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영화 는 바비랜드에서 살아가는 바비의 하루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인형의 집을 옮겨 놓은 듯 핑크빛 건축물로 도배된 세상에서, 바비들은 여성들의 낙원을 이루며 행복과 기쁨만 존재하는 삶을 산다. 바비들은 인형 놀이를 재현하듯 연극적 행동 양식으로 움직이는데, 영화 초반엔 보이지 않는 손이 인형을 들어서 내려놓듯이 바비가 지붕에서 붕 떠올라 지상으로 내려오는 장면이 나온다. 의 이야기는 바로 이 ‘인형을 움직이는 손’을 찾아 떠나며 앞으로 나아간다. 더는 바비 인형으로 존재할 수 없게 만드는 변화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개봉 한 달이 넘었지만 는 뒤늦게라도 말을 꺼내보고 싶은 영화다. 일차적으론 흥행 기록 때문이다. 는 3주 전 천만 관객의 테이프를 끊었다. 천만 영화가 사회현상이라는 건 2000년대가 낳은 미신이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천만 영화가 탄생했고, 관람 시장 성장과 함께 정례화된 산업적 현상이었을 따름이다. 하지만 는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천만 고지에 오른 처음이자 유일한 한국 영화고, 2편과 3편이 연달아 깃발을 꽂았다. 한국 영화 전체가 가뭄에 허덕이고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걸그룹 피프티피프티와 소속사 어트랙트 간의 전속계약 효력정지 법정공방으로 치달은 피프티 사태엔 두 가지 맥락이 있다. 하나는 어트랙트와 피프티 멤버들 및 피프티 뒤에 있다고 지목된 외주 기획사 더기버스의 대립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 사태가 사회적 화제가 될 만큼 소란스럽게 반응을 증폭하는 여론의 동향이다. 전자가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로 초래되었다면 후자엔 케이팝 신 내부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사건 개요는 잘 알려진 대로다. 어트랙트는 외부 기획사 더기버스 측에 피프티 음악 제작을 맡겼는데, 피프티의 노래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래퍼 블랙넛이 2주 전 출연한 딩고 프리스타일 ‘킬링벌스’ 영상 재생 수가 370만을 넘었다. ‘킬링벌스’는 여러 가수가 출연해 자신의 노래를 라이브 메들리로 부르는 유튜브 콘텐츠다. 블랙넛은 200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 힙합 커뮤니티에 재치 있고 반사회적인 가사의 작업물을 올려 이름을 알린 후 데뷔한 래퍼다. 2015년 엠넷 에 출연하며 독특한 캐릭터로 유명세를 얻었다. 한동안 인기를 이어 가던 중 여성 래퍼 키디비를 가사와 공연을 통해 수차례 성적으로 모욕했고 2017년 키디비에게 고소당했
[미디어스=윤광은 칼럼]“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악동 뮤지션’의 이찬혁이 시즌10 무대에 찬조 출연하며 뱉은 이 한 마디 노래 가사는 한국 힙합을 꼬집는 유행어로 떠돌고 있다. 이 말에 동조하는 여론은 ‘국힙’을 놀리면서 “안 멋져”를 밈처럼 뱉고 있고, 이 말에 발끈한 래퍼들은 이찬혁에게 응수하는 랩을 앞다투어 쏟아 냈다. 고작 가사 한 마디가 반향을 일으킨 건 공감하는 사람이 많거나 아픈 곳을 찔린 사람이 많다는 뜻일 거다.사람들은 왜 저 말에 통쾌해한 걸까. 힙합이 ‘멋’이 없다는 건 무슨 뜻이고, 어떻게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오은영과 강형욱, 백종원은 요즘 가장 존경을 받는 저명인사일 것 같다. 달리 말하면, 2010년대 초반 멘토 열풍 이후 새롭게 멘토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다. 이전 시기 각광받던 멘토는 안철수, 김난도, 혜민이었다. 이들은 보편적 권위에 기반해 사회의 험난함과 맞닥뜨린 20대 청춘들에게 위안과 충고를 건넸다. 반면 오은영, 강형욱, 백종원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서 사람들에게 구체적 솔루션을 주는 존재다. 미디어에 출연해 문제를 겪는 의뢰인들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지도하며 스타가 되었다.이들은 서로 다른 시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디즈니 논란에선 두 가지가 이상하리만치 강조되고 있다. 하나는 영화의 흥행 추이가 마치 무언가에 대한 논거처럼 반복적으로 들먹여진다는 것이고, 하나는 영화의 만듦새가 무언가를 기각하는 논거처럼 도마에 오른다는 것이다. 상업 영화의 흥행과 만듦새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들이 현재 일어난 논란과 인과관계를 이루는 건 아니다. 