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2021년 9월 9일이면 반려견 순순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8년이 되는 날이다. 순순이는 18년을 우리와 함께하고 별이 되었다.

순순이를 처음 만난 건 강의가 끝나고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가족을 놓쳤는지 차도로 내려와 버스 앞에서 전력을 다해 뛰고 있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버스에서 뛰어내렸다. 잠깐 사이 개가 사라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손짓해서 불렀더니 도망갔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디서 찾아야 하나 고민하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개 한 마리가 멀리서 뛰어오는 게 보였다.

친구들은 모두 개를 키우는 애견인이었고, 나는 좋아하긴 하지만 어릴 때 이후로 키워본 적 없었기 때문에 멀찍이 떨어져 친구들이 개를 조심스럽게 부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개가 친구들을 다 피하고 내 품에 안겼고, 다른 사람들이 손도 대지 못하게 으르렁거렸다. 결국 가족이 나타날 때까지 내가 보호하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도, 몇 달이 지나도 가족은 나타나지 않았고, 개는 순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집에서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

열 살이 된 순순(좌) 귀도 들리지 않고 눈도 보이지 않던 순순, 베란다에 혼자 앉아 있던 모습(우)

순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와 가족이 되어 살기 시작할 무렵 오빠가 결혼해 조카가 태어났고, 오빠 부부는 맞벌이였기 때문에 조카는 어머니와 아직 미혼이었던 언니와 내가 키우게 되었다. 조카는 자연스럽게 순순이와 같이 컸다. 순순이는 낯가림도 심하고, 예민하고, 경계심도 많아 사나워질 때가 있는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카는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듯했다. 꼬리를 잡아당겨도 참았고, 위험한 곳에 가지 못하게 했으며, 같이 놀아주었다.

조카는 나이가 들어 커가고, 순순이는 나이가 들어 늙어갔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고, 신경에 이상이 오고, 먹지 못하게 되었고, 여러 차례 수술과 입원 치료를 반복하며 늦은 밤 순순이를 안고 응급실로 뛰어간 것도 여러 번이었다.

나는 순순이를 보내고 오랫동안 몸도 마음도 아팠다. 순순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사후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담당자에게 문의를 했다. 누구에게든 죽음에는 절차가 있고, 사후 처리 방법이 있으며 그 과정을 통해 애도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런데 담당자가 십팔 년을 같이 산 순순이를, 동생과 같은, 딸과 같은 순순이를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배출하라고 했다.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그렇게 하나요? 어떻게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릴 수 있나요? 되물었지만 ‘그게 법’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답하는 담당자의 말은 상처가 되었다.

우리 순순이는 사용하다 망가져 버리는 물건이 아닌데, 쓰레기가 아닌데. 하지만 법은 우리 순순이를 냉장고, 텔레비전, 가구와 동등한 가치로 환산하여 계산하고 있었다. 생명은 있지만 존중은 받을 수 없는 대상으로 물건과 같이 취급되며, 물건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사용에 따라 수익에 따라 폐기 처분이 가능한 대상이었다. 동물이 해를 입은 일이 발생해도 손가락질 대상으로 끝나버리든가 가벼운 범죄로 인식하고 재물의 손괴로만 취급하기 때문에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동물, 물건 아닙니다"…법무부, 민법 개정안 입법예고 Ⓒ연합뉴스

7월 동물보호법 개정에 따라 민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이 입법 예고되었다. 인간 외 모든 것을 물건으로 환산하여 가치를 측정하는 인식에서 벗어나 동물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로 가는 첫걸음을 내딛게 되는 의미 깊은 조항이다.

이미 많은 나라가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고 법으로 정하고 있다. 오래전 최초로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고 규정한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의 나라도 민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민법에 명시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동물을 보호하고 인간과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 동물의 권리를 확대하는 법과 인간의 책임에 대한 다양한 법이 마련되고 강화되었다.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생명은 누구나 소중하다는 대명제를 잊지 않고,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권리가 인간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시작은 제한적이고 미약하지만 범위의 확대와 다양성이 동물의 시선과 기준에서 폭넓게 적용될 것으로 생각한다.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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