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독서 낭독모임에 참여했었다. 각자 일주일 동안 읽은 책 중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과 좋았던 문장 등을 내용과 함께 이야기하는 모임이었다. 내가 가지고 갔던 책은 구병모의 이었다.실험공동주택에 입주한 주민들의 이야기였다. 아파트에 입주하는 조건은 자녀를 셋 갖는 것으로,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것에 대한 정부의 실험적 대책으로 세워진 아파트였다. 열두 세대에 네 세대가 먼저 입주하였다. 책에선 여성의 돌봄 노동의 문제와 공동육아의 현실적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책을 읽는 내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나는 여자이고 생리를 한다. 한 달에 한 번, 생리하며 일주일 동안 출혈이 있다. 사흘 동안은 쏟아진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출혈이 있고, 이후 출혈은 점점 줄어들어 칠 일째 되는 날 출혈은 멈추고 생리가 끝난다. 생리가 시작되는 첫날부터 삼 일째 되는 날까지 생리대는 하루에 네 개에서 여섯 개까지 필요하다.생리대는 보통 열 개에서 열여섯 개를 한 묶음으로 묶어서 판매하며 가격은 오천 원 후반부터 시작한다. 생리 기간에 사용되는 생리대는 열 개를 한 묶음으로 하는 상품 두 개가 필요하다. 면생리대를 같이 사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대이다. 민간인이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관광하는 시대가 열렸다. 만화에서, 소설에서, 영화에서만 보았던 꿈 같은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어쩌면 우린 곧 지구와 환경 조건이 가장 비슷한 행성을 찾아 이주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린 지구가 아닌 행성에 미래 우주적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하고, 도시를 만들고, 국가를 건립하여 모든 시스템이 완벽하게 제어 가능한 환경에서 살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초미세 먼지도, 오존도 걱정할 필요 없이 최상의 공기 질을 맛보며 안락하고 완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2021년 9월 9일이면 반려견 순순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8년이 되는 날이다. 순순이는 18년을 우리와 함께하고 별이 되었다.순순이를 처음 만난 건 강의가 끝나고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가족을 놓쳤는지 차도로 내려와 버스 앞에서 전력을 다해 뛰고 있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버스에서 뛰어내렸다. 잠깐 사이 개가 사라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손짓해서 불렀더니 도망갔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디서 찾아야 하나 고민하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개 한 마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요즘 부캐(부 캐릭터) 하나쯤은 다 있잖아. 본캐 외에 평소 나의 모습이 아닌 다른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 다른 생활을 경험하고 즐기는 것이 유행이다. 본캐는 본래의 캐릭터를 줄임말로 자신의 본래 모습을 말한다. 원래 부캐는 게임에서 현실세계에선 하지 못하는 세계를 경험하고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를 말한다.부캐를 게임에서 현실 세계로 끌고 나온 것은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이었다. 유재석은 프로그램 콘셉트에 맞게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내 새로운 경험을 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부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이미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이었다. 예술 분야 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거론되는 집단이 있었다. 예술가를 위한 집단이지만 예술가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 집단에 관한 이야기였다.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면서 특수를 누리는 업종 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렵고 힘들다고 한다.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이제 막 예술 분야에 뛰어들어 작품 발표를 위해 애쓰는 예술가는 활동할 기회도 적지만-없다고 보면 된다- 지원도 적다. 문학, 음악, 미술 분야도 생계가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파트 경로당 회장 선거에 관한 이야기였다. 현재 회장인 김의 임기가 몇 달 남지 않은 상태였고 차기 회장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김이 회장으로 있는 경로당은 지역에서도 규모가 좀 있는 곳으로 회원 수가 80명쯤 되었다. 자격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으로 회비를 낸 사람이면 누구나 경로당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한 달 회비라고 해봤자 분식집 백반 가격 정도로 회비라는 명분만 갖춘 정도였다. 