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지난주 토요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12월 3일 밤에 일어난 불행한 사태가 11일 만에 일단락되었다. 이제 최장 180일 소요될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따라 대한민국이 새출발하게 될지 또는 일정 기간 계속해서 혼란이 이어질지 결정된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이 12월 3일 밤에 벌인 행위가 적절한 통치 행위 중 하나였는지 또는 내란죄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위법 행위는 있으나 탄핵 사유까지는 안 된다고 판단할지 결정한다. 그러나 결정이 어떻게 나오더라도 이미 깊게 베인 상처는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힘든 상흔을 남겼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 서울역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 서울역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상처와는 별도로 계엄령 발표는 아직도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다. 계엄이 무위로 끝난 후 윤 대통령의 담화를 통해 계엄령 발령 이유를 들을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 상식이 있는 시민이라면 담화 내용에 동의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 도대체 왜 이런 무모한 결정을 했을까. 네트워크 시대에 계엄이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계엄은 다원적 의사 결정 시스템을 부정하고 특정인의 결정만 수용하는 폐쇄적 시스템이다. 현대 사회에서 계엄이 국민적 동의를 얻는 경우는 국가 간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현재 전국적 계엄령이 실시되고 있는 나라는 러시아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뿐이다.  

정상 국가에서 계엄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계엄령을 통해서는 권력 수호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방적 정보 채널만 존재해야 한다. 이번 계엄사 포고령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포고령 4호 주요 조치를 보면 첫 번째는 ‘군 병력은 계엄사령관의 지휘 아래 공공질서 유지 임무를 수행한다’이고 두 번째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는 제한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첫 번째 조항은 계엄 상황에서 계엄사령관의 역할과 위상을 규정한 것이라서 큰 의미가 없고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조항이다. 계엄사령관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정보 채널이 단절될 수 있다는 것이다. 

12월 12일 MBC 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12월 12일 MBC 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이 포고령은 지난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비상계엄 전국 확대 직후 발표한 포고령과  유사하다.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이희성 육군 대장 명의로 발표된 포고령 10호에는 ‘모든 정치 활동을 중지하며 정치 목적의 옥내외 집회 및 시위를 일체 금한다.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은 사전 검열을 받아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전두환의 ‘사전 검열’이 윤석열의 ‘제한될 수 있다’로 다소 유연하게 바뀌었지만, 기본적으로는 같다. 즉 민주공화국 헌법의 기본 원리인 국민주권주의가 작동되지 못하도록 표현의 자유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12월 3일 계엄 포고령은 1980년 계엄 포고령의 주요 내용을 충실히 복사해 비상통치를 시행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1980년대와 2024년 사이에는 건너지 못할 간극이 있다. 1980년 당시 정보 채널로 명시된 언론 출판 등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허가 또는 신고가 필요한 공공 채널이었다.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큰 방송, 신문 등이 대표적이다. 이 미디어들은 국가 통제가 가능했고 통제 즉시 대부분 국민은 외부 소식과 단절될 수밖에 없다. 1980년 5월 광주가 고립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합법적 권력은 통제된 미디어를 통해 정권 장악에 유리한 뉴스를 지속적으로 생산 유통하고 이런 뉴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계엄령 위반, 심지어는 반국가 단체 결성 혐의로 체포 구속했다. 전두환 일당이 쿠데타를 ‘성공’시킬 수 있던 이유다. 

12월 5일 MBC 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12월 5일 MBC 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이번 계엄 주동자들도 이런 과정을 염두에 두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인터넷 서비스는 기존 미디어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했다. 국가가 허가권을 갖고 있는 공공 채널 등에 대해서는 포고령이 유효할지 모르겠지만 SNS와 같은 사적 미디어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이번 계엄이 실패로 끝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계엄령 발동 직후부터 시민들은 스마트폰으로 용산 대통령실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상황, 계엄군의 이동 경로, 군용 헬기의 국회 착륙 등을 촬영해 SNS에 올려 정보를 공유했다. 일부 유튜버들은 여의도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면서 반계엄령 여론을 만들었다. 

국민의 지지가 필요한 상황에서 ‘의도하지 않은’ 정보가 유통된다는 것은 계엄 당국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계엄군이 모든 통신을 원천 차단하면 SNS 등 인터넷 서비스가 불가능하겠지만,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에서 통신 자체를 차단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일반 상거래, 주식 외환 등 금융, 대국민 행정 서비스 등 일상의 모든 것들이 인터넷 통신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국가에 순식간에 혼란에 빠져버린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런 환경에서 계엄령을 발동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 안 된다. 이번 사태가 망상에 빠져 정상적 판단을 못 하는 일부 인사들의 무모한 극단적 선택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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