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어쩌다 2021년 신축년을 맞았다. 연말 같지 않은 연말을 보내고, 새해 같지 않은 새해를 맞았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타종행사가 모두 취소되었다. 그래도 2020년에 일어난 모든 나쁜 일과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로 종은 쳐주기를 바랐는데 ‘제야의 종’이 멈춘 채 울리지 않았다. 1월 1일 새해 아침에 눈을 떴지만 2020년의 때묻은 일상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었다. 2021년 1월 1일이 아니라 2020년 12월 32일 같은 생각이 들었다.

활기차고 분주하지 않지만 그래도 해가 바뀌어 새해가 되었으니까 신년 계획은 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첩을 꺼내 책상에 앉았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있는 일련의 비밀스럽고, 고귀한 의식 중 하나이다. 굳은 결심으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 보겠다는 의지를 수첩에 적었다. 시작은 언제나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결심이었기 때문에 원고지 분량으로 계산해 하루에 글을 얼마나 쓸 것인지 정하고 수첩에 표시했다. 예전 같았으면 첫 번째 목표로 정한 공모전까지 세세하게 계획을 세웠겠지만 지금은 그런 헛수고는 하지 않는다. 재작년, 작년까지만 해도 있었던 공모전이 없어지는 일은 부지기수이고, 내 생활도 글만 쓰고 있을 정도로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신축년 새해 첫날인 1일 강원 인제군 인제읍 기룡산에서 바라본 태양이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다. [인제군청 제공=연합뉴스]

내가 계획한다고 해서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2020년이다. 코로나는 2020년 계획에 없었다. 누구도 코로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바이러스가 세상을, 사람들의 삶을 잠식시키는 일은 만화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만화에서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이 현실이 된다고 해도 내가 사는 동안에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이기적이 생각이었다고 반성-했다. 그런데 일어났다. 파괴력과 전파력은 세계를 순식간에 삼켜버린 정도로 강력했고, 여파는 아이들 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신입사원 모집이 취소되어 첫 직장에 출근해 보지도 못하고 백수가 된 사람도 있었고, 겨우 마련한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자영업자도 많았다. 그나마 직장은 잃은 것은 불행 중 아주 작은 불행이다. 작년 한 해 생각지도 못한 고통을 겪은 사람도 있다. 느닷없이 가족을 잃은 것도 허망한데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모두의 생활이 불안정하고, 우울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직하여 새로 다니기로 한 직장이 코로나 단계 격상으로 인해 출근 날짜가 미뤄졌다. 1월부터 시작하기로 했던 일이 중순으로 미뤄졌다. 중순에 시작하자는 말끝에 단계가 더 격상되거나 지금 상태가 유지된다면 말일이나 돼야 일을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라고 말을 흐렸다. 물론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기다리고 버틸 수 있는 여유가 조금이지만 있다. 정부에서 지원한 재난지원금이 기쁘게도 아직 남아 있다. 다행한 일이다.

소설을 쓰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은 대부분 투잡을 하고 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을 하나씩 더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도 2020년은 버티기 힘든 해였을 것이다. 안부를 묻기 위해 통화를 하다 보면 그냥 어떻게 살아, 아직 굶어 죽지는 않았어, 하며 웃었다. 그래도 이들은 그나마 낫다. 4인 가족의 외벌이 가장이라면, 한부모가정의 가장이라면, 조손가족의 가장이라면, 독거노인이라면 2020년은 죽을 만큼 힘든 한 해였을 수 있다.

거리두기 강화로 썰렁한 거리(연합뉴스 자료사진)

2020년만큼 다사다난한 해도 없었다. IMF 때도 버텼는데, 지금이 더 버티기 힘드네요,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힘듦’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살아남기 위해서 각개전투 중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죽을힘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다시 삶을 복구하기 위해 재정비하고, 이웃을 둘러보고, 사회에 보탬이 되려고 한다. 우리는 어려운 시기마다 언제나 그렇게 해 왔다.

2021년도 2020년과 같이 만만치 않은 한 해가 되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참 다행인 일은 2020년을 경험했고, 견뎠고, 지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언할 수 있다. 어쩌다 2021년을 맞았지만 기필코 행복한 한 해가 될 수 있다. 2021년은 분명 굉장히 빠르게 나아지고 회복되며,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 내년 이맘때는 반드시 5인 이상 모여 앉아 맛있는 음식 나눠 먹으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그래서 미리 감사하기로 했다. 이렇게 소중한, 평온한 일상을 되찾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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