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대 스포츠 축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16일 간의 열전을 뒤로 한 채 지난달 27일 폐막했다. 45개국 1만4천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42개 종목, 476개 금메달을 놓고 열띤 경쟁을 벌인 가운데 한국은 금메달 76개, 은메달 65개, 동메달 91개를 따내며 일본을 크게 제치고 아시안게임 4회 연속 종합 2위 자리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이는 원정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출전 사상 역대 가장 좋은 성적이기도 했다. 종합 2위라는 성적만큼이나 내실 있는 성과도 많았다.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종목들이 이번 대회를 통해 좋은 성적을 내고 ‘효자 종목’으로 떠올랐다. 단일 대회 최다 금메달을 따낸 사격을 비롯해 펜싱, 볼링 등에서 많은 메달이 쏟아져 나왔고 기초 종목인 육상, 수영에서
2022년 월드컵 유치 실패 소식이 전해진 지 단 4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이에 대한 '반짝 열기'는 식은 듯합니다. 월드컵 유치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 때문에 잠시 높은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결국 유치의 꿈이 이뤄지지 않자 순식간에 열기가 사라졌습니다. 그만큼 이번 대회 유치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예전만 못했고, 카타르의 깜짝 개최국 선정 결과로 인한 내부적인 후유증은 크게 없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사실 월드컵을 통해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이루는 데 기여하겠다는 인상적인 명분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유치 가능성이 다소 낮게 점쳐졌습니다. 유치위원회가 직접 발로 뛰고 노력한 끝에 '꽉 찬 50% 유치 가능성'을 만들기는 했지만 수익성, 경쟁국과의 차별화된 전략 등이 두드러지게 나
2010 K-리그 챔피언은 바로 FC 서울이 차지했습니다. 서울은 5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쏘나타 K-리그 2010 챔피언십 챔피언결정전 2차전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정조국의 패널티킥 동점골과 후반 아디의 헤딩 결승골에 힘입어 2-1 승리를 거두고 종합 전적 1승 1무로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이로써 서울은 지난 2005년 연고 이전 후 첫 정상에 올랐으며, 안양 LG 시절까지 합치면 2000년 이후 10년 만에 K-리그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특히 서울은 컵대회까지 포함해 '더블'을 달성했으며, 올해 첫 부임한 넬로 빙가다 감독은 데뷔 무대부터 두 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올 시즌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시즌을 마쳤습니다. 서울의 우승은 지난해보다 뛰어나게 좋아진 팀플
2018,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에 대한 각종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당초 거론됐던 유력 후보국들 대신에 석유, 에너지 같은 막대한 자원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두 나라, 러시아와 카타르가 각각 2018, 2022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됐기 때문입니다. 'FIFA(국제축구연맹)가 돈밖에 모른다' '예상 외의 국가들이 선정돼서 놀랐다'는 반응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두 나라 개최 선정에 대한 후폭풍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치 신청으로 2022년 월드컵에 관심이 많이 쏠리기는 했지만 함께 발표한 2018년 월드컵 유치 전쟁 역시 대단히 치열했습니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가 다소 앞서 나가는 형국 속에서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이 공개적으로 "공동 개최
약간의 기대와 희망이 있었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2022년 월드컵 유치 꿈을 이루지 못하면서 훗날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3일 새벽,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FIFA(국제축구연맹) 집행위원회 투표에서 한국은 3차 투표까지 올라가는 선전을 펼쳤지만 아쉽게 '물량 공세'를 벌인 카타르에 밀리며 고개를 떨궈야 했습니다. 당초 가장 저조한 평가를 받았던 카타르가 냉방 경기장과 최첨단 시설로 무장한 각종 주요 시설들을 내세우면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것이 FIFA 집행위원들에 먹혀들면서 막판 대역전극을 펼치고 중동 첫 월드컵 개최라는 성과를 냈습니다. 반면 한국은 막판 연평도 포격 등의 악재가 덮치면서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개최권 획득에 아쉽게 실패했습니다. 비록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그동안 달려온
한국 스포츠 하면 투혼과 더불어 기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단 하나의 꿈을 향해 땀방울을 흘리며 마침내 꿈을 이뤄내는 그 과정 자체만으로도 드라마 같은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작은 국토임에도 스포츠로 한국의 힘을 알리며 세계 Top10 수준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정말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고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동계올림픽을 제외한 모든 각종 국제 대회를 유치한 것은 한국 스포츠의 힘을 세계에 과시하는 또 다른 요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 1997년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1999년 강원 동계 아시안게임,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2002년 한일월드컵, 2002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국을 동시에 선정하는 FIFA(국제축구연맹) 집행위원회 투표가 이제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유치를 신청한 각 국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정말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데요. 대한민국은 미국, 호주, 일본, 카타르 등과 2022년 월드컵 유치전에서 50% 유치 가능성을 가슴에 품고, 30명으로 구성된 유치단이 집행위원회 투표가 열리는 스위스 취리히로 지난 30일 출국하는 등 유치를 위한 막판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3일 0시(한국시각)에 발표되는 월드컵 개최국에서 과연 어느 국가가 마지막에 웃을지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후보 국가도 '유치한다'고 보장하는 나라가 없어서 마지막까지도 참 알 수 없는 유치전이 벌어지
