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걸그룹 피프티피프티와 소속사 어트랙트 간의 전속계약 효력정지 법정공방으로 치달은 피프티 사태엔 두 가지 맥락이 있다. 하나는 어트랙트와 피프티 멤버들 및 피프티 뒤에 있다고 지목된 외주 기획사 더기버스의 대립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 사태가 사회적 화제가 될 만큼 소란스럽게 반응을 증폭하는 여론의 동향이다. 전자가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로 초래되었다면 후자엔 케이팝 신 내부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사건 개요는 잘 알려진 대로다. 어트랙트는 외부 기획사 더기버스 측에 피프티 음악 제작을 맡겼는데, 피프티의 노래 ‘CUPID’가 해외에서 히트한 후 더기버스가 그룹을 ‘강탈’하려 한다고 폭로했다. 더기버스는 이런 주장을 부정하고 있지만, 사태의 타임라인을 보면 더기버스 측과 피프티 측의 물밑 움직임이 상관관계로 이어지는 양상이 있다. 전속계약 해지 소송이 제기되기 전 5월에 그룹에 들어온 광고 제안을 더기버스 측이 임의로 거절해 버린 정황 등이 그렇다. 많은 언론과 지배적 여론은 이 상황을 ‘중소 기획사 그룹이 인기를 얻자 외주 기획사와 멤버들이 소속사를 바꾸려 한다’는 줄거리로 파악하는 것 같다.

그룹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가 4월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지아트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그룹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가 4월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지아트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사건의 맥락에 비춰 그럴싸한 시각 같다. 피프티 측이 주장하는 계약 효력정지 사유들은 이미 여러 보도를 통해 사실관계 오류와 논리적 개연성 부족을 지적당했다. 오히려 현 상황에 대해 개연성 넘치는 부분이 있다면 ‘CUPID’의 해외 인기가 소속사 규모에 비해 너무나 엄청나다는 것이다. 이 그룹을 더 큰 자본 위에 옮겨 놓고 싶은 욕망이 개입하기 충분할 만큼 말이다. ‘CUPID’는 빌보드 차트 메인으로 통하는 핫 100 차트에서 17위를 기록했고, 16주 이상 차트에 머물고 있다. 역대 케이팝 걸그룹 중 최고의 성적이고, 케이팝 그룹 전체로 봐도 BTS 외엔 이 이상 가는 성적을 낸 그룹이 없다. 글로벌 팬덤의 지원을 업지 않은 노래 자체의 순수한 인기로는 ‘강남스타일’ 이후 ‘CUPID’에 비견될 전례가 없다.

현재 논란에선 주로 기존 케이팝 팬덤이 입을 모아 피프티를 비판하는 걸로 보인다. 피프티는 빌보드에서 이룬 실적에 비해 국내에선 그다지 거론되지 않고 있었다. 인지도가 미약했던 탓도 있겠지만, 케이팝 팬덤 커뮤니티에선 어떤 종류의 불편함도 감지됐었다. 이제 막 데뷔한 그룹을 ‘원히트 원더’(히트곡 하나로 커리어를 마감한 가수)라고 부르는 논리적 모순 어법이 댓글 창에서 수식어처럼 따라다닐 정도였다. 이런 외면과 폄하는 큰 팬덤을 거느린 대형 기획사 걸그룹들도 가보지 못한 길에 굴러온 돌이 박혀 있는 걸 보는 언짢음에서 비롯한 것 같다.

BTS 이후 미국 시장은 케이팝의 신대륙이자 문화적 헤게모니를 얻기 위한 궁극의 도착지처럼 인식됐다. 빌보드 차트 성적은 그걸 입증해 주는 최고의 홍보 자료였다. 뉴진스가 빌보드 핫 100에 진입한 후 “BTS가 8년 차에 이룬 걸 6개월 만에 해냈다”는 홍보 기사가 나왔던 걸 떠올려 보자. 하지만 곧이어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그룹이 뉴진스보다 훨씬 높은 빌보드 순위를 기록한 채 케이팝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고 해외 언론의 격찬을 얻었다. 피프티가 존속하는 한 여타 그룹들이 이루는 해외 성적은 빛바랠 수밖에 없고 그걸 가져와서 보도하는 국내에서도 체면을 세울 수가 없다. 현재 논란이 특정 커뮤니티에서 풀무질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데는 이런 역학관계가 배경이 됐을 것 같다.

그룹 피프티 피프티 [어트랙트 제공]
그룹 피프티 피프티 [어트랙트 제공]

피프티 사태에 관해 널리 퍼진 비판 게시물 중 하나는 이런 내용이다. “피프티 멤버들은 한국인이 싫어하는 모든 짓을 저질렀다.” 무명 그룹을 뒷바라지한 대표의 은혜를 배신했다는 서사로 스토리텔링된 내용이다. 한국적 정서의 ‘역린’에 호소하며 아이돌 얘기에 관심 없는 일반 여론을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어찌 됐건 사태가 이만큼 커진 걸 보면 저 프레임에 감응하며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해외에서 초유의 대중적 히트를 이룬 그룹이 국내에선 소외돼 있다 한국적 가십 구도 위에 놓이고 나서야 화제가 되며 ‘대중성’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아이러니함이 K컬처 세계화의 시대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혹은 대형 문화자본과 그들을 뒷받침하는 팬덤 중심으로 구축된 세계화이기에 메워지지 않는 국내와 해외의 사회문화적 동향의 간극이다. 특정 분야의 팬덤이 이슈 파급에 특화된 특정 커뮤니티를 통해 이슈 파이팅을 펼치면 능히 사회적 여론을 조성할 수 있고, 이슈가 전달되는 의제의 코드 역시 언론이 아니라 여론 고관여층에 의해 자체적으로 설정될 수 있다. 피프티 사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한국 사회, 한국 공론장의 어떤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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