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방송 심의 기능을 자율규제 영역으로 이전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자율규제를 관리·감독하는 행정기구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다만 관련 법 개정이 선행돼야 하는 만큼, 방통심의위 규제 축소, 위원 자격요건 강화 등 단계적 전환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는 23일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 회견장에서 <디지털 플랫폼 시대, 이용자 보호와 미디어 심의제도 개선> 세미나를 개최했다. 방통심의위 개편 방안을 주제 발표한 심영섭 경의사이버대 겸임교수는 표적 심의 수단으로 악용된 ‘공정성·객관성 조항’을 폐지해도 정치적 심의를 막을 수 없다며 최종적으로 방통심의위를 미디어심의위원회로 확대 개편해 ‘공동규제’ 모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공동규제는 자율규제와 행정규제를 결합한 것으로 방송심의를 자율규제기구로 이관하고, 방통심의위는 자율규제기구를 감독하는 역할을 맡는 것을 말한다. 방통심의위는 보완심의 등 최소한의 내용규제만 하게 된다. 미디어심의위는 방송뿐 아니라 OTT, 유튜브, 넷플릭스 등 디지털 콘텐츠 전반을 규제 대상에 포함한다.
심 교수는 “방통심의위가 일정 조건을 갖춘 방송사업자에게 자율심의지정사업자로 인증하고, 자체적인 심의가 불가능한 소규모 사업자는 업계 중심의 자율규제기구를 출범시키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 경우 방통심의위는 자율규제기구 및 자율심의지정사업자 인증·감독 업무와 자율규제 기구 남용 사례에 대한 보완심의, 이의신청에 대한 심의만 진행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심 교수는 현재 유명무실한 방통심의위 명예훼손조정부의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언론으로 등록한 사업자에 대한 분쟁조정 역할은 언론중재위원회가 맡고, 방통심의위 명예훼손조정부는 방송·콘텐츠와 관련해 사인 간 분쟁에 대해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심 교수는 현재 서울 본청에 설치된 명예훼손분쟁조정부를 권역별로 최소 3곳으로 확대하고 위원 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방통심의위를 현행 민간독립기구에서 행정기구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현재 방통심의위는 법적으로 민간독립기구로 규정돼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행정기구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가 방통심의위의 제재 결정을 집행하며 관련 행정소송의 당사자가 된다. 방통심의위의 중징계 남발은 방통위의 예산 전용이라는 문제를 야기했다.
심 교수는 “방통심의위가 행정기구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해 별도 법령에 따라 예산편성·규칙 제정 등 독립성을 보장받고, 제재조치도 직접 수행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처럼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국가직 공무원과 심의 업무를 전담하는 별정직군을 구분하는 방안도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에 앞서 통합미디어법 제정·언론중재법 개정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심 교수는 “당장 제도화가 어렵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자"면서 ▲방통심의위원 전문성 자격요건 부여 ▲방통심의위 개의정족수·의결정족수 명문화 ▲방통심의위원 취업심사대상 포함 ▲사무총장 공모 및 구성원 임명동의제 마련 등의 단계적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심 교수는 현행 심의 규정을 대폭 축소하고, 전수심의제에서 민원심의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심 교수는 “방통심의위 심의 제도는 전형적인 폐해규제로 문제가 발생하면 규정을 늘려왔다”며 “불필요한 조항을 대폭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추상적이거나 재량에 좌우될 수 있는 심의 규정은 대폭 축소하는 게 맞을 것”이라며 “자율규제를 두고 규제 폐지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실제로는 사업자 등에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심의제도는 표현 규제뿐만 아니라 표현에 대한 보호 기능을 함께 포괄하는 것”이라며 “유럽 디지털서비스법의 경우 위헌적 요소 등에 대한 비판을 적극 수용해 기본권 보호 관점에서 절차적 전환을 이뤘다고 평가받는다. 행정규제, 자율규제 모두 필요한데 불법 유해 정보에 대응하는 입법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되지 않도록 어떤 장치가 마련돼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함께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희경 공공미디어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방송사들이 자체 심의 규정을 만들고 방통심의위가 그 심의 규정을 승인하는 시스템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해당 시스템을 방통심의위가 사후 모니터링하고, 민원 처리와 보고서 발표 등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방송사 재허가 심사 가·감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김 수석위원은 “제시된 심의위원회의 조직 자체는 영국의 오프컴과 비슷한데, 오프컴과 비교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고민이 돼야 할 것”이라며 “지금의 예산으로는 독립성뿐 아니라 투명성도 제고할 수 없다. 또 일본의 경우 5년마다 전문가와 시민단체가 모여 시대에 뒤처진 심의규정 개선에 대한 보고서·가이드라인을 만든다.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방송 규정에 대한 개선을 조금씩 해나갈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방통심의위가 행정기구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해야, 자율심의 제도를 새로 만들거나 자율심의 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논리적 기반이 강화된다고 본다”면서 “다만 전제조건이 있다. 공정성에 대한 심의 규정 개선이 우선이다. 행정기구가 공정성 심의 규정까지 판단하는 것은 절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홍 교수는 “공정성에 대한 판단을 완벽히 자율심의기구에 넘겨야 한다”면서 자율심의기구는 관련해 개별사업자·사업자협회가 아닌 언론직능단체가 중심이 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OTT 규제와 관련해 “동일 시장으로서 동일한 기준을 갖고, 온라인 동영상 사업자까지도 심의 영역으로 포섭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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