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영화 <바비>는 바비랜드에서 살아가는 바비의 하루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인형의 집을 옮겨 놓은 듯 핑크빛 건축물로 도배된 세상에서, 바비들은 여성들의 낙원을 이루며 행복과 기쁨만 존재하는 삶을 산다. 바비들은 인형 놀이를 재현하듯 연극적 행동 양식으로 움직이는데, 영화 초반엔 보이지 않는 손이 인형을 들어서 내려놓듯이 바비가 지붕에서 붕 떠올라 지상으로 내려오는 장면이 나온다. <바비>의 이야기는 바로 이 ‘인형을 움직이는 손’을 찾아 떠나며 앞으로 나아간다. 더는 바비 인형으로 존재할 수 없게 만드는 변화를 겪기 시작한 바비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가지고 놀던 사람을 찾아 현실로 떠난다. 한편 관객의 입장에서 더 크게 본다면 바비랜드 전체를 움직이는 ‘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바비 인형은 “바비 인형 같다”는 관용어처럼, 여성에 관한 미적 기준을 획일화한다고 비판받아온 대상화의 상징 같은 존재다. 영화 <바비>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건 바로 바비 시리즈에 드리워진 대상화다. 마고 로비가 맡은 주인공 바비의 이름도 ‘전형적인 바비’이며, 바비 인형을 대표하는 고정관념 그대로의 외양이다. 여성중심적 사회 바비월드는 남성중심적 사회를 비추는 거울상으로서 이 두 가지 사회를 오가며 성별과 존재에 대한 대상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신랄한 유머로 전시하는 것이 이 영화의 문법이다.

영화 〈바비〉 스틸이미지
영화 〈바비〉 스틸이미지

이렇듯 대상화를 조소하기 위해 <바비>가 채택한 전략은 스스로 모든 것을 대상화하는 것이다. 무언가에 대한 관념을 이루는 ‘전형적인’ 요소들을 끌고 와 과장하고 비트는 패러디를 통해 현실에서 이뤄지는 대상화가 얼마나 작위적인지 꼬집는다. 그 대상은 가부장제도, 맨스플레인 같은 남성중심적 관습은 물론 페미니즘, 정치적 올바름, 심지어 바비 시리즈와 바비 인형을 만드는 회사 마텔까지 포함된다. 바비랜드를 여성들의 낙원처럼 묘사하는 내레이션 뒤에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빈정거리는 뉘앙스가 붙으며 바비 시리즈가 정치적 올바름에 입각한 비판에 직면하며 추가해 온 ‘다양성’의 허구성을 되묻는 식이다. 영화 속 현실 세계 역시 바비랜드라는 판타지 세계 바깥에 있는 리얼 월드가 아니다. 여성중심적 사회로 대상화된 바비랜드의 맞은편에 있는 남성중심적 사회로서 또 다른 대상화된 세계일 뿐이다.

바로 여기에 <바비>가 품은 모순이 있다. 대상화를 통해 대상화를 비판하지만, 정작 그 대상화가 지닌 매력에 의존하며 상업성을 구성한다. 장난감 왕국처럼 아기자기하고 장식적이면서 화려하게 치장된 바비랜드의 미장센은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이자 바비 시리즈가 소비자들에게 전통적으로 어필해 온 감성 자체다. 대상화된 인물과 시추에이션은 관객의 폭소를 끌어내는 코미디 요소로서 짜릿하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상화의 내밀하고 폭력적인 속성을 실감시키진 못한다. 영화는 ‘전형적인 바비’가 바비랜드를 떠나 현실 세계로 투신하며 인형이 아닌 한 사람의 여성으로 살아가기를 택하는 성장서사로 막을 내리지만, 관객은 내심 그가 바비랜드에 좀 더 머물고 그리하여 그 세계가 주는 매력을 더 맛보게 해 주길 바랄지도 모른다.

영화 〈바비〉 스틸이미지
영화 〈바비〉 스틸이미지

<바비>는 언뜻 자기 배반적 성격을 품은 것처럼 보인다. 바비 인형의 예쁜 모습을 전시하는 한편 바비 인형에서 벗어나는 삶을 결말로 보여준다. 감독 그레타 거윅은 <바비> 후속작을 연출할 계획이 없다고 못박았는데 그럴 만도 하다. 이러한 관점의 연출이 이어지는 한 바비들은 2편, 3편에서도 바비랜드를 떠날 것이고 나중엔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다. 바비 시리즈의 명성에 의해 제작돼 시리즈를 홍보하는 영화인 동시에 그와 상충되는 결말을 제시하는 영화란 것. 이 점이 바비랜드와 현실 세계를 잇는 포털의 균열처럼 이 영화에 드리운 균열이다. 엔딩 크레디트에서 길게 전시되는 각종 바비 인형 제품들은 소유욕을 일으키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며 마치 영화의 균열을 봉합하기 위해 덧붙인 홍보용 카탈로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형적인 바비’는 현실의 여성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의 기억이 머릿속에 흘러 들어오는 경험을 거치며 각성을 이룬다. 이것이 포털의 균열에서 비롯한 결과인 것처럼, <바비>는 대상화의 상징인 바비 시리즈에 균열을 내고 페미니즘과 이어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바비 시리즈에 내재한 정치적 비판지점을 스스로 드러내 보이는 연출과 ‘평범한 바비’ 출시가 채택되는 결말은 바비란 브랜드를 대상화의 혐의 속에서 건져 내는 씻김굿과도 같다. 역시 결말에 이르러 등장하는 루스 핸들러는 마텔의 창립자이자 바비 인형 발명가로서, 영화 속에서 남성 임원들로만 채워진 현 경영진 이면에 있는 마텔의 근본이자 뿌리처럼 제시된다.