인어공주 역할에 흑인배우 할리 베일리를 기용한 ‘정치적 올바름’이 소요 사태의 버튼을 눌렀는데, 이런 가치 지향적 연출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느냐로 그 내용의 타당함이 판명되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디즈니의 실사 영화가 원작을 ‘파괴’한다는 주장은 생각이 꼬리를 물게 한다. 각색은 원작을 다시 창작하는 것이다. 상상력과 재해석으로 수행되고 필연적으로 다시 쓰기와 고쳐 쓰기를 동반한다. 소설 원작을 ‘고증’에 입각해 시각화하는 것도 재현 매체를 바꾸는 각색의 묘미겠지만, 원작을 비틀고 전복하는 것은 각색의 특권이요 각색이 주는 쾌감이다. 각색을 수행하는 창작자들은 원작의 가치관이 오늘날에도 전시하기에 유효한지 판단할 책임도 떠안는다. 그럼에도 각색 때문에 원작이 ‘파괴’되었다고까지 할 때,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몇 가지 퀴즈로 글을 시작해 보자. 전 세계 솔로 가수 중 유튜브 영상이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재생된 인물은 누구일까?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가장 많이 솔로 음원이 재생된 케이팝 가수는 누구일까? 미국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와 MTV 유럽 뮤직 어워즈에서 최초로 수상한 케이팝 솔로 뮤지션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인물 중, 그리고 케이팝 가수 중 가장 많은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한 사람은? 이 모든 스펙터클한 질문의 답은 동일하다. 단 한 사람이 이 모든 기네스북 기록을 가지고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하이브 산하 빌리프랩 소속 보이그룹 엔하이픈의 컴백은 순탄하지 않다. 10개월 만에 한국 활동을 재개했지만 팬덤 내외부가 소란스럽다. 타이틀 곡 ‘Bite Me’ 안무엔 일곱 명의 멤버와 짝을 이루는 일곱 명의 여성 댄서가 등장한다. 멤버들과의 페어 안무가 포함돼 있고 안무 동작에 스킨십이 섞여 있다.쇼케이스에서 무대가 공개됐을 때 현장에선 팬들의 성난 목소리가 빗발쳤다. 23일에는 연예 커뮤니티 인스티즈에서 활동하는 엔하이픈 팬덤 ‘엔진’ 명의로 페어 안무를 빼라는 성명서가 올라왔다. 이들은 미성년자 멤버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하이브는 역사가 짧다. 다른 대형 기획사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SM과 YG, JYP 기존 3대 기획사는 90년대에 설립됐다. 특히 SM은 설립 이후 줄곧 복수의 보이그룹과 걸그룹을 제작하고 운영해 왔다. 하이브의 전신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2000년대에 설립됐고, 보이그룹을 제작한 건 2013년 BTS가 처음이다. 2019년 TXT가 데뷔하기까지 BTS 한 팀만 운영했다. 이후엔 하이브로 사명을 변경하고 산하에 다수 기획사를 두는 멀티 레이블 체제로 바뀌면서 보이그룹 세븐틴과 엔하이픈, 걸그룹 여자친구와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한국에서 멜론은 음원 차트를 대표하는 이름이다. 최근엔 케이팝 신의 경쟁 과열과 맞물려 이 ‘멜론 순위’가 신문 지상과 네트워크에서 빈번하게 오르내린다. 뉴진스·아이브·엔믹스·르세라핌·케플러·에스파까지 걸그룹이 쏟아져 나와 입지 선점을 위해 각축을 벌이는 상황에서, 이 그룹이 ‘대세’라고 증명할 수 있는 수치, 각종 성적 지표가 중요해졌다. 걸그룹은 전통적으로 보이그룹에 비해 대중 선호도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고, 그에 상응하는 지표로 ‘멜론 순위’가 거론되는 것이다. 케이팝 커뮤니티에선 순위 동향을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BTS RM의 엘 파이스 인터뷰가 화제가 된 지 꽤 지났다. 엘 파이스는 스페인의 유명 언론으로서 RM에게 케이팝 시스템의 비인간성 등에 대한 질문을 던졌었다. 사실 이뿐만 아니다. 케이팝 시스템을 ‘공장’에 비유하는 지적, 그러니까 연습생을 아이돌로 조립하는 기획사 시스템에 관한 의문은 서구 언론에서 제기하는 익숙한 레퍼토리다. 이런 비판이 케이팝에 대한 서구의 ‘견제’나 ‘시기’라며 분노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렇게만 넘기기에는 좀 더 숙고할 거리가 연결돼 있다.나는 케이팝의 문제가 가수를 찍어 내는 연습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지금 포털 사이트에서 ‘CJ ENM’으로 검색하면 암담한 뉴스가 쏟아진다. 큰 폭의 수익하락, 주가 하락 전망, 티빙 가입자 증가세 둔화, 영화 시장 흥행 부진, 방송 광고 매출 저하… 한때 CJ는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자신만만한 슬로건을 내걸었고, 그렇게 자부할 만큼 실적을 낸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 문화산업 전 방위에서 CJ의 퇴락은 기정사실이 됐다. 영화·음악·방송 어디에서도 청신호는 없다. CJ가 제작한 대작 영화들은 숨기고픈 성적표를 받았고, 로 데뷔한 케플러는 케이팝 신
