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걸그룹 뉴진스의 한 ‘홈마’가 활동을 그만둔 것이 화제가 됐다. ‘홈마’는 ‘홈 마스터’의 줄임말이다. 공연장과 방송 출퇴근길, 각종 이벤트 등 오프라인 현장에 나타나 아이돌 사진을 찍는 이들을 뜻하고, 주로 그룹 내 멤버 개인의 팬으로 활동한다. 저 ‘홈마’는 입장문을 써서 뉴진스 소속사가 자신과 같은 ‘홈마’들의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한다고 주장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진을 찍지 못하게 플래시를 쏘고, 공연장에서 다른 관객을 방해하지 않았는데도 직원이 개입하고, 행인들이 사진을 찍는 건 막지 않으면서 카메라 든 팬들만 제지한다는 것이다. 팬 50명이 참석한 팬 사인회를 50분 만에 끝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사람 취급” 받는 팬이 되고 싶다는 토로로 글은 끝난다. 올 초에도 다른 멤버의 홈마가 비슷한 입장을 밝히며 계정 문을 닫은 일이 있었다.

저 글은 인터넷에서 퍼져나갔는데 커뮤니티에 따라 반응이 달랐다. 트위터와 ‘더쿠’에선 ‘홈마’에게 공감하고 소속사를 규탄하는 말이 많았다. 이 상황이 소속사의 팬덤 혐오란 비판도 나왔다. 특히 팬 사인회 50분은 사실이라면 너무 짧다는 지적이 공통됐다. 반면 ‘에펨코리아’에서는 회사를 옹호하는 반응이 쏟아졌다. ‘홈마’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뱉는 이가 많았고, 따라서 회사의 조치는 정당하다는 논리로 가는 흐름을 이뤘다. ‘홈마’들이 사진을 찍으려 질서를 어기고 출입제한 구역에 따라붙고 사제 굿즈를 판매한다는 비판이다. 이 갈라진 구도는 각 커뮤니티의 성격을 떠올리면 의미심장하다. 트위터와 더쿠는 팬 활동 몰입도가 높은 코어 팬덤이 모이는 장소고, 에펨코리아는 라이트한 팬덤과 일반 ‘대중’ 유저들이 모이는 장소다.

걸그룹 뉴진스가 3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서울패션위크 오프닝쇼 포토월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걸그룹 뉴진스가 3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서울패션위크 오프닝쇼 포토월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두 반응은 다 진실을 품고 있다. ‘홈마’는 케이팝 신의 오래된 화두며 판단하기 불투명한 쟁점이다. 이들이 공연 무대를 촬영하고, 자체 제작한 사진집과 슬로건을 판매하는 관행이 있어 초상권‧저작권이 침해되는 건 분명하다. 공항 출국장까지 들어가는 이도 많고 인파 통행과 아이돌 프라이버시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무법자들이 진작 근절되지 않았을까? 기획사들이 이들의 존재를 묵인해 왔기 때문이다. 이해득실을 따졌을 때 그냥 놔두는 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홈마’는 회사와 팬덤 모두의 수요를 채워준다. 이들의 트위터 계정은 국내와 해외를 아우르는 팬 네트워크 교차점 역할을 한다. 활발한 오프 출사로 회사와 별개의 '떡밥'을 생산하기에 ‘그냥 놔두면’ 홍보가 되고 팬 유입·규합 효과가 나온다.

‘홈마’의 대체될 수 없는 역할은 간접체험 공급이다. 대다수 팬들은 아이돌이 나타나는 오프라인 현장을 찾아갈 여건이 안 된다. ‘홈마’는 여기저기 출몰해 갓 찍어서 가공이 덜 된 프리뷰 형식의 사진을 올리고 그 현장감을 전달한다. 특히 국내 오프 참석이 불가능한 해외 팬들에겐 프리뷰 사진이 케이팝 아이돌이 바다 멀리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완화해 주는 콘텐츠다. 아이돌 지척에 접근하는 걸 불사하는 만큼 현장감 있고 다양한 구도의 사진이 나오고, ‘팬심’을 바탕으로 찍기에 사진 선정, 보정에 공을 들여서 언론사 사진보다 아이돌이 예쁘게 담긴다. 공식 콘텐츠로 채우지 못하는 공급의 여백을 채우고, 생일 서포트 등에 앞장서며 개별 아이돌 멤버를 후원하는 든든한 전력이 되는 것. 이런 것들이 ‘홈마’의 존재 가치다.

케이팝이 글로벌 산업이 된 비결 중 하나는 온라인을 통한 각종 콘텐츠의 자생적 공유고, 저작권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다. 유튜브만 봐도 각종 팬 메이드 영상이 저작권을 우회한 채 글로벌 유저들에게 일상적으로 소비된다. ‘홈마’는 오래전부터 케이팝 신의 빼놓을 수 없는 참여 주체가 됐다. ‘홈마’가 붙지 않은 아이돌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런 경우는 오프 사진 수요가 없을 만큼의 비인기 아이돌뿐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코어 팬덤은 ‘떡밥’ 소비량이 많고 소비 지출액이 커서 ‘홈마’의 사진과 비공식 굿즈를 적극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이 현실에 깊게 파묻혀 있기에 ‘홈마’에 관한 현실을 긍정하거나 이들을 코어 팬덤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고, 라이트 팬과 일반 여론은 반대 반응을 보인 측면이 있을 것 같다.

K팝 굿즈 [연합뉴스TV 제공]
K팝 굿즈 [연합뉴스TV 제공]

어떤 이들이 우려하는 대로 ‘홈마’들의 입김이 커지면 팬덤 내부에서 부작용을 부를 수도 있고, 초상권·오프 현장에서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모든 ‘홈마’가 그런 종류의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니다. 이들에 관한 부정적 인식을 일반화해 감정 대립을 부산하기보다 명확한 기준을 정해서 개별 문제에 대응하거나 공생을 모색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 아이돌 멤버는 자신의 콘서트에 ‘홈마’ 전용석을 마련해 사진 촬영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면서 일반 관객이 입을 피해도 방지하고 서로 간의 편의를 중재한 적이 있다. 케이팝 기획사들은 ‘홈마’라는 해묵은 난제 혹은 도려낼 수 없는 현실을 방관하거나 배척할 뿐 이들을 제도의 틀에서 순치하려는 노력은 부족했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논란의 배경을 짚으면 '대중성'과 코어 팬덤의 충돌이 엿보인다. 뉴진스는 지난 컴백부터 '대중성'을 얻기 위한 노선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 소기의 성과 하나가 '대중성'을 구성하는 입지의 남초 커뮤니티를 아군으로 얻은 것이다. 이 그룹에 관한 몇 번의 논란에서, 저들은 케이팝 팬덤이 모이는 트위터, 아이돌 커뮤니티와 대립 구도를 이뤘고 이번 논란도 그렇다. 소속사가 ‘대중’과 코어 중 하나만 껴안는다는 인상을 주거나 그룹이 반복적으로 그 사이에 끼는 건 좋지 않다. 사진 데이터를 파는 ‘대리 찍사’도 있지만, 카메라를 든 이들도 팬이다. 그것도 오프마다 출석하는 헤비한 팬이고, 이들에겐 여타 팬들이 거는 수요도 일정 부분 걸려있다. 기획사들은 적어도 이 지점을 존중한 채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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