다"고 했다.

한국경제는 "중대재해법과 관련한 기업들의 걱정이 얼마나 태산인지 안 장관이 모를 리 없다"며 "법 시행으로 중대재해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올해 형사처벌 대상이 될 경영자도 수십 명에 달할 전망이다. 이들이 안전보건의무를 다했는지, 구속기소될지, 법원 판단은 어떨지 관심 쏟다보면 기업경영에 전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계일보는 지난 10일 사설 <산업현장 아우성인데 "중대재해법 보완 없다"는 정부>에서 "임기 말에도 문재인 정부의 반기업 폭주가 멈출 줄 모른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관련해 기업들의 걱정이 태산인데도 주무장관은 들은 척도 않는다"고 썼다.

세계일보는 "외려 안 장관은 지난해 말 발생한 한국전력 협력업체 근로자의 감전사망사고를 언급하며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으름장까지 놨다"면서 "얼마 전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양형기준을 높이겠다'고 했다. 마치 기업들에 불평·불만은 그만하고 시행 후 '본보기'에나 걸리지 말라고 겁박하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1월 8일 한국경제, 1월 10일 세계일보 사설 갈무리

광주 사고가 발생 당일 정진우 사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동아일보 시론 <처벌 중심 중대재해법으론 안전 확보 어렵다>에서 "법 준수의 전제조건인 예측 가능성과 준수 가능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엄벌로 기업을 겁박하기만 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기업이 안전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처벌 회피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대응하게 되는 것"이라고 썼다.

정 교수는 "정부가 다짜고짜 몰아붙이니, 기업은 처벌 회피를 위해 형식적으로 구축하는 데 급급한 모양새"라며 "정부에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열을 올리다 보니, 기업은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수립할 여유가 없다면서 산업안전보건법 등 예방법에 대해선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흡사 학습 역량이 부족한 자녀에게 여건은 조성해 주지 않으면서 당장 좋은 성적을 못 내면 몽둥이찜질을 하겠다고 겁주는 부모와 매한가지"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2022년 새해 전후로 중대재해법 비판에 집중했다. <[발언대] 기업가 정신 위축시키는 중대재해법 재고해야>(2021.12.22), <"중대재해법, 형사처벌보다 경제 패널티를">(2021.12.27) 등의 보도를 시작으로 지난해 12월 31일과 올해 1월 3일엔 [산업계 흔드는 중대재해법] 연재를 내놨다.

관련 기사의 제목은 <외국기업의 52% 처벌땐 사업축소">, <외국계기업 CEO들 “자기가 통제 못할 일까지 책임… 누가 한국 오겠나”>, <안전사고 나면… 美 과태료 830만원, 한국은 징역 5년>, <한국GM이 카젬 사장 후임자 못구하는 까닭은?>(2021.12.31), <사고 책임질 ‘빨간줄 임원’까지 만들었다… 건설사 중대재해법 초비상>, <기업 45% “중대재해법이 고용에 걸림돌”>(2022.1.3) 등이다. 이후에도 <[만물상] '빨간 줄 임원' 급구>(2022.1.4),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됐다면, 작년 산재사망 190곳이 수사 대상>(2022.1.11), <건설·철강사 신년사, 안전을 외칠 수밖에 없었던 까닭>(2022.1.11) 등의 보도가 이뤄졌다.

조선일보가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이어 온 중대재해처벌법 비판 기사 갈무리

한겨레는 13일 사설 <반년 만에 또 붕괴 참사, 이런 회사에 공사 맡겨도 되나>에서 "27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의 강화 필요성도 거듭 확인된다. 입법 과정에서 경영책임자의 처벌 수위가 무뎌지고 원청 기업의 책임도 빠져나갈 구멍을 열어놨다"면서 "그런데도 재계와 보수언론들은 여전히 과도한 법이라고 주장한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이번 사고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온다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안중에도 없다고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질타했다.

한편, HDC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6월 광주 서구 학동 재개발지구 철거 현장 붕고사고의 원청 업체이기도 하다. 공사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져 시내버스를 덮치면서 승객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러나 당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이들 9명 중 8명은 모두 하도급업체 관리자나 재하도급업체 대표였다. HDC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현장소장 1명만이 기소됐다.

HDC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2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하도급법 위반' 행위로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하청업체에 대금 지연 이자를 주지 않거나 계약서를 늦게 준 사실이 드러났다.

HDC 현대산업개발은 7개월만에 대형 참사가 또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한 모양새다. 유병규 HDC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는 12일 사과문을 내어 "있을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같은 날 HDC 현대산업개발은 "서둘러 공사했다는 일부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전문가들 지적을 반박한 것이다. HDC 현대산업개발은 공사를 무리하게 단축할 필요가 없는 현장이었고, 주말에는 마감공사 위주로 안전하게 공사를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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