[미디어스=윤광은 칼럼]주체적 여성과 (여자)아이들요즘 여성 아이돌 노래 가사의 공통점은 화자의 주체성이다. 현재 존재감을 치켜들고 있는 주요 신인 그룹 가사를 둘러보면, 각각의 정체성에 따라 세부 주제 의식은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 세상에 대한 능동적 태도가 꿈틀거린다. 자의식적이고 자기 과시적이며, 상승 지향적이고 투쟁적인 태도다. 그들은 메타버스 세계의 여전사(에스파)이며, 정상으로 향하는 불굴의 도전자(르세라핌)이고, 자기애에 도취한 하이틴 셀럽(아이브)이다. 이것은 주체적 여성상이라 부를 수 있지만, 화자가 여성이란 배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피프티 피프티(이하 피프티)의 노래 ‘CUPID’가 어떻게 케이팝 역사상 데뷔 후 최단기간에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올랐는지는 많이 이야기되었다. 소식이 들린 지 2주가 넘었고, 한국에서도 완전히 무명이었던 이 중소 기획사 걸그룹이 기적을 일군 원인과 비밀을 캐묻는 글은 넘치도록 나왔다. 대부분 타당하게 들린다. 듣기 편한 노래와 감미로운 음색, 잘 만든 노래의 힘, 틱톡 BGM으로 유행하며 얻은 홍보 효과 등이 거론됐다. 피프티가 현재진행형으로 쓰고 있는 각종 기록들도 이런저런 기사에 정리돼 있어 말을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도둑맞은 가난’은 고 박완서 작가의 단편 소설이다. ‘가난을 도둑맞았다’는 표현은 소설 제목을 떠나 종종 쓰이는 관용어가 됐다. 가난은 물질적으로 가지지 못한 결핍의 상태다. 사람들은 대체로 무엇이든 가지고 싶어 하지, 가지지 못한 상태를 바라지 않는다. 가난을 도둑맞았다는 말에선 마치 가난이 도둑질의 대상이 되는 재화처럼 쓰여 있다. 가지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 타인이 가진 무언가처럼 표현된 것이다. 가난은 내가 아닌 타인의 것일 때 훔칠만한 가치가 생긴다. 그것은 세상을 향해 연민과 구호를 요청하는 도덕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걸그룹 뉴진스의 한 ‘홈마’가 활동을 그만둔 것이 화제가 됐다. ‘홈마’는 ‘홈 마스터’의 줄임말이다. 공연장과 방송 출퇴근길, 각종 이벤트 등 오프라인 현장에 나타나 아이돌 사진을 찍는 이들을 뜻하고, 주로 그룹 내 멤버 개인의 팬으로 활동한다. 저 ‘홈마’는 입장문을 써서 뉴진스 소속사가 자신과 같은 ‘홈마’들의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한다고 주장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진을 찍지 못하게 플래시를 쏘고, 공연장에서 다른 관객을 방해하지 않았는데도 직원이 개입하고, 행인들이 사진을 찍는 건 막지 않으면서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지난주 BTS 멤버 RM이 스페인 언론 엘 파이스와 가진 인터뷰가 화제가 됐다. 케이팝 시스템의 비인간성과 한국 문화의 특성에 관한 질문에 RM은 일정 부분 수긍하면서도, 그런 점들 때문에 케이팝의 퀄리티가 특별하며 한국은 70년 전 아무것도 없었지만 국민들 노력으로 발전했다고 답했다. 그런 후 식민지를 두며 부강해진 서구 국가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타당한지 되물었다. 한 일간지 칼럼에선 이 인터뷰를 향한 언론과 지식인들의 찬사에 이의가 제기됐다(‘‘그쪽이야말로주의’를 넘어서’, 한겨레). RM의 대답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뉴진스의 ‘Ditto’ 뮤비에는 뉴진스 팬을 표상하는 반희수란 인물이 등장한다. 반희수는 교정을 거닐며 뉴진스 멤버들을 캠코더에 담고 틀어 보기도 하며 현실인 듯 환상인 듯 멤버들과 친밀한 교감을 나눈다. 영화평론가 김병규의 지적대로 반희수는 기록자이자 회고의 주체이며 다양한 정체성으로 소묘되어 있지만(‘반희수는 어디에 남아 있을까’, 씨네21), 반희수는 오늘날 케이팝 팬덤의 자화상을 담기엔 지나치게 아날로그적이고 지나치게 통념적이다. MV를 처음 볼 때 다소 놀랐을 정도로 반희수엔 케이팝 ‘오타쿠’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