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월드컵 유치 실패 소식이 전해진 지 단 4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이에 대한 '반짝 열기'는 식은 듯합니다. 월드컵 유치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 때문에 잠시 높은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결국 유치의 꿈이 이뤄지지 않자 순식간에 열기가 사라졌습니다. 그만큼 이번 대회 유치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예전만 못했고, 카타르의 깜짝 개최국 선정 결과로 인한 내부적인 후유증은 크게 없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사실 월드컵을 통해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이루는 데 기여하겠다는 인상적인 명분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유치 가능성이 다소 낮게 점쳐졌습니다. 유치위원회가 직접 발로 뛰고 노력한 끝에 '꽉 찬 50% 유치 가능성'을 만들기는 했지만 수익성, 경쟁국과의 차별화된 전략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으면서 결국 발목이 잡히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2002년 이후 20년 만의 월드컵 유치가 한국 측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봤지만 결국 한 번도 유치하지 않은 카타르, 그리고 2018년에는 러시아의 손을 들어주며 결과적으로 유치 탈락의 결정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월드컵 유치 실패로 한국 입장에서는 스포츠 외교, 국제 이벤트 유치 전략의 전면적인 수정, 변화가 동반돼야 합니다. 축구계 입장에서도 리그 활성화, 유소년 축구 등 풀뿌리 축구의 정착 등 산적한 과제들을 어떻게 하면 잘 풀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게 됐습니다. 또 한번의 월드컵 유치를 통해 2002년 월드컵 이상의 인프라 구축, 저변 확대를 모색했던 축구계 입장에서는 다른 방법을 통해서 축구의 활성화를 도모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 '2010피스퀸컵 수원 국제여자축구대회' 호주와의 결승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한뒤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 피스퀸컵조직위원회 제공 >>
그런 가운데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꽤 주목할 만한 발표를 내놓아 화제가 됐습니다. 바로 올해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여자 축구의 활성화를 위해 중장기적인 대책을 내놓은 것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3년까지 모두 185억 원이라는 상당한 규모의 돈을 투자해서 초,중,고,대학 여자 축구 45개 팀을 우선 창단해서 저변을 확대하고, K리그 및 WK리그 산하 유소녀 클럽팀 운영, 초중고 및 대학 여자축구팀의 지도자 처우개선과 훈련 및 용품 지원, 우수선수 및 지도자 해외 연수 등 여자 축구가 튼실하게 발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실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가능성을 보인 여자 축구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 세계 강국의 자리에 올라서겠다는 포부를 대외적으로 알린 셈입니다.

만약 이것이 제대로 실현된다면 여자 축구는 그야말로 진정한 르네상스기에 접어들 수 있습니다. 먼저 선수들이 뛸 만한 팀이 많아짐으로써 1천여 명에 불과했던 선수들이 몇 배 이상으로 늘어나 양질의 자원을 키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에 걸맞은 지도자 육성을 통해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 큰 도움을 주고, 선수들이 마음 놓고 훈련하고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서 이전보다 훨씬 좋은 선수들이 배출될 전망입니다. 선수들의 실질적인 처우 개선이 동반된다면 남자 선수들 못지않은 대우를 받으면서 WK리그 활성화에도 영향을 주고, 결과적으로는 여자 축구 모두가 잘 되는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여자 축구 선수들이나 일선 지도자들이 바랐던 것들이 조금이나마 이뤄지고, 발전에 숨통이 트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올해 여자 축구는 U-20 여자월드컵 3위, U-17 여자월드컵 우승, 아시안게임 첫 3위 입상을 통해 희망 가득한 미래를 확인했습니다. 일부 선수들은 세계적인 실력을 자랑하는 선수에 버금갈 만한 기량을 갖추며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줬고, 한국 여자 축구 선수들에 대한 세계 축구계의 높은 관심도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가운데 이뤄낸 이들의 '의미 있는 쾌거'는 결국 한국 축구의 새로운 희망과 꿈을 만들어내는 기회를 만들어내면서 축구의 진정한 저변 확대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한국이 또 다른 월드컵 유치에 도전한다면 월드컵보다는 여자 월드컵 유치에 도전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1999년에 시작해 아직 3회밖에 치르지 않았지만 이미 이에 대한 관심이나 열기는 월드컵 못 않은 것을 수차례 확인해 왔습니다. 무엇보다 여자 월드컵을 통해 저변 확대, 인프라 구축 등의 긍정적인 영향을 입어 한국 여자 축구의 질적인 발전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다는 것도 한국 입장에서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여자월드컵 개최를 통해 한국 축구가 남자 축구 못지않게 여자 축구 강국으로도 떠올라 '진정한 아시아 축구 강국'의 면모를 보일 수 있는 이미지 향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얻을 수 있습니다.

2023년이나 27년에 유치를 신청한다면 가능성도 제법 있습니다. 2007년에 중국에서 대회가 열리기는 했지만 남자 축구와는 다르게 아시아 국가들의 순위가 높아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또 북한이 여자 축구 강국이라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해 '전통적인 명분'을 잘 살리고, 여기에다 '여자 축구의 떠오르는 신흥 강국'으로서 모범적으로 발전 방안을 잘 수행해 틀을 다져나간다면 가능성은 더욱 높게 살릴 수 있습니다. 남자 축구와는 또 다른 확실한 명분이 있는 만큼 한국만의 차별화된 대회 운영 방안만 장기적으로 잘 연구하면 여자 월드컵 개최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국제 대회의 잇단 유치에 대해 말들이 많기는 합니다. 2022년 월드컵 유치에 실패했는데 무슨 또 다른 월드컵 유치를 준비하느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기반이 다져진 월드컵과 다르게 계속 끊임없이 발전을 모색 중인 여자월드컵은 어떻게 보면 비슷한 상황인 한국 여자 축구와도 잘 맞아 떨어지는데다 진정한 강국을 꿈꾸는 입장에서 충분히 유치를 해볼 만합니다. 우선 장기적인 대책을 잘 실행해서 기본적인 뿌리를 다지는 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만, 장기적으로 여자월드컵 유치를 통해서 여자 축구의 발전에 새로운 전환점이 만들어지는 계기를 삼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축구계나 정부 차원에서 여자 축구가 발전하는 데 어떻게 하면 가장 실질적이고 튼튼하면서도 내실 있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지속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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