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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아낌없이 감사하고 사랑하라[주관적이고, 사적이고, 사소한 이야기] 5월은 사랑입니다
김은희 | 승인 2021.05.06 15:12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는 즐겁고, 어른은 행복하고, 부부는 사랑하고, 스승은 은혜롭다. 우리는 자주 가족과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기 때문에 5월은 가장 가까워 소원할 수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잊지 않도록 되새긴다.

내 어린 시절, 어린이날을 생각하면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이 기억난다. 어린이날 선물은 대부분 스케치북과 크레파스였다. 특별히 미술에 관심이 있거나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닌데 어린이날이 되면 미술도구를 선물 받았다. 아마도 별 고민 없이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선물이었기 때문이었겠지만 나는 그것만으도 충분히 행복했다.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이 아니었어도 아마 좋아했을 것이다. 그땐 선물을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선물을 받는 것 자체에 관심이 있었지, 그것이 무엇이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선물 받은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으로 그림대회에서 상을 여러 번 받았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나는 밝은 아이는 아니었고, 튼튼한 아이도 아니었다. 햇살이 드는 방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고, 동네 언니, 오빠가 독수리 오형제를 만들어 뛰어다니며 놀 때도 나는 뒤처져 겨우 따라다니는 깍두기였다. 규칙은 지키되 벌칙은 받지 않고, 술래에게 잡혀도 술래는 되지 않고 승패에 영향을 주지 않는 존재로 놀이에 참여했다. 자주 아팠기 때문에 오랫동안 밖에 나가 뛰어노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방에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나에게 스케치북과 크레파스가 있었고, 달리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이것이 쉽게 어린이날 선물을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로 결정하게끔 만든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어린이날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웠고, 선물을 등 뒤에 숨기고 들어오는 아버지가 좋았고, 머리맡에 선물을 놓아주는 어머니가 좋았다.

청소년기를 거쳐 대학에 가고, 졸업하여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게 되면서 선생님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처음 학원 강사로 일하게 되었을 때는 잠깐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또 나는 작가가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아이들에게 정이 없었다. 일은 하지만 아이들에게 관심도, 애정도 없었다. 아이들에게 애정이 없었기 때문에 쉽게 지치고, 문제가 생기면 아이들이 예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나를 따르고 신뢰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굉장히 오만한 생각을 하며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반성하게 되었다. 현재 있는 자리가 내 자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일도 즐겁게 할 수 있었고, 아이들도 예뻐 보이고 가르치는 게 즐거워졌다. 그때 만난 아이들이 이제 어른이 되어 군대에 가고, 선생님이 되고, 회사원이 되어 결혼도 하였다.

이젠 성인이 되었다고 밥을 사주러 오기도 하고, 차를 마시러 오기도 하는 제자를 보면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제자와 같이 나이 들어가는 게 좋다. 별 숨김없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이젠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친구 같기도 하고 동료 같기도 하다. 질곡의 연애사를 지켜보고, 취업에 실패하면서 겪은 좌절과 우울, 이를 이겨내고 사회인이 되기 위해 다시 피나게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때 힘들어하는 제자에게 나는 네가 무엇을 하든, 어떤 선택을 하든, 무엇이 되었든 너를 응원하고, 네 편이다, 라고 말해주었다.

나에게도 내 실패를 나보다 더 안타까워했던 선생님이 있었다. 공모전 최종심에서 매번 미끄러졌을 때 선생님은 너는 분하지도 않냐, 라며 한숨을 쉬었다. 매해 공모전에 당선된 학우가 있었고, 플래카드가 교문에 걸렸다. 나도 언젠가 저기에 내 이름을 걸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학원 강사를 하게 되면서 소설 쓰는 일을 쉬게 되었다. 그때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던 시기로 소설 쓰는 친구들을 멀리하고, 선생님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난 것으로 기억한다. 삼 년, 그 이상이었던 것으로.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새벽에 휴대전화기가 울렸다. 번호를 보니 선생님이었다.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이, 은희야, 살아 있네. 살아 있으니 됐다, 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새벽, 침대 끝에 앉아 날이 밝을 때까지 어둠을 응시했다. 며칠을 밤이 되어도 잠들지 못했다. 다시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게 그때였다. 선생님은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먼저 연락해주고, 불러내 밥을 사주는 사람이다. 고맙고, 또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데 말하지 못했다. 고맙습니다, 라고.

5월. 감사하다는 말, 사랑한다고 말해도 쑥스럽지 않고 민망하지 않은 달이다. 마음껏 감사하고, 사랑하고 행복해져도 되는 달이다. 나와 결혼해주어서, 내 아이가 되어주어서, 나를 낳아주어서, 나를 가르쳐주어서 고맙습니다, 라고.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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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postboat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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