이번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보고 중국의 강세에 '질렸다'고 느낀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홈 이점에다 엄청난 인프라를 통한 탄탄한 역량을 앞세워 중국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199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금76개)의 격차를 무려 123개 차로 따돌리고 역대 최고 성적으로 종합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거의 모든 종목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줬고, 홈 이점을 앞세워 강세 종목에서 싹쓸이하다시피 하면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또 한 번 중국 스포츠의 위용을 마음껏 과시했습니다. 중국의 종합 1위는 지난 1982년 뉴델리 대회 이후 8회 연속 이어진 기록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이번 아시안게임을 두고 '광저우 중국 체전'이었다는 우스갯소리도 할 정도였습니다. 워낙 중국의 강세가
아시안게임이 끝났습니다. 한국 축구는 아시안게임에서 24년 만에 금메달을 노렸지만 아쉽게 또 한 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며 3위로 대회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이란과의 3-4위전에서 금메달 못지않은 감동 투혼으로 대역전극을 이끌어내고 유종의 미를 거두며 새로운 희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약 한 달 뒤 카타르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에서 그 희망을 아시아 정상으로 이끌어내고 활기찬 새해를 맞이하려 할 것입니다. 한동안 뜸했던 조광래호의 행보가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뛴 선수들을 직접 중국 광저우에서 확인한 것을 비롯해 독일, 이집트, 일본 등으로 날아가 선수들을 점검하고 상대팀 전력 분석에 열을 올리는 등 바쁜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K-리그 챔피언십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모든 선수들의 선전이 잇따랐지만 그 가운데서도 단연 눈에 띄었던 성과는 바로 '마린보이' 박태환(단국대)의 부활이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박태환은 자유형 200, 400m뿐 아니라 100m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며 자유형 중거리, 단거리에서 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면모를 확인하고 화려하게 대회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위해 준비하려 하고 있습니다. 지난 대회보다 떨어진 기록이 나온 1500m를 제외하면 박태환은 의도한 대로 자신의 기록을 모두 달성하면서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자유형 200m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세운 것을 비롯해 400m에서는 올 시즌 세계 최고 기록을, 100m에서는 한국 기록
국제 대회에서 많은 메달을 따내는 종목을 두고 우리는 효자 종목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번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효자 종목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만큼 이 종목들은 많은 메달을 따내 선전을 펼쳤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응원과 격려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종목들이 더 많은 게 사실입니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어도 몇몇 종목에만 편중돼있다시피 한 특성 때문에 모든 선수들이 주목받고 응원을 받는 것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메달을 따고도 이렇다 할 주목도 받지 못하고, 심지어 선수가 직접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려 자랑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한 종목에서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춰 메달을 따내고도 그 종목이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로 조용하게 묻히는 현실은 참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지난 27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모든 선수들이 4년간 흘린 땀방울만큼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모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한국 스포츠의 힘을 알리며 종합 2위라는 값진 성과를 내는 데 성공하고 전 선수단이 28일 귀국했습니다. 당당하게 귀국한 선수들에 박수를 보내는 바 입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새롭게 떠오른 선수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반면 이번 대회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하거나 마지막 아시안게임을 장식한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기량을 과시하며 '대한민국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을 갖고 좋은 활약을 펼친 이 선수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자 챔피언입니다. 전성기 못지않은 투혼과 기량을 보여주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솔직히 이번 아시안게임 마라톤 우승자가 한국에서 나올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워낙 침체기에 빠졌던 마라톤이었고, 이봉주 이후 뚜렷하게 간판 마라토너가 나오지 않아 부진이 오래 갈 것이라는 말들을 많이 했습니다. 1936년 손기정 선수가 민족의 한을 풀어내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고, 1947년 서윤복 선수가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한국 육상의 자존심과 같았던 마라톤의 부진은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지만 뚜렷한 대안이나 대책도 없었고, 이번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현주소'만 확인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보기 좋게 깬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지영준(코오롱)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그저 '기대주'에만 머물러있었을 뿐 국내에서는 잘 하고도