회비는 경로당 운영비로 사용되었지만 겨우 한 달 전기요금을 낼 수 있는 정도의 금액에 지나지 않았다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7월, 덥고 습한 날씨가 지속되는 여름이다. 정수리에 꽂히는 햇살이 아프고, 살갗에 닿는 햇빛이 따가운 계절이다. 건널목 앞에 설치된 그늘막의 고마움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달력을 보니 초복이 며칠 남지 않았다. 초복, 첫 번째 복으로 여름의 시작을 의미한다. 초복은 작은 더위인 소서와 큰 더위인 대서 사이에 있으며 이때부터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절정의 더위에 장마까지 겹치면 불쾌지수가 급상승하게 된다. 별일 아닌 일에도 불쾌하고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진다. 찐득한 바람이 목에, 팔에, 다리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며칠 전 흥미로운 칼럼을 읽었다. 문장은 깔끔하고, 전달하는 메시지도 명확했다. 칼럼에서 필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은 ‘인간은 나를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인류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였다. 인간이 만들었으므로 우리는 인간을 위해 살 것이다. 인간이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역사는 바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칼럼은 오랫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겁내지 말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확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두렵고 무서웠다. 자신은 선도 악도 아니며 인간을 창조주로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한글은 익히기 쉬워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으므로 글을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문맹률 1% 미만의 나라이다. 그런데 실질적인 성인 문해율은 OECD 국가 중 하위권이다. 문장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해율이 75%에 이른다고 한다.실제로 주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읽을 수는 있지만, 단어의 뜻, 문장의 내용 의미,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들-사람들-이 많다. 읽을 수 있으나 단어의 뜻을, 문장을 독해하지 못하는 십 대, 이십 대, 삼십 대가 생각보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10년 전까지 이모는 S 여대 근처에서 하숙을 쳤다. 전국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이 이모의 하숙집에 살았다. S 여대를 다니는 여대생도 있었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도 있었고, 지방에서 올라온 회사원도 있었고, 일용직 노동자도 있었고, 취업 준비생도 있었다. 이모의 하숙집에 사는 사람들은 하숙비가 다른 하숙집보다 싸기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며 살았다.대학교 근방을 중심으로 원룸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대학교 학생들과 젊은 사람들, 돈이 있는 사람들은 깨끗하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원룸을 선호했다. 이모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는 즐겁고, 어른은 행복하고, 부부는 사랑하고, 스승은 은혜롭다. 우리는 자주 가족과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기 때문에 5월은 가장 가까워 소원할 수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잊지 않도록 되새긴다.내 어린 시절, 어린이날을 생각하면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이 기억난다. 어린이날 선물은 대부분 스케치북과 크레파스였다. 특별히 미술에 관심이 있거나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닌데 어린이날이 되면 미술도구를 선물 받았다. 아마도 별 고민 없이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선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2019년 여름, 연극 한 편을 보았다. 으로 원작은 레바논 출신의 캐나다 작가 겸 연출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 이다. 한 여인을 통해 전쟁의 비극적 서사를 섬세하게 직조하고 있다. 잔상이 오래 남았던 연극이었다. 걷다가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고, 숨 쉬는 게 아프네, 라고 느끼게 만들었던 가슴 먹먹한 연극이었다.극은 나왈의 유언장이 공증인에 의해 쌍둥이 남매에게 전달되면서 시작된다. 유언은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형을 찾아 편지를 전하라는 것이다. 편지가 전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죽은 아들을 안고 울부짖는 아버지의 사진이었다. 아버지 품에 안겨 있는 아들은 어린 소년이었다. 소년은 경찰이 발포한 실탄을 맞고 사망했다. 미얀마 시민들은 참혹한 이날을 ‘피의 일요일’이라고 불렀다. 