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신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핸드볼 스타입니다. 203cm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넘치는 슛은 독일을 넘어 세계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2년을 활약해 무려 7차례나 득점왕에 올랐고 통산 득점수만 2천790골에 다다를 만큼 이 어마어마한 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가 바로 윤경신입니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홀대받는 핸드볼 때문에 올림픽, 아시안게임 때만 반짝 관심을 갖는 '그저 그런 스타'로 여겨졌던 게 사실입니다. 독일에서 엄청난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파워 슛을 성공시키던 모습과 다르게 한국에서는 텅 빈 관중석에서 외롭게 뛰고 또 뛰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대한민국 선수로서 자부심을 잃은 적이 없었다는 윤경신은 묵묵하게 뛰면서 한국 핸드볼의 위상을 알렸고, 고군분투를 펼쳤습니다. 오랫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어느덧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다른 그였지만 열정과 기량은 늘 한결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윤경신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개인 통산 6번째로 참가했고, 결국 금메달을 따내는데 성공하면서 개인 5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공정한 진행 속에서 치러진 결승전에 윤경신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보여주며 6골을 넣고 팀 승리(32-28)에 보탬이 됐고, 인상 좋은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 남자핸드볼 결승전 한국-이란 경기에서 윤경신이 강슛을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경기를 본 팬들은 윤경신의 파워넘치는 중거리 슛에 탄성을 쏟아냈습니다. '어떻게 저런 슛이 가능한가', '정말 대단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죠. 이날 경기를 중계한 최승돈 KBS 아나운서의 말처럼 윤경신이기에 가능했던 이 어마어마한 슛은 보기에도 정말 깔끔하고 시원한 맛을 선사하며 핸드볼의 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더 대단한 것은 이 슛이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터져줬다는 것, 그리고 이 슛이 터진 상황이 이란이 따라붙는 상황에서 나와줬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아무 때나 터트리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경기를 해 온 경험, 관록을 바탕으로 상대의 기를 한풀 꺾게 만드는 차원에서 나온 인상적인 슛이고, 그래서 더욱 돋보였습니다.

윤경신의 활약에 후배 동료 선수들도 더욱 힘을 내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공정한 진행 속에서 펼쳐졌던 경기였던 만큼 선수들은 자신들의 기량을 마음껏 보여주려 했고, 자유자재로 공을 돌리고 착착 감기는 팀플레이를 보여주며 이란을 압도하는 경기를 펼쳤습니다. 베테랑이 제 몫을 다 하니 당연히 다른 동료들도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고, '정상적인 수준'으로 최고의 경기를 펼치며 기대했던 금메달을 가져오는데 성공했습니다.

윤경신이 이번 대회에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나왔던 것은 바로 4년 전 아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년 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중동 심판들의 이해할 수 없는 판정 때문에 메달 하나 가져오지 못하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던 터라 이번 대회에 대한 기분이 남달랐을 것입니다. 선수 개인으로는 최고를 추구해 왔고 많은 것을 이뤘지만 아시아 최강을 자부하던 조국 한국 핸드볼이 중동의 텃세에 놀아났다는 것에 화가 났던 윤경신은 그야말로 이를 악물고 이날 이 순간을 기다려 왔습니다. 이번 대회 준비를 하면서 단 한 번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훈련에 몰입한 윤경신의 진가는 어떻게 보면 4년 동안 가졌던 아픔이 만들어낸 활약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핸드볼 취재를 나갔을 때 윤경신에 대한 후배 선수들의 멘트를 들으면 늘 한결 같았습니다. "그는 최고다", "형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그만큼 윤경신은 한국 핸드볼의 살아있는 전설이요, 동료들에게는 큰 귀감이 됐던 존재입니다.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10년 넘게 한결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전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불꽃 투혼을 과시하며 목표를 마침내 이루고 만 그의 모습은 팬으로서 보는 입장에서 참 멋지고 대단하게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아마 전체 스포츠 선수를 통틀어서도 이런 선수를 찾는 게 쉽지 않은데 어쨌든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핸드볼 스타, 그리고 영웅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내년 6월 소속팀(두산)과의 계약이 끝나면 공식적인 선수 은퇴도 고려해보겠다고 하니 이제 그의 전설적인 플레이를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합니다. 선수 생활 마지막에라도 윤경신이 그간 한국 핸드볼에 남긴 족적을 생각해서 좀 더 많은 관심 갖고 응원해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핸드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윤경신의 마지막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높이 평가하고, 또 축하합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