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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대파 값[주관적이고, 사적이고, 사소한 이야기] 설밑 치솟은 밥상 물가
김은희 | 승인 2021.02.10 16:42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대파 한 단에 사천, 구백, 팔십, 원, 이라, 고, 요? 파를 사면서 가격 때문에 망설인 적은 처음이었다. 마트 직원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너무 많이 올랐죠?

누군가 SNS에 대파 가격이 너무 올라 사지 못하고 왔다는 말을 듣고 뭐, 얼마나 올랐기에 했는데 이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올라 있었다. 한 줌밖에 안 되는 대파 한 단이 사천구백팔십 원이라니. 대파를 들고 생각했다. 파가 꼭 필요한가. 이렇게 비싼데. 일단 보류하기로 하고 파를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천천히 카트를 밀며 마트를 돌았다. 달걀 팔천구백 원, 애호박 한 개에 이천오백구십 원, 사과 열 개에 삼만오천 원, 배 한 개에 오천 원. 나는 가격표를 보고 눈만 끔뻑거렸다. 가격이 오르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항상 설밑에 밥상 물가가 오르지만 올라도 이렇게 오를 수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다만 설밑에 오르는 물가라고 여기기에는 가파른 상승세가 영 마음에 걸렸다. 

5일 오후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1월 소비자물가는 작년 동월 대비 0.6% 올랐지만, 농·축·수산물은 10.0% 급등했다. Ⓒ연합뉴스

성묘를 미리 다녀온 후이고, 5인 이상 집합 금지로 인해 설 연휴에 올 사람도 없어 가족끼리 먹을 음식만 할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부담되는 가격이었다. 가격이 부담스러운 것은 나뿐만은 아닌 듯싶었다.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도 사과를 집었다 놓았다, 배를 집었다 놓았다, 가격표를 다시 확인하고 몇 번을 망설이다 카트에 담았다. 그래도 설인데, 비싸도 어떻게 할 수 없지, 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LA갈비 두 근과 달걀, 사과와 버섯을 카트에 담고 다시 대파 판매대 앞에 섰다. 선뜻 파를 카트에 담지 못하고, 개리 허리보다 가늘어 보이는 대파 한 단을 집어 들고 마치 명품 가방을 사는 것처럼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 카트에 담았다. 

계산대에 달걀, 사과, 갈비 등을 올려놓았다. 옆 계산대에서 계산을 기다리는 사람들에 비해 계산대 위에 놓인 상품은 조촐했다. 계산원이 바코드를 찍을 때마다 가격이 차곡차곡 더해졌다. 십삼만 오천...원입니다. 필요한 식료품을 몇 개 추가했을 뿐인데 십만 원이 훌쩍 넘었다. 옆 계산대에서 계산하는 사람들을 보니 수십만 원이 넘을 것 같았다. 모두 설상에 필요한 식자재였다. 나는 계산이 끝난 식자재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십만 원이 넘는 장바구니라고 하기에는 가볍고 썰렁했다. 집에 돌아와 식자재를 정리하기 위해 장바구니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장바구니 밖으로 비죽 나온 대파가 보였다. 씁쓸한 웃음이 한숨처럼 나왔다. 파를 사면서 가격 때문에 굳이 대파가 필요한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인터넷 카페와 SNS를 보니 대파를 칠천 원에 샀다는 사람도 있었다. 파프리카 한 개에 오천 원이 넘는 지역도 있었고, 달걀 한 판에 만원이 넘는 지역도 있었다. 비싸도 더 사다 놓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은 염려로 바뀌었다. 단순히 설밑이라 물가가 오른다고 생각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고, 심상치 않았다. 설이 지난다고 가격이 큰 폭으로 내려갈 것 같지 않았다. 인터넷 카페 회원들은 장 보러 나갔다가 달걀과 대파 가격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왔다고 했다. 가격을 다시 확인하고 너무 놀라 주위를 살펴보았다고 했다. 다들 어머, 하며 대파를 다시 내려놓았다고 했다. 

5일 오후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1월 소비자물가는 작년 동월 대비 0.6% 올랐지만, 농·축·수산물은 10.0% 급등했다. Ⓒ연합뉴스

그래도 설이기 때문에 다들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설 장을 보고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물론 푸짐한 상차림은 생각도 하지 못한다. 설을 맞아 상을 차리지만 풍성한 설이 되지 못할 것 같다. 월급은 동결되었거나, 25% 이상 삭감되었는데 물가는 치솟고, 각종 세금은 인상되었다. 월급은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세금 상승은 서민의 사정과 상관없다. 

설이 즐겁지 않다. 홀쭉해진 지갑과 통장을 보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대파 한 단, 달걀 한 판 가격에 놀라 판매대 앞에서 망설이는 설이 될 줄은 몰랐다.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 명절,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지갑 걱정하지 않고 장을 보고, 푸짐하게 음식을 만들어 예전처럼 가족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먹을 수 있는 생활이 되었으면 할 뿐이다. 

대파를 씻고 시든 부분을 정리하며 잠시 엉뚱한 생각을 했다. 설이 지나고 정월대보름 달이 뜨면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까. 앞으로는 대파 가격에 놀라지 않는 강인한 심장을 가지게 해달라고 해야 할까. 앞으로 더 놀라는 일은 없게 해달라고 해야 할까. 앞으로 오르는 물가와 세금에 놀라지 않는 담담함을 지니게 해달라고 해야 할까.

대파를 잘라 냉장고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대파 너는, 내 생에 가장 비싼 대파가 될 거야. 다시 없을 유일한 대파. 

김은희  postboat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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