충격적인 사실은 무고한 국민을 향해 발포한 자들이 나라와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군경이라는 것이다. 평화로워야 할 주말의 한낮, 군인이 국민을 대상으로 발포하여 114명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비인권적이고 비인도적인 행위와 폭력이 일말의 가책도 없이 이루어진 날이며, 아직도 자행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이며 전 세계를 통틀어 4위다. 2018년 기준 10만 명 중 26.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인 사망원인 5위는 자살이다. 암, 심장 질환 등과 같이 자살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망원인이 되었다. 신문을 보면 자살에 관한 기사가 하루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일가족 자살, 모녀의 자살, 모자의 자살, 80대 노인의 자살, 여고생의 자살, 가수 D의 자살, 배우 O의 자살, 기업인 L의 자살, 작가 A의 자살. 하루도 빠짐없이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2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3월 2일, 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이 터졌다. 수사 대상에 오른 LH 직원 13명이 직위 해제되었다는 보도와 함께 그들이 저지른 위법 행위가 밝혀졌다. LH 직원이 공동 매입한 땅을 찾아내고, 땅 주인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는 과정에서 드러난 행태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씁쓸하다 못해 허탈하게 만들었다. 양파껍질을 까듯 까면 깔수록 또 다른 비리가 꼬리를 물고 나오는 모습은 점입가경이다. 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을 두고 장관이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그럼 그렇지, 팔은 안으로 굽지, 라는 마음에 수사 시작하기도 전에 정해진 답이 있는 것 같아 맥이 빠졌다.“직원들이 개발 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건 아닌 것 같다. 신도시 개발이 안 될 거로 알고 샀는데, 갑자기 신도시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연일 학교 폭력 문제로 시끄럽다. 이다영, 이재영 쌍둥이 배구선수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사회 전반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배구계에 이어 야구, 연예계까지 학교 폭력에 관한 폭로와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초등, 중등, 고등학교에 재학 시절, 동급생과 후배에게 행한 폭력 행위가 십 년이 지난 지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 실재했으며 진실이라는 사실이 더 놀랍다. 결국 배구계 쌍둥이 자매는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당했으며, 모든 국제대회에 무기한 국가대표 선수 선발에서 제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대파 한 단에 사천, 구백, 팔십, 원, 이라, 고, 요? 파를 사면서 가격 때문에 망설인 적은 처음이었다. 마트 직원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너무 많이 올랐죠?누군가 SNS에 대파 가격이 너무 올라 사지 못하고 왔다는 말을 듣고 뭐, 얼마나 올랐기에 했는데 이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올라 있었다. 한 줌밖에 안 되는 대파 한 단이 사천구백팔십 원이라니. 대파를 들고 생각했다. 파가 꼭 필요한가. 이렇게 비싼데. 일단 보류하기로 하고 파를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천천히 카트를 밀며 마트를 돌았다. 달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여름이었다. 더웠다. 숨을 쉬고 있지만 숨이 턱턱 막히는 살인적인 더위가 일주일이 넘게 이어지고 있었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피로감과 짜증이 아파트 층층이 쌓여 금방이라도 지글지글 타오를 것 같았다. 선풍기와 에어컨을 틀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날이 연속되었다. 기억하기로는 에어컨도 마음대로 켤 수 없는 사정이었다. 에어컨을 켰다가 전기세 폭탄을 맞았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뉴스가 되었다. 강가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밤을 새우든가, 창문을 열어놓은 채 후덥지근한 바람을 뱉어내는 선풍기에 의존해 낮과 밤을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어쩌다 2021년 신축년을 맞았다. 연말 같지 않은 연말을 보내고, 새해 같지 않은 새해를 맞았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타종행사가 모두 취소되었다. 그래도 2020년에 일어난 모든 나쁜 일과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로 종은 쳐주기를 바랐는데 ‘제야의 종’이 멈춘 채 울리지 않았다. 1월 1일 새해 아침에 눈을 떴지만 2020년의 때묻은 일상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었다. 2021년 1월 1일이 아니라 2020년 12월 32일 같은 생각이 들었다.활기차고 분주하지 않지만 그래도 해가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