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BTS RM의 엘 파이스 인터뷰가 화제가 된 지 꽤 지났다. 엘 파이스는 스페인의 유명 언론으로서 RM에게 케이팝 시스템의 비인간성 등에 대한 질문을 던졌었다. 사실 이뿐만 아니다. 케이팝 시스템을 ‘공장’에 비유하는 지적, 그러니까 연습생을 아이돌로 조립하는 기획사 시스템에 관한 의문은 서구 언론에서 제기하는 익숙한 레퍼토리다. 이런 비판이 케이팝에 대한 서구의 ‘견제’나 ‘시기’라며 분노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렇게만 넘기기에는 좀 더 숙고할 거리가 연결돼 있다.

나는 케이팝의 문제가 가수를 찍어 내는 연습생 제도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린 시절 회사에 들어가 트레이닝을 받는 건 아주 특수한 케이스지만 케이팝만의 제도는 아니다. 특수한 분야에 숙련된 인재를 길러내는 예체능 계열이면 대부분 이런 제도가 있다. 예컨대 저 인터뷰를 진행한 엘 파이스는 평소 축구 소식도 자주 다룬다. 유럽 축구엔 유스 리그가 있고 각국 지역 구단에서 무수한 아이들이 걸음마를 뗀 뒤부터 축구 선수로 '조립'된다. 차이가 있다면 케이팝은 저변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연습생 1000명이 있다고 치면 그중 제대로 수입을 정산받는 아이돌로 성공하는 건 많이 잡아야 100명 정도일까.

그룹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의 첫 공식 솔로 음반 '인디고' 콘셉트 포토. [빅히트뮤직 제공.]
그룹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의 첫 공식 솔로 음반 '인디고' 콘셉트 포토. [빅히트뮤직 제공.]

웬만큼 이름을 알리고 팬덤을 모은 그룹들도 정산을 받지 못했거나 관련 분쟁이 일어나 화제가 된 사례들이 있다. 유럽 축구와 일본 야구는 꼭 음바페와 오타니가 되지 않아도 능력과 적성에 따라 진로가 주어지고 먹고살 수 있다. 그만큼 저변이 넓은 것이다. 꼭 케이팝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예체능 계열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돌 그룹은 초기 투자비용이 막대하고 회사와 계약 관계로 묶인다는 점에서 특수한 성격이 있다. 개별 아이돌에 대한 부당 계약이나 억압적·착취적 관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즉, 아이돌로 데뷔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너무 많은 시간과 돈과 갑을 관계의 기회비용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습생 제도가 곧 혹독한 트레이닝이 되어야 하는 필연적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축구는 댄스 이상으로 신체적 숙련도가 필요하지만, 유럽 유스 축구 선수들이 하루 종일 볼만 차는 건 아니다. 연령별 신체 특성을 고려해 오버 워크가 되지 않도록 일과가 구성된다. 성인 축구 선수들의 하루 훈련 시간은 두세 시간 정도로 알려져 있다. 단체 훈련은 오전에 끝나고 개인 훈련을 해도 대부분 오후 안에 끝난다. 그렇게 해도 월드 클래스 선수가 계속해서 배출된다. 운동과 음악을 단순 비교할 순 없겠지만, 케이팝은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을 하길래 하루 종일 춤추고 노래해야 할까. 그리고 그것이 케이팝 ‘경쟁력’의 원천처럼 이야기될까.

RM은 케이팝 시스템의 치열함이 질 높은 퀄리티를 낳는 면도 있다고 항변했다. 이건 RM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고, 그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 산업 종사자들은 물론 상당수 팬들도 공유하는 관점일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관점 자체가 현실론이 아니라 믿음이자 이데올로기는 아닌지 묻고 있는 것이다. 케이팝이 세운 금자탑이 어둠을 덮을 수 없다고 지적하기 이전에 '혹사'가 아웃풋을 보장하는 게 사실이긴 한지, 꼭 그래야만 숙련된 인재가 나오는 건지, 그 인과관계에 의문이 든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팀 활동 잠정 중단 선언한 15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 데뷔 9주년 축하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2022.6.15.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팀 활동 잠정 중단 선언한 15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 데뷔 9주년 축하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2022.6.15. (연합뉴스 자료사진)

나는 이 논점에서 과로와 기회비용, 그것이 산업적·국가적으로 합리화되는 양상이 제일 눈에 들어온다. 케이팝 가수들 활동 환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연습생 시절보다 가수로 데뷔한 이후가 더 바쁘고 고되다. 합숙 생활을 해서 개인의 삶이 결핍돼 있고, 새벽에 눈을 뜨고 새벽에 잠든다. 이건 무슨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고 퀄리티와 상관도 없다. 돈을 벌기 위해 과중한 스케줄을 돌리는 것이고, 그런 와중 일 년에 몇 번씩 돌아오는 컴백 활동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퍼포먼스 퀄리티를 저해하는 요소다. 스케줄 때문에 연습할 시간이 없어서 데뷔 후엔 실력이 발전하지 않는 케이스가 적지 않다. 말했듯이, 해외 스포츠는 저만큼 유망주들을 압착하지도 않고, BTS 못지않게 돈을 버는 미국 팝스타들은 저만큼 쳇바퀴를 타면서 활동하지 않는다.

하드 트레이닝이 과연 퀄리티의 필요조건이냐는 업계 현장의 경험과 앎이 있어야 면밀히 답할 수 있는 질문이겠지만, 케이팝 관계자들도 지지자들도 혹은 비판자들마저 당연한 사실, 어쩔 수 없는 섭리처럼 전제하고 자기 할 말을 하는 관성이 있어 보인다. 물론 이 역시 케이팝만의 문제는 아니다. 과로와 혹사는 한국의 사회적 코드이며, 제도권 학교 안의 많은 학생들도 아침부터 밤까지 책상 앞에 붙잡혀 있다. 그러므로 케이팝에서 드러나는 ‘비인간적’ 시스템이 “한국의 문화적 특성이냐”는 엘 파이스의 질문은 사실 핵심과 이어지는 것이다. 외부에서 던지는 말의 의도를 떠나서, 그런 질문이 이 산업 내부에서 직시되거나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질문이 반복해서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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