윤경신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핸드볼 스타입니다. 203cm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넘치는 슛은 독일을 넘어 세계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2년을 활약해 무려 7차례나 득점왕에 올랐고 통산 득점수만 2천790골에 다다를 만큼 이 어마어마한 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가 바로 윤경신입니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홀대받는 핸드볼 때문에 올림픽, 아시안게임 때만 반짝 관심을 갖는 '그저 그런 스타'로 여겨졌던 게 사실입니다. 독일에서 엄청난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파워 슛을 성공시키던 모습과 다르게 한국에서는 텅 빈 관중석에서 외롭게 뛰고 또 뛰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대한민국 선수로서 자부심을 잃은 적이 없었다는 윤경신은 묵묵하게 뛰면서 한국 핸드볼의 위상을 알렸고, 고군분투를 펼쳤
어제(25일) 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결승전에서 있었던 심판의 결정적인 오심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64-66, 2점차까지 맹추격한 상황이었던 종료 9.9초 전, 이미선의 '정당한 스틸'이 손을 쳤다면서 파울로 지적된 것이 결정적인 미스였습니다. 결국 이 상황에서 한국은 자유투를 허용해 추격 의지가 꺾였고 결국 64-70으로 지면서 아쉽게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경기 내내 살펴봐도 심판진의 보이지 않는 '중국 밀어주기'가 나타나기도 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는데요. 선수들은 시상식에서도 아픔을 삼키지 못했고, 이 상황에 대해 중국 기자들조차도 "불공정한 판정"이었다면서 심판이 석연치 않은 판정을 범했음을 인정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스포츠에서 홈 텃세라는 것은 '어
솔직히 이틀 만에 정상적인 경기를 펼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 가운데서도 그들은 프로였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기어이 좋은 경기를 펼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축구사에 손꼽을 만한 명장면을 만들어내며 '유종의 미'를 거뒀습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이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3-4위전에서 이란과 맞붙어 후반 32분까지 1-3으로 끌려가다 박주영의 골을 시작으로 추격의 고삐를 잡아당긴 끝에 지동원의 연속 헤딩 2골에 힘입어 4-3 대역전승을 거두고 3위에 올랐습니다. 이로써 한국은 이틀 전 아랍에미리트(UAE)와의 준결승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을 내주고 패한 아픔을 딛고 한국 축구의 힘을 보여주며 아름다운 마무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줬
날씨가 조금씩 쌀쌀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얼마 전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도 지났으니 옷차림이 더욱 두툼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 가운데서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욕구는 멈추지 않는 듯하다. 특히 요즘 '걷기 열풍'이 불면서 동네 공원이나 운동 시설이 있는 곳마다 너도 나도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 일상에서 늘 하는 행위라 할 수 있는 걷기가 하나의 운동으로 인식되기 시작하고, 누구나 편하고 쉽게 할 수 있다 보니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를 통해 몸을 관리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요즘에는 올레길, 둘레길 같은 트레킹 코스가 늘면서 걷기 열풍이 더욱 달궈지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런 걷기 운동을 활용한 대회가 있다고 하면 조금 의아하게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아시아 최대 스포츠 축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개막한 지 어느덧 반환점을 돌아 종반을 향해 가고 있다. 한국은 연일 금메달 사냥에 성공하며, 사실상 4회 연속 종합 2위를 굳혔다. ‘마린보이’ 박태환이 수영 남자 자유형에서 3관왕을 달성한 것을 비롯해 사격에서는 13개 금메달을 따내며 아시안게임 단일 종목 최다 금메달 획득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또 승마, 요트, 볼링, 정구 등 평소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던 종목에서도 잇달아 메달이 쏟아져 국민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아시안게임은 지난 1951년 인도 뉴델리에서 시작돼 이번 광저우 대회로 16번째를 맞이한 꽤 역사 깊은 종합 스포츠 대회로 알려져 있다. 기존의 서아시아, 극동아시아 경기대회가 하나로 통합돼서 열린 아시안게임은 아시아 스포츠
한국 여자 축구의 2010년은 그야말로 화려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올해 초 그 어느 누구도 여자 축구가 이렇게 뜰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지만 선수들은 이날의 영광을 쓰기 위해 묵묵히 연습하고 또 달렸습니다. 그리고 U-20(20세 이하) 여자월드컵 3위를 시작으로 U-17 여자월드컵 우승, 피스퀸컵 우승에 이어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아시안게임 출전 사상 처음으로 메달 획득에 성공하며 정말 화려한 1년을 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비록 아시안게임에서 목표로 내걸었던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사상 첫 메달 획득이었고, 그만큼 선수들의 노력이 대단했기에 상당히 의미 있고 값진 메달이었습니다. 최인철 감독이 이끄는 여자 축구 대표팀이 22일 열린 아시안게임 여자 축구 중국과의 3-4위전에서 전반 박희영(대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의 금메달 도전이 너무나 아쉽게 끝났습니다. 23일 밤, 중국 광저우 톈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축구 준결승전 UAE(아랍에미리트)와의 경기에서 전후반 연장 120분 동안 내내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골망을 열지 못하고 결국 종료 직전 상대 공격수 알 라브리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0-1로 패했습니다. 모든 징크스란 징크스는 다 떨쳐내지 못하며 맛본 쓰라린 패배였고, 선수들은 골을 내주자마자 경기가 끝나고는 털썩 주저앉아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홍명보 감독이 승부차기를 염두에 두고 투입한 골키퍼 이범영(부산 아이파크)의 아픔은 너무나도 컸습니다. 정말로 투입한 지 1분 정도 지난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