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도둑맞은 가난’은 고 박완서 작가의 단편 소설이다. ‘가난을 도둑맞았다’는 표현은 소설 제목을 떠나 종종 쓰이는 관용어가 됐다. 가난은 물질적으로 가지지 못한 결핍의 상태다. 사람들은 대체로 무엇이든 가지고 싶어 하지, 가지지 못한 상태를 바라지 않는다. 가난을 도둑맞았다는 말에선 마치 가난이 도둑질의 대상이 되는 재화처럼 쓰여 있다. 가지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 타인이 가진 무언가처럼 표현된 것이다. 가난은 내가 아닌 타인의 것일 때 훔칠만한 가치가 생긴다. 그것은 세상을 향해 연민과 구호를 요청하는 도덕적 당위로 인식되곤 한다. 실은 가난을 바라지 않거나 가난과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그 당위만 취하기 위해 결핍을 가장한다. 이것이 내가 파악하는 ‘도둑맞은 가난’의 한 뜻풀이다.

최근 이 말을 목격한 건 배우 김새론에 관한 게시물에서다. 김새론은 작년 5월 음주운전 사고를 냈다. 예정된 작품 활동이 모두 취소됐고 사과문을 올린 후 자숙에 들어갔다. 몇 달 후 김새론 측 관계자는 기사를 통해 김새론이 생활이 어려워져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고 밝혔다. 기사에선 사고로 인한 배상금·위약금으로 모아둔 돈이 나가고 수입이 없는 상황이란 첨언이 붙었다. 이 ‘생활고’라는 낱말은 김새론을 따라붙는 빈정거림이 됐다. 스타 배우의 위상은 물론 그동안 공개된 번쩍거리는 삶과 어울리지 않았기에 여론은 코웃음을 쳤다. 활동 복귀를 위해 동정표를 사려는 ‘언론 플레이’라는 반응이 중론이다. ‘도둑맞은 가난’. 해당 기사를 퍼온 커뮤니티 게시물에 달린 베스트 댓글이었다.

배우 김새론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배우 김새론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새론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게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사람들 말처럼 ‘언론 플레이’의 개연성이 커 보이지만, 선의를 발휘해 이해해 볼 수도 있다. 비록 부동산 등 보유 재산이 있다고 해도 당장 들어오는 수입이 없다면 생활비를 마련하려 아르바이트를 했을 수도 있다. 지난달 첫 공판에선 국내 10대 로펌 소속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기사가 나와 야유를 불렀지만, 변호사 선임비는 활동 재개를 지원하려는 소속사가 냈을 수도 있다. 반면, 김새론의 인스타그램에 아르바이트가 사실이라고 암시하듯 점원 복장을 입은 사진이 올라왔다 해당 점포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고 확인돼 더욱 논란이 커졌는데, 이리저리 참작해보려 해도 김새론 측 입장이 믿을만해 보이진 않고 처신이 현명하지 못한 건 틀림없다.

하지만 현 상황은 저급하게 과열되는 성격이 있다. 언론은 김새론의 일거수일투족을 털면서 여론에 가십을 상납하고 있다. 음주운전 몇 달 후 김새론이 생일 파티를 열었다는 ‘폭로’가 터졌고, 이번 주엔 김새론이 홀덤펍에 갔다는 기사가 무단 촬영된 사진과 함께 떴다. 홀덤펍은 도박장이 아니고 몇만 원이면 술과 카드놀이를 할 수 있는 업소라고 한다. 변종 도박장으로 운영되는 케이스도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김새론이 거액을 베팅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음주운전으로 자숙한다면서 술을 입에 댔다면 마음가짐이 부족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생일날 친구들과 놀지 말란 법은 없다. 기사에 나온 "밝은 표정 속에" 포커를 쳤다는 구절은 흡사 가난한 사람이 웃고 떠들 리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사람들은 가난에 대한 억압적 규정을 통해 김새론을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가난이 도둑맞았다고 비난하지만 그들 역시 불행을 요건으로 가난의 자격을 심문하고 있다. 언젠가 기초생활수급자 아동이 돈가스를 사 먹는다고 구청에 신고가 들어간 사건이 있었다. 난 이 신고자의 사고방식이 김새론의 가난을 가늠하는 이들과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즐거움을 위해 돈을 지출해선 안 되고 근심 없는 얼굴을 해선 안 된다는 관념이 이 사회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가난은 삶의 많은 것을 제약하고 물질적 결핍은 삶의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삶에서도, 그런 삶이기에 삶의 버팀목이나 일시적 해방구가 될 즐거움이 필요하며 '생활고'를 좀 더 감수하고 돈을 쪼개 지출에 돌릴 수도 있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미지 출처=Pixabay.com

나는 김새론 측 처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선 비교 역시 한 명은 기초생활수급자지만 한 명은 어린 나이에 성공한 배우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차이 때문에 가난에 대한 규정이 아무런 제동 없이 전면화되고 있다. 김새론 개인을 떠나 저런 관념이 사회적 관점이 된다면 가난한 이들은 사회의 시선과 지원 앞에서 제 존재를 불행에 종속시킬 책임을 떠안게 된다. 연예인과 정치인처럼 얼굴에 기름기가 도는 이들의 가난이 훔친 것이라 알아보기는 쉽다. 이 사회 밑변엔 기부와 후원에 호소하려 제 가난이 진짜 가난임을 벌거벗은 채 전시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새론이 ‘생활고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라면 그들에 대한 모욕이겠지만, 가난의 편에 서서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면서 가난을 더 구석진 자리로 몰고 가는 것 역시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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