이상의 연출들이 어우러져 나오는 상태가 있다면, 여성들이 바비 인형을 소비하거나 그 연장선에서 자기 자신과 세상을 대하면서도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짐을 덜어 주는 것이다. “(바비 인형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그레타 거윅이 인터뷰에서 강조하는 코멘트는 곧 이 영화의 메시지로서, 바비 인형을 통해 페미니즘을 사유하고, 페미니즘을 통해 바비 인형을 프로모션하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바비〉 스틸이미지
영화 〈바비〉 스틸이미지

국내와 해외 일각에선 <바비>가 페미니즘 영화냐, 휴머니즘 영화냐는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페미니즘과 휴머니즘이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란 점에서 근본적으로 어긋난 구도의 논란이다. 페미니즘은 여성도 사회적 주체의 지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 결과는 인간의 존엄을 말하는 휴머니즘과 통한다. 그럼에도 저러한 논란이 발생했다면 근본적으로는 관객들이 지닌 페미니즘에 대한 관점 차이 때문일 것이고, 부차적으로는 모든 것을 대상화하며 꼬집는 영화의 문법 때문일 것 같다. “영화는 남성중심 사회뿐 아니라 여성중심 사회 역시 옳지 않다고 풍자한다”는 부류의 리뷰가 나오는 배경이다.

바비랜드는 표면상으론 여성들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남성들은 객체인 세상이지만, 그것의 실체는 남성중심 사회를 뒤집은 거울이다. 또한 바비랜드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통제하고 자신의 이념을 주입하는 존재, 그러니까 바비랜드라는 인형 나라를 움직이는 ‘손’은 영화 속 현실 세계, 남성중심 사회의 남성중심 조직 마텔사의 남성 회장이다. 바비랜드를 향한 풍자적 시선은 곧 남성중심 사회를 향해 환원된다. 바비랜드에서 소외된 켄의 모습은, 어떤 존재이든 대상화되어선 안 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여성이 대상화된 현실에 천착하는 이 영화가 딛고 있는 너무나 당연한 전제이며(페미니즘과 휴머니즘이 상충되는 이념이 아니듯이) 본질적으론 여성들이 겪는 대상화의 자리에 남성들을 옮겨다 놓은 것이다. 바비랜드를 가부장 사회로 바꿔 놓은 켄이 그동안 겪은 슬픔을 토로하며 ‘전형적인 바비’에게 “너도 한 번 느껴봐”라고 말하는 장면은 곧 남성 관객들에게 여성들의 입장을 한 번 느껴 보라고 권하는 전언이다.

영화 〈바비〉 스틸이미지
영화 〈바비〉 스틸이미지

<바비>에 관해 비판적인 관객들의 리뷰에선 언젠가 봉준호 감독이 한 발언이 인용되곤 한다. ‘영화가 메시지를 담는 도구로 전락해선 안 되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 이 말은 <바비>뿐 아니라 이념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 이른바 ‘PC’ 계열의 영화를 주로 겨냥하며 인용되는 경우가 많다. 봉준호 감독의 코멘트에 의거해 <바비>를 평가하자면, 훌륭한 부분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다. 바비랜드가 재현된 모습은 진귀한 시각적 만족감을 주고, 대상화와 패러디를 통해 현실을 뒤집는 연출은 재치가 번득이고 전복적인 쾌감을 준다. 하지만 모든 것을 대상화하는 그 문법이 이어질수록 메시지의 진의가 유실되지 않도록 보호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후반부에서 다소의 신파와 직설적이고 장황한 대사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후반으로 갈수록 영화가 산만하고 균형이 깨지면서 늘어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꼭 아름다움과 결부 짓지 않더라도 메시지를 말과 글이 아닌 영화로 재현하는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영화란 매체의 특성에 의해 재현되었기에 메시지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도 있고 메시지가 오감을 통해 흡수돼 몸과 마음에 오래도록 머무르기도 한다. 물론 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영화적 아름다움이란 이렇듯 메시지가 기획되는 형식과 그 성패까지 아우르는 것이겠지만, 그 말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메시지가 영화 전면에 드러나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단순화하거나, 영화를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수단으로 인용하는 것 같다. <바비>의 메시지가 어떻게 구조화되고 형식화 돼 있는지 살펴보았다면, <바비>가 휴머니즘 영화라거나 양성 평등 영화라는 식의 오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메시지가 아닌 영화 자체를 봐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하는 가운데 정작 영화